*이 글은 Barad, Karen.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07의 순차적인 번역으로서, ‘초역’이다. 이번 번역문은 원문서적, pp. ix~8 까지이다.
서문과 감사의 말
이 책은 뒤얽힘들(entanglements)에 관한 책이다. 뒤얽혀 있다는 것은, 분리된 개별체들의 결합에 따라, 서로 간에 단순히 꼬여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독립성, 자기-충족적 존재를 상실한 채 있다는 것이다. 존재는 어떤 개별적 사태가 아니다. 개체들은 그것들의 상호작용들에 선재하지 않는다. 그보다 개체들은 그들의 뒤얽힌 상-관하기(inter-relating)의 일부로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출현한다. 출현(emergence[창발])이 시공간의 어떤 외재적 규준에 따라 발생하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또는 과정으로서 단 한 번만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러한 시간과 공간은, 물질과 의미처럼, 존재하게 되는바, 각각의 상간-작용(intra-action)을 통해 구체적으로 재형상화된다. 이에 따라 창조와 재생, 시작과 회귀, 연속성과 불연속성, 여기와 저기, 과거와 미래 사이의 어떤 절대적 감각 안에 분화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감사의 말을 쓴다는 것, 무언가가 발생하도록 도운 은인들과 은혜들을 감사히 여긴다거나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감사의 말을 쓴다는 것은 저자의 마음에 쓰여지거나 간직된 기억들에 있는 책을 통해 여러 장면들로부터 인정되거나 선택된 주요 순간들과 중요한 개인들을 종이에 쓰는 단순한 행위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기억은 개별적인 뇌 주름들 안에 남아 있지 않는다. 그보다, 기억은 우주에 기입된 시간-공간-물질의 접힘들(enfoldings)이다. 또는 더 잘 말해 보자면, 그것은 우주의 물질화과정의 접혀진 표명들(articulations[절합들])이다. 기억은 완전히 또는 간단하게 지워지고, 덧쓰여지거나 재생되는(즉 마치 소유될 수 있는 사물인 것처럼 누군가의 소유로 주어지거나 빼앗아지는) 고정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그리고 상기(remembering)는 연달아 일어나는 순간들의 재연이 아니라, 어떠한 개별적인 것보다 더 큰 과거와 미래의 활성화이고 재배치이다. 상기와 재-인(re-cognizing)은 염려하거나, 만족하거나, 어떤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몫들(responsibilities)을 축소하지 않는다. 그 보다 모든 상간-작용들처럼, 그것은 우리가 그 부분인 바, 뒤얽힘들과 몫들을 확장한다. 과거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짐짝이나 스크랩북 또는 어떤 감사의 말처럼 하나로 엮여질 수 없다. 우리는 결코 그것을 남기고 떠나지 않으며, 또한 그것도 결코 우리를 뒤에 남겨놓을 수 없다.
그래서 이 감사의 말은 저자가 책을 쓰는 긴 과정에 대해 회상하고 그 과정을 가능하게 해 준 그 길을 따라 지지자들의 이름을 부르는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그리고 따르지 않는 것도 따르지 않는다). 이 책의 시작을 표시하는 때맞춘 특이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총괄적으로 기획을 이해했던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기에는 어떤 개체적인 ‘나’나 ‘내 것’(I’s)의 그룹이 보증할 수 있다고 주장할 만한 어떤 과정을 쓰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어떤 중요한 의미에서, 내가 이 책을 썼다기보다, 이 책이 나를 썼다고 해야 한다. 또는 나아가, ‘우리’는 ‘상간-작용적으로’(intra-actively) 서로서로를 썼다(‘상호작용적으로’라기 보다 ‘상간-작용적으로’라고 쓴 이유는, 쓰기가 창조성의 일방향적인 실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쓰기는 저지로부터 책 페이지 위로 흐르지 않으며, 그보다 쓰기의 실행은 ‘책’와 ‘저자’의 되먹임 반복이며 상호적으로 구성적인 작업이면서 개정작업이다). 이것은 나 자신의 행위주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테면) 행위주체의 본성과 개체들(인간이든 비인간이든)의 범위 안에 있는 그것의 추정된 국지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뒤얽힘은 예컨대 저자-책이라는 짝이 드러내는 고립된 이항적 공동생산이 아니다. 친구들, 동료들, 학생들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 다양한 대학 기구들, 학제들과 전공분야들, 숲과 시냇물과 동부와 서부 해변, 이른 아침 시간의 기막힌 평화와 해맑음, 그리고 그 외의 더 많은 것들이 이 ‘책’과 그 ‘저자’ 둘 모두가 구성되는 것을 도운 것 중 일부다.
