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이 기본값인 한국 회사
##퇴사했다.
회사는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가슴 깊이 깨닫게 된 지난 반 년이었다.
더 이상 혼자 속으로 담아두다가는 홧병이 날 것 같아 그냥 여기라도 끄적여본다.
최근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해본다.
1. 애초에 이 회사와는 리모트로 근무하기로 하고 해외에 살고 있을 때 계약한 건데, 코로나 끝나자 갑자기 오피스 오라고, 출근하라고 회사에서 압박을 주기 시작했다.
2. 당시 개인적으로 큰 사건이 있었다. 한국에서 누가 새벽에 집에 침입을 시도하는 바람에 경찰을 부르고 집을 급하게 빼게 되었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에 휩싸여서 한 일이주 정도인가 일에 집중을 잘 못했다. 원래 한국 사는 것도 아니라, 단기로 집을 구하기도 힘들기도 해서, 겸사겸사 이 기회에 발리로 이사 가기로 결정했다. 회사에서는 다들 이 일을 알고 있었는데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 하나 없었고, 새로 배정 받은 팀에서는 일 왜 안하냐고 눈치를 줬다.
3. 발리로 이사온지 이주 쯤 됐나, 대표가 전화해서 “팀원들이 내가 발리 간 거 맘에 안 들어한다”고, 팀리드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이야기했다. 정확한 워딩은 “다른 사람들은 한국에 있을 수 있는데, 굳이 어려운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택한 것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였다.
4. 그리고 내 사이드프로젝트도 언급했다. 채용될 당시부터 소셜미디어 계정을 다 보여주고 계약한 건데, 소셜미디어 글 하나 바이럴타니까 갑자기 “그다지 절박해보이지 않는다. 회사에 진심이 아닌 것 같다.” 면서 “이 회사 아니면 갈 곳 없는 사람들”과 비교했다.
뭐 그냥 한국 회사면 이해하겠는데, 처음에는 아량이 넓은 듯, 다 이해할듯, 계약할 때만 해도 웃으면서 다 수용했다가, 몇 개월이 지나자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계약도 바꾸자고 했다. "원격 근무 회사"로 광고하지만 그건 다 사람을 뽑기가 어려우니, 스타트업은 원래 그렇게 보여야 하는 거라고, 나한테 충고도 했다.
역겨운 논리였다. 아니 이게 바로 그 말로만 듣던, "한국" 회사인가?
나는 이전에 이미 풀리모트인 미국 회사에서 일을 일 년 이상 한 상황이었고, 그 회사는 정말 가족같은 따뜻한 곳이었다. 팀 회의에서는 서로 어디로 여행갔는지, 어디로 이사했는지 서로 묻고, 사진을 공유하고, 새로운 도시로 오면 맥주 한 잔 같이 하자고 진심으로 맞아주는 곳이었다.
그런 리모트 회사에 적응하고, 진짜 "리모트"인 줄 알고 한국 회사를 들어갔는데. 이럴 것 같아서, 일부러 풀타임 계약을 미루면서 몇 개월이나 지켜봤는데, 풀타임 전환하자, 태도를 180도 바꾸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저 대표란 인간이 전화해서 나에게 이야기할 당시에 이미 나는 2-3인분을 하고 있었다. 내 본업은 사업개발이다. 근데 사업개발 이외에도 채용, 기획, 프로젝트 관리, 마케팅, 리서치, 심지어 나만 영어할 줄 안다고 번역도 시키고 있었다. 이걸 제가 해도 돼요..? 물어하면 그냥 일단 하래서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 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저 “발리로 이사간 사건” 이후 팀원들 분위기가 슬슬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다들 나한테 말도 안하고, 물어봐도 온라인 회의에서 안읽씹 - 대답을 안 해주기 시작했다. 슬랙 업무 요청도 뭐 해달라고 하는 거 전부 무시한다. 사사건건 모든 일에 대해서 내탓을 하기 시작했다. 업무를 큰 거 다 하고 성과를 내와도 원래 내 업무가 아닌 아주 작은 디테일을 걸고 넘어지면서 밑도 끝도 없이 “일을 열심히 안한다”고 전체 회의마다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업무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이유없이) 집단으로 나를 무시하고 공개 회의에서는 끊임없이 공개 저격을 하는 이 이상한 사태가 해결되기를 기다렸다. 내 업무에서는 해달라는 것 다 했고, 성과를 냈기에,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것이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해결 되나 싶으면 점점 더 심해졌다. 한 번은 온라인 회의에 들어갔는데 마케팅 인턴이 모르고 자기 마이크를 켜둔 적이 있었다. 계속 조용히 있다가 내가 말할 때마다 조용히 “아, 뭐래”, “아 ㅋㅋ”, “뭐래 쟤?” 마이크에 읊조리는 것이 아닌가. 마이크가 켜져 있어 음성이 선명히 들렸다. 나한테 하는 것이라 처음에는 상상도 못했다가 나중에야, 아, 나한테 한 거구나 알아채게 되었다.
인턴이 그런 얘기를 하는데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 조용히 그걸 듣고 있었다면, 회사 내에서 마이크 끄고서는 나에 대해 어떻게 깎아내리고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가고도 남는 상황이었다.
내가 “발리에 있어서”, “사이드프로젝트를 하기 때문에”가 점차 “일을 열심히 안해서”로 변하더니, 나를 팀에서 싫어하는 게 점점 심해져 이제는 대놓고 꼽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중간부터는 파트너사들이 대부분 미국 -유럽 타임으로 일해 오후에 잠깐 회의만 들어가고 오후 8시쯤 근무를 다시 시작하는 스케쥴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두고서는 내가 “업무 시간에 슬랙에 없다”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근무를 태만하게 한다”고 주장하며 내가 없다고 생각되는 오후 시간에 “15분 이후 시작되는 번개 회의”를 잡아 나의 “잘잘못 & 대책 회의”를 10명 정도를 불러 청문회를 했다. 3-4번 정도는 그런 일이 있었다.
회의 알림이 떠서 들어가서 이야기를 해보면, 사실 내가 잘못한 게 없었다. 근데 회의 들어가면 다른 팀장 2-3명이 매번 일제히 갑자기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잘못한 거 같다. 저것도 잘못한 거 같다. 이것도 제대로 안하지 않았냐. 하나씩 따지면 내 잘못은 분명히 없다. 그럼 갑자기 입을 꾹 닫는다. 잘못 아닌 내 잘못을 가려내는데 10명의 30-60분이 몇 번