나는 내 어머니가 이것을 읽고 내가 또 사태를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상만 해도 미소가 나온다. 그녀는 내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요점만 말하면서, 과정에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감사를 표한다고 말할 것이다. 한편으로 그녀는 물론 옳다. 알아 먹을 수 없는 감사를 표하는 것에 무슨 좋은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내가 말해질 필요가 있는 것(마치 그것이 어떤 당연히 주어진 것인양)을 단순하게 말할 수 없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내 존재의 핵심에 함입되어 있는 정의(Justice)에 대한 희구 때문이다. 정의는 감사의 말, 인정 그리고 애정어린 관심을 야기하는 것으로서, 단숨에 획득될 수 있는 어떤 상태가 아니다. 여기에는 어떤 해(solution)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각각의 마주침, 각각의 상간-작용을 위한 개방적이고 생생한 존재의 계속되는 실행만이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깨어 있기 위해, 즉 정의롭게 살아 가는 동안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들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응답의 능력을 사용하고, 우리의 책임성(responsibility[응답가능성])을 활용한다. 세계와 그것의 생성 가능성들은 각각의 만남(meeting) 안에서 재형성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질로 되는 사태와 주체가 구성되는 동안 우리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무엇이 죽음 위에서 번창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 안에서 정의가 살아남을 가능성을 유지할 만남의 실행을 초래하는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죽은 것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들을 포함하여, 각 존재의 고난에 어떻게 민감해질 것인가? 과거를 끝난 것으로, 그리고 미래를 우리의 것이 아닌 것 또는 오직 우리의 것으로 이해하는 사고방식들을 어떻게 교란할 것인가? 물질화의 문제, 즉 물질, 공간 그리고 시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과 관심들은 비전(祕傳)의 사색으로 이루어진 사치물이 아니다. 정의를 위한 물질화(Mattering)과 그것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은 그것의 생성 안에서 우주의 통합적 부분들이다. 그리고 정의롭게 살기 위한 유인은 존재라는 그 물질 안으로 기입되어진다. 이러한 유인에 반응하는 법은 물질의 본성에 대한 것 만큼이나 많은 응답과 책임성의 본성에 대한 질문으로 존재한다. 정의를 열망한다는 것, 어떤 개체나 개체의 집합보다 더 광범위하게 열망한다는 것은 이 연구를 뒤에서 추동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연결들과 타인에 대한 책임들에 대한 것, 즉 뒤얽힘들에 관한 것이다.
나는 많은 탁월한 존재자들과 뒤얽혀지는 것에서 셀 수 없을 만한 행운을 누렸다. 그들은 나를 지지했고 풍성하게 만든 존재자들이고, 우정, 친절, 온정, 유머, 사랑, 용기, 영감, 인내, 지적 연대, 매우 소중한 평가, 활달한 도전, 세부적인 주의, 그리고 관념들의 사랑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나의 감사의 마음은 몇 장의 종이 위에 나열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존재자들로 확장된다. 그런 목록들은 뒤얽힘들에 단적으로 정의를 부여할 수 없다. 나는 이 감사의 말에서 그녀나 그의 이름을 찾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함으로써 실망할 누군가(과거나 미래의, 내가 알고 있거나 아마도 그렇지 않을 사람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나 그가 합당하게 ‘책’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살아 있고, 변화하는 현상 안에 기입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이 책은 분명 누군가가 손에 들 수 있는 그런 단순한 객체가 아니다.
우선, 나는 바나드 대학(Barnard College), 포모나 대학(Pomona College), 러트거스 대학(Rutgers University),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Mount Holyoke College) 그리고 산타 크루즈의 캘리포니아 대학(th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Santa Cruz)에 있는 내 학생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나는 당신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웠고, 당신들은 당신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새롭게 그려진 영역들로의 그러한 갑작스러운 진출에 나와 동반해 준 엘리자베스 (제이) 프리드만과 테마 카플란에게 빚을 지고 있다. 누가 알았겠는가? 바나드 대학에서 물리학 연구팀의 특별한 역사를 창조하면서, 물리학자 사무엘 데본스(Samuel Devons, 그는 에르네스트 루터포드Ernest Rutherford의 제자였다)가 예기치 않게도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 연구팀에서 가르치고, 실험들을 준비하고 커다랗고 오래된 실험도구들과 씨름하면서, 나는 도구들의 신체성(physicality)과 그것들이 체현하는 관념들에 관한 어떤 식별능력을 발전시켜 나갔다. 비록 닐스 보어(Niels Bohr)의 철학적 물리학(philosophy-physics)에 관한 나의 계속 진행 중인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연구들이 이러한 특별한 보어주의적 성찰로 나를 이끄는 준비과정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해도, (이론) 물리학에서 나의 정규 교육과정의 어떤 부분도 나에게 그와 같은 감각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우리가 가장 커다랗게 신세 진 사람들은 여러 상이한 시간들과 공간들(적어도 절대적 차이에 관한 이와 같은 외적 규준들이 존재하는 전반적으로 부적합한 개념들에 따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결코 직접 만나지는 않았을지라도, 만약 내가 수 년간 가장 뛰어난 대화상대자였던 닐스 보어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는다면, 나는 심각하게 태만한 짓을 저지르는 셈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친구들과 동료들로부터 격려와 지적이면서 영적인 자양분이라는 선물을 받는 특별한 행운을 누렸다. 그들은 다음과 같다. 앨리스 아담스(Alice Adams), 베티나 압테커(Bettina Aptheker), 마리오 비아지올리(Mario Biagioli),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로레인 코드(Lorraine Code), 지오바나 디 치로(Giovana Di Chiro), 카킬밀리아 펑크 엘레하브(Camiila Funck Ellehave), 릴라 페르난데스(Leela Fernandes), 낸시 플람(Nancy Flam), 마이클 플라워(Michael Flower), 알리시아 가스파르 데 알바(Alicia Gaspar de Alba), 루쓰 윌슨 길모아(Ruth Wilson Gilmore), 비제이 골드버그(BJ Goldberg), 디나 곤잘레즈(Deena Gonzalez), 앨리스 풀톤(Alice Fulton), 자콥 헤일(Jacob Hale), 산드라 하딩(Sandra Harding), 에밀리 호닉(Emily Honig), 수 후친스(Sue Houchins), 데이비드 호이(David Hoy), 조슬린 호이(Jocelyn Hoy), 마릴린 아이비(Marilyn Ivy), 에블린 폭스 켈러(Evelyn Fox Keller), 로리 클라인(Lori Klein), 마틴 크리거(Martin Krieger), 제이 라딘(Jay Ladin), 마크 란스(Mark Lance), 린 르로즈(Lynn LeRose), 자나 레빈(Janna Levin), 라우라 리우(Laura Liu), 니나 뤼케(Nina Lykke), 파울라 마르쿠스(Paula Marcus), 린다 마르탱-알코프(Linda Martín-Alcoff), 린 한킨슨 넬슨(Lynn Hankinson Nelson), 루팔 오자(Rupal Oza), 프란체스 폴(Frances Pohl), 엘리자베스 포터(Elizabeth Potter), 라비 라잔(Ravi Rajan), 제니 리어돈(Jenny Reardon), 이렌느 레티(Irene Reti), 잔 로젠(Jeanne Rosen), 수 로서(Sue Rosser), 폴 로쓰(Paul Roth), 제니퍼 뤼센가(Jennifer Rycenga), 조안 사퍼스탄(Joan Saperstan), 빅터 실버맨(Victor Silverman), 카리다드 수자(Caridad Souza), 바누 수브라마니암(Banu Subramaniam), 루시 수크만(Lucy Suchman), 차리스 톰슨(Charis Thompson), 샤론 트라위크(Sharon Traweek), 쉐일라 와인버그(Sheila Weinberg), 바바라 위튼(Barbara Whitten), 엘리자베스 윌슨(Elizabeth Wilson) 그리고 앨리슨 와일리(Alison Wylie).
나는 특히 여러 장들 초고들을 너그럽게도 읽어 주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해 준 동료들과 친구들에게도 빚을 지고 있다. 프레데릭 아펠-마글린(Fnédérique Apffel-Marglin), 허브 번스타인(Herb Bernstein), 에이미 버그(Amy Bug), 존 클레이튼(John Clayton),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조셉 루즈(Joseph Rouse) 그리고 아서 자종크(Arthur Zajonc)가 그들이다. 조셉 루즈는 특별히 전체 초고에 대한 매우 가치 있는 피드백을 풍부하게 해 주었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주었다. 스카우트 칼버트(Scout Calvert), 크레시다 리몬(Cressida Limon), 자콥 멧칼프(Jacob Metcalf), 아스트리드 쉬라더(Astrid Schrader), 히더 안느 스완슨(Heather Anne Swanson), 그리고 메리 위버(Mary Weaver)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이들은 페미니즘적 과학 연구에 관한 대학원 세미나에 참여한 학생들로서, 책의 수고(manuscript)에 대한 영감에 넘치고 유쾌한 토론들 했으며, 특히 내가 산타 크루즈에 도착했을 때 따뜻하게 환대해 주었다.
나는 조셉 루즈와 도나 해러웨이가 그들의 관련 저작들로 영감을 준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여긴다. 그들은 상호 관계하는 물질들에 대한 상간-작용의 특별한 기쁨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정, 관대한 지원, 격려 또한 몇 년 간에 걸쳐 마련된 각각의 글들에 대한 빈틈없고 유용한 조언을 해 주었다. 이 소중한 친구들은 내 사유와 집필의 요소들 중 불가결한 부분이 되었다. 그들의 기여는 셀 수 없을 지경이다. 나는 또한 내 친구인 비키 커비(Vicki Kirby)와의 짜릿한 대화들에서 막대한 은혜를 입었다. 내 저작에 대한 프레데릭 아펠-마글린의 확고한 열의와 그녀의 열정적인 믿음은 내가 글쓰기의 난해한 뒤얽힌 분야들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나를 지탱해 주었다. 나는 우리의 대화들 동안 확실히 출현한 것으로 보이는 놀랄만한 회절 패턴들(diffraction patterns)에 대해 아직 경외감을 가지고 있다. 내 반려견인 로비(Robbie)에게도 매우 감사하다. 내가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쓸 때, 그는 매 해 밤낮으로 내 곁에 머물면서, 따뜻함과 사람을 듬뿍 주었고, 나를 꿰어 내어 필수적인 산책을 하도록 했다. 그의 복슬복슬한 몸이 이 책 전체와 함께 했다.
나의 부모님인 해롤드(Harold)와 에디트 바라드(Edith Barad)에게도 헤아릴 수 없이 감사드린다. 그들은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믿어주신다. 만인의 선함에 대한 내 어머님의 확고한 믿음과 각각의 사람들에게서 가장 좋은 것을 보려는 그녀의 신조는 세상에 드문것이며, 고무적인 것이기도 하다. 나의 아버지에게도 진심을 담아 감사드린다. 그는 내가 이웃집의 어떤 남자아이보다 더 잘 야구공을 던지고 농구공을 골대에 집어 넣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다. 우리가 함께 공놀이를 하면서 보낸 날들은 내 삶 안에서 페미니즘적인 순간들의 기초에 놓여져 있다. 그러한 놀이는 내가 나를 잘 다루는데 있어서 탁월하게 유용한 교훈들과 기술들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정말로 노동계급의 가치들에 따라 양육되었다는 것에서 매우 운이 좋았음을 느낀다. 그러한 가치들은 내가 사람의 가치나 훌륭함을 그들의 직업, 성과, 교육, 부 또는 세속적 경험에 따라 평가하는 것을 거부하게 했다.
로안 윌슨(Roanne Wilson)은 이 책을 통틀어 아낌없이 그녀를 투신했다. 따뜻한 식사, 동료애, 사랑, 공동육아를 함에 있어서 유연성, 풍부한 지원, 그리고 아주 시의적절할 때 타주는 핫초콜릿까지. 어떤 ‘고맙다’는 말로도 그녀가 나에게 준 유무형의 모든 것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나의 딸 미카엘라(Mikaela)는 여러 면에서 나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이다. 그녀가 열려 있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하루 하루 세상과 만나는 방식은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의 만족할 줄 모르는 호기심, 배움의 과정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경험하는 줄어들지 않는 능력, 다른 존재들을 돌보는 넓게 열려진 감각, 그리고 삶에 대한 사랑스러운 관심(가장 작은 세부사항들과 세계의 짜임새를 흡수하면서, 그녀는 시, 드로잉, 그림, 조각, 이야기, 춤 그리고 노래를 통해 그것을 재창조한다)은 미래를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핵심 요소이다. 이 책은 그녀에게 헌정된다.
RADKVV
서문: 과학과 물질화의 윤리
물질와 의미화(meaning)는 분리된 요소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불가분하게 함께 융합되어 있으며, 어떤 사건도, 그것이 얼마나 강력하든지 간에, 그것들을 찢어놓을 수 없다. 심지어 원자들은, 그 이름 그대로, 아토모스(ἄτομος, atomos), 즉 ‘불가분의’(indivisible) 또는 ‘절단불가능한’(uncuttable)이란 의미를 가지지만, 부서져 나누어질 수 있다. 하지만 물질과 의미화는 화학적 과정 또는 원심분리기 또는 핵폭발에 의해서도 분리될 수 없다. 물질화는 동시에 실체(substance)와 의미의 문제다. 아마도 그것이 의문시되는 물질의 본성일 때, 물질의 가장 작은 부분들이 심히 확고한 관념들과 거대한 도시들을 폭발시킬 능력임을 드러낼 때 가장 분명해진다. 아마 이것이 현대 물리학이 존재, 앎, 그리고 행위, 즉 각각 존재론, 인식론 그리고 윤리학, 사실과 가치에 속한 문제들의 불가피한 뒤얽힘을 만드는 이유이며, 그래서 그것은 그토록 생생하며, 그토록 통렬하다.
상황설정
1941년 9월, 나치의 제국 건설이 그 정점에 도달했을 때, 독일 물리학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는 그의 멘토인 닐스 보어를 만나기 위해 나치 점령지인 덴마크를 방문했다. 보어는 유대인 계통에 속했고, 그가 있던 코펜하겐에 속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 연구소의 소장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의 지지자이면서 그 자신이 지도적인 물리학자였는데, 그때는 원자폭탄을 생산하려 애쓰는 독일의 지성이었다. 조국에 대한 국가주의적 자부심으로 충만한 채로, 하이젠베르크는 해외로부터의 제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나치가 아니었고, 나치에 동조하지도 않았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물리학의 양자 혁명에 있어서 두 사람의 탁월한 지도자였다. 양자물리학에 관한 그들 각자의 해석들은 - 상보성(complementarity)과 불확정성(uncertainty) - 양자역학에서 소위 코펜하겐 해석이라 불리는 경향의 핵심요소를 구성한다. 이 두 사람의 노벨 수상자는 특별한 결속 - 마치 아버지(보어)와 아들(하이젠베르크)의 관계처럼 기술되는 어떤 관계 - 으로 묶여 있었는데, 이 관계는 보어의 이 방문으로 인해 깨졌다. 비록 1941년 가을에 그들 간에 오고간 불길한 대화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것은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독일의 원자폭탄에 관한 관점을 비롯하여, 가장 심각한 결론을 초래할 문제가 논의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1]
왜 하이젠베르크는 코펜하겐으로 온 것일까? 그는 보어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일까? 그의 의도는 무엇인가? 하이젠베르크는 연합군의 원자폭탄 계획에 대해 보어가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알아내고자 한 것일까? 그는 독일의 계획에 대해 보어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고, 그가 그의 힘이 닿는 한에서 그것을 멈추기 위해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안심시키려고 했을까? 만약 양진영이 원자폭탄을 만들려는 각각의 기획을 포기하도록 설득시키기 위해 그들이 원자 물리학에 있어서 그들이 공히 차지하고 있던 권위를 활용하자고 보어를 납득시킬 수 있을지 그는 알려고 했을까? 그는 물리학 또는 윤리학 또는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그의 멘토로부터 중요한 통찰을 얻으려고 했을까?
이 질문 - 하이젠베르크는 왜 1941년에 보어를 보러 갔을까? - 은 최근 토니상을 받은 작품의 핵심 주제다. 이 작품은 이 운명적인 만남과 관련된 논쟁들을 추정한 연극이다. 이 연극은 논쟁을 해결하지 않는다. 반대로 연극 자체는 그 자체의 노선에 집중한다. 마이클 프레인(Michael Frayn)의 연극 『코펜하겐』(Copenhagen)에서, 보어와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보어의 아내 마가레트의 유령은 예전 보어의 거처에서 만나 그 운명적인 가을날의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 마치 원자물리학에서 문제의 세부사항들을 해결하는 것처럼, 보어,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마가레트는 하이젠베르크의 의도들을 추정하기 위해 세 가지 시도를 하는데, 이때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에 대한 세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에 대해 성찰하기 위해 행위하고 때때로 멈춘다. 불확정성을 해결하기 위한 각각의 시도는 좌절된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히 프레인이 원했던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와의 유사성을 이끌어내면서, 프레인은 왜 하이젠베르크가 1941년에 코펜하겐에 왔는지에 대한 질문이 새롭게 발견된 증거나 몇몇 새로운 확실한 통찰로 곧장 나아갈 수 있는 역사적 기록에서 몇몇 미비함과 같은 실증적 이유 때문에 미해결로 남은 것이 아니라, 불확정성이 인간 사유의 고유한 특성이기 때문에 원리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알려지고 완수되면, 아무도 심지어 하이젠베르크조차 그가 왜 코펜하겐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프레인의 불확정성 원리 - “우리는 [이론상] 결코 인간의 생각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그것 - 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의 실재 결론은 아니고, 희곡의 발명품이다. 그것은 순수하게 유비에 기댄 창조물인 것이다. 프레인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 물리적 대상들, 이를테면 원자나 전자들의 행태에 대한 우리의 지식의 한계를 성찰하는 것 - 인간 행위에 대한 앎의 가능성이라는 문제에 적용하고 있지 않다. 그는 단순히 어떤 평행성을 도출할 뿐이다. 이 유비를 사용하여, 프레인은 인식론의 영역(지식의 본성에 대한 질문들)으로부터, 즉 지향성의 불확정성으로부터 빠르게 이동하여 도덕적 주제들의 비결정성(undecidability)으로 나아간다. 그 자신의 불확정성 원리에 기반하여, 그는 추론, 또는 아마도 도덕화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결코 누군가가 그 또는 그녀가 하는 바의 이유를 정말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도적적 판단은 그 자체의 기초를 잃어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하이젠베르크가 실재로 독일을 위해 원자폭탄을 만들려고 했는지 아닌지, 또는 그가 의도적으로 히틀러가 새로운 대량파괴무기를 손에 넣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좌절시켰는지 아닌지 알지 못할 것이다. 인간성의 운명이 걸려 있는 바로 그 지점에서 근원적인 도덕적 의미에 대한 질문, 그리고 책밍을 부여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좌절시키는 불확정성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이 불확정성은 역사의 판단으로부터 하이젠베르크의 고뇌에 찬 영혼을 구해준다. 이 연극은 따라서 그것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유령들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코펜하겐』은 매력적이고, 영리하며 아름다운 희곡이다. 그것은 적절한 논쟁을 가미하면서, 과학과 정치학 간의 명백한 친근성을 눈에 확 띄게 전시하는 한없이 매력적인 이야기이다. 그것은 또한 비평의 여지도 있다. 많은 비평가들이 연극에 빈번히 등장하는 중대한 역사적 부정확성을 제기하지만, 내 관심은 양자물리학에 관한 프레인의 묘사와 그것의 철학적 함축에 있다. 나는 어떤 묘사는 난점으로 가득차 있다고 논증할 것이다.
프레인의 연극은 내가 이 책에서 성취하길 바라는 것에 대한 유용한 대위법으로 기여한다. 표면적으로, 주제는 유사한 것으로 드러난다. 과학, 정치학, 윤리학 그리고 인식론에 대한 질문이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핵심 관심사에 속한다. 사실상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접근에서 양자 물리학과 그것의 철학적 함축들과 차이들은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려진다. 그러나 유사점은 이것이 마지막이다. 우리는 목적에서, 접근방식에서, 방법론, 장르, 스타일, 청자, 배경들, 관심들, 가치들, 경험적 사실들에 대한 해명의 구준, 엄격함이 표준들, 분석의 형식들, 논증의 양태 그리고 결론에 있어서 달라진다. 결정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철학적인 출발점과 물리학과 그 철학적 주제에 대한 우리 각각의 참여의 깊이에 있어서 날카롭게 분기한다.
어떤 중요한 점에서, 프레인의 관점은 내가 여기서 밝히고자 하는 관점보다 앎과 존재의 본성에 대한 상식적 관념들에 더 수월하게 맞아떨어지고 더 친근하다. 프레인은 그의 관객들에게 일련의 이항대립 - 사회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 인간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 의식의 내적 상태와 존재의 외적 상태들, 지향성과 역사, 윤리학과 인식론, 담론과 물질성 -을 드러내며 두 항들의 관계에 접근하면서 간격을 가로지르는 유비들을 이끌어낸다. 그는 또한 거시적 범역과 미시적 범역 둘 모두를 위한 개인주의 형이상학을 전제한다. 인간은 원자와 같이, (지능, 체온 그리고 마음의 지향적 상태와 같은) 그 고유한 성격에 있어서 분할된 개체들로 당연하게 간주된다. 그리고 그는 마치 그것들이 화학실험에서 상호교환가능한 동위원소인 양, 때때로 존재와 앎, 존재론과 인식론의 주제들을 자유롭게 뒤섞는다.
그렇다면 양자물리학은 우리에게 과학적 실천의 본성과 그것의 윤리학과의 관계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것인가? 이 질문에 접근하기 전에, 두 가지 선행 주제가 제기되어야 한다. 우선 질문이 잘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양자물리학에서 해석 논쟁(특히 이론이 의미하는 바와 세계와 그것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와 관련된 문제)은 해결이 요원하다. 양자 물리학의 철학적 함축들에 대한 질문이 발생할 때, 어떤 결정적인 대답도 특정 해석의 상술이 없는 상태에서 주어질 수 없다. 나아가 그 주제에 대한 대중적인 열광은 접근성, 흥미 그리고 우리가 정직하다면, 우리가 선호하는 관점을 기술하기 위해 과학의 권위를 끌어 모을 기회를 추구하기 위해 엄밀함을 희생해 버린 인기영합적 고려의 남발과 맞아 떨어졌다.[2] 결과적으로 대중은 양자 이론에 대한 진실을 말함에 있어서 어떤 오래된 반직관적인 주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함께 모여, 누군가가 그 대답은 차치하고서도, 이 잠재적으로 중요한 질문을 이해하는데 이어서 심각한 난점을 노정하게 된다. 명백하게도 이 질문에 대한 어떤 진지한 고려는 공상으로부터 합법적인 논점을 분명히 구분하고 해석 논쟁과 관련해서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시작해야 한다.
양자물리학에 관한 대중의 매혹은 아마도 여러 가지 상이한 요인들에 많은 부분 기인할 것이다. 거기에는 그것이 근대적 세계관을 밝혀 드러내는 반직관적 도전들, 이론을 발전시켰고 이의를 제기했던 지도적인 인물들(여기에는 아인슈타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의 명성 그리고 양자물리학이 써내려갔던 근원적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응용들(원자폭탄의 발명에 의해 대중적 상상 안에서, 공정하거나 불공정한 방식으로 자주 상징화되는)이 포함된다. 하지만 오류와 오해 그리고 그것도 아니라면 부적합한 생각들의 범람을 설명하는 것이 이러한 요인 - 양자물리학에 대해 알고자하는 대중의 갈급함 - 뿐일 수 있는가? 무엇이 양자물리학의 주요 문제인가? 그것은 제기될 만한 모든 질문들에 영감을 주고, 앞서서 핵심 논점을 가져오며, 개방적 정신과 캐묻기 좋아하는 태도를 증진하며, 우리가 그 지혜를 배우려고 주위를 배회할 때, 매우 명확하게 얻어야 할 응답은 핵심을 비껴가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타당성과 이해 간의 필수적인 균형을 표현하는 일련의 것들의 관계에 불확실성을 가정하는 것에 상당히 마음이 끌린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히 말해서 관련 논점들에 관한 불만족스러운 이해를 너무 자주 생산하는 일종의 유비적 사고다.
우리는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해 공정하기를 희망할 수 없다. 이 질문은 과학과 윤리 간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양자물리학을 함축한다. 이것은 실패한 시도들의 범람으로부터 우리가 아아야 할 하나의 중요한 교휸이다. 프레인의 『코펜하겐』은 적절한 하나의 예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연극은 어떤 중요한 교보재로 사용될 수 있다. 뒤에서 나는 몇몇 중요한 대조들을 이끌어 내기 위한 몇몇 세부사항에 따라 이 연극을 평가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의 주요 주제들 중 몇몇을 도입하는 무대를 세우도록 연극을 활용할 것이다. 이러한 간주곡은 관련된 역사적 배경, 주요 인물들 그리고 핵심 아이디어들의 극적 도입에 기여하고, 나의 접근법이 보다 상식적인 유비적 접근들과 다른 중요한 일련의 방식들이라는 것을 강조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물리학자로서 우리는 원자에너지의 실천적 활용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는가?”[3] 보어에 대한 하이젠베르크의 집요한 질문은 『코펜하겐』 전체를 통틀어 유지되는 분위기로 작동한다. 하지만 극작가인 마이클 프레인의 경우, 이러한 도덕적 질문은 부차적인 이슈다. 그에게 흥미로운 것은 메타윤리적인 질문, 즉 도덕적 판단이 대체 어떻게 가능해지는가라는 것이다. 프레인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주장한다. “도덕적 쟁점은 언제나 결국엔 인식론적인 것, 즉 다른 사람들의 동기에 대한 판단에 의존한다. 왜냐하면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동기들에 대한 어떤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들의 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도덕적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4] 그러나 이러한 딜레마가 어떻게 발생하는가?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동기와 지향에 대해 어떤 지식도 가질 수 없는가? 프레인에 따르면, 딜레마의 뿌리는 그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로부터 끌어내고자 한 유비로부터 도출된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우리가 특정한 물리적 양들의 짝, 이를테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에 대해 동시에 알 수 있는 것에는 필연적인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입자의 운동량은 그것의 속도와 관련되는데, 특히 운동량이 질량 곱하기 속도라는 것에서 그러하다.) 프레인은 유비를 통함으로써, 우리가 정신적 상태들(이를테면 사유, 지향 그리고 동기들)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에 필연적인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약 목적이 하이젠베르크가 입자에 대해 제안한 유명한 가설, 즉 불확정성 원리를 유비적으로 인간에 적용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그런 방식으로 신중하게 행한다면, 그때 그것은 “우리는 사람들의 동기들에 관한 어떤 지식도 가질 수 없다”라는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원리가 말하는 바에 좀 더 가까인 접근해서 살펴 보자. 하이젠베르크는 우리가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에 대한 어떤 지식도 가질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 그는 두 측정량을 한꺼번에 잘 알 수 있는 방법들 사이에 어떤 균형점도 특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입자의 위치에 대해 더 잘 알수록, 우리는 그것의 운동량에 대해 더 적게 알게 되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5] 따라서, 만약 프레인이 제안하듯이, 그가 주체의 행위들과 그 행위 뒤에 놓인 주체의 동기들 사이에 있는 어떤 상호절충점을 특정하는 어떤 유비적 원리를 사람들을 위해 구축하는데 흥미가 있다면, 그러한 노선을 따라 더 많은 어떤 것을 말해야만 할 것이다. 즉 우리는 사람들의 동기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질 수 없으며, 그들의 동기를 자극하는 행위들에 대한 어떤 것을 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떤 사람의 행위와 그 행위를 동기짓는 것 둘 모두에 대해 충분하게 확실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그러한 원리를 허용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순히 프레인이 하기를 원하는 유비를 좀 깔끔하게 정돈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동기에 관한 지식이 방해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계지어진다는 그 사실은 도덕적 판단에 관한 질문에 대한 사고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결론들을 가져 온다. 프레인은 원리적으로 우리 지식의 한계를 정하는 것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이에 따라 우리가 영원히 누군가의 동기들에 대한 어떤 지식도 가지지 못하게 막혀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객관적인 도덕적 판단들을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방금 말했던 것처럼, 유비적인 것을 끌어내는데 있어서 보다 더 신중한 방식은 사실상 어떤 주체의 행위 뒤에 놓인 동기들에 관한 지식에 기반하는 도덕적 쟁점들에 대한 그 모든 고려사항들을, 그러한 고려들이 충분하고 완전한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부분적 이해들에 기반할 수 있는 한에서 침식하지 않는다.
이제 프레인은 그가 이끌어낸 유비가 정확하게 유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받아들이지만, 그의 이러한 인정은 우리가 막 논의했던 그의 유비적 추론에 관건적인 실수와 관련은 없다. 그보다는 프레인의 이러한 용인은 다른 종류에 속한다. 즉 그는 스스로가 양자 물리학에 기반한 도덕적 판단의 한계를 위한 어떤 논증을 만들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충분히 자각한다. 하지만 그는 그의 연극을 정신 상태들(사유, 동기 그리고 지향들과 같은)의 내용을 판별하기 위한 어떤 동등한 인식적 한계를 탐색할 수단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원리화된 한계에 대한 그의 과장은 연극의 핵심적인 쟁점으로 향해 가는 근본적 난점을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기보다, 프레인의 유비적 방법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지속하는 것이 유익하다. 우리가 프레인이 어떻게 연극에서 이러한 평행성을 개척하는지를 음미하기 전에, 그가 그 주제들을 틀짓는 방식에서 무엇이 관건적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다른 유령이 이 연극을 따라다니고 있다. 즉 극작가의 동기라는 질문 말이다.)
1부 서문
[1] 물리학 서클들 바깥에서, 우리는 하이젠베르크의 이름이 유명하지만 보어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닐스 보어(Niels Bohr, 1885-1962)는 덴마크 물리학자이자 아인슈타인과 동시대인이다. 그는 양자물리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의 양자적 원자 모델로 1922년 노벨 상을 수상했다. 보어는 양자 물리학의 소위 코펜하겐 해석을 기초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1년 그는 코펜하겐에 그의 이름이 붙은 연구소를 설립했다. 새로운 양자 이론에 대한 수많은 근본적인 연구 기여가 이 연구소에서 탄생했다. 베르나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76)는 1932년 닐스 보어 연구소에서 행했던 연구에서 ‘양자 역학의 창조’를 이루어낸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2] 이것은 양자물리학에 관한 모든 대중적 생각들이 다른 가치들와 관심들에 대한 엄밀함을 희생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그와 같은 텍스트들에 관한 그 어떤 결함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는 것이다.
[3] 하이젠베르크의 현실적인 진술에서 나온 이 질문은 연극에서 그의 성격에 의해 더 철저해진다. W. Heisenberg, affidavit on the Copenhagen visit, manuscript and typescript, c. 1948, Heisenberg Archive, Max Planck Institute for Physics, Munich (cited by David Cassidy in Physics Today, July 2002).
[4] 마이클 프레인으로부터의 이 인용은 Niels Bohr Historical Archive's History of Science Seminar, November 19, 1999에서 취했다.
[5] 위치와 운동량은 뉴턴이 우리에게 알려준 양적 지표로서, 입자의 전체 궤도- 미래와 과거 - 를 예상하는데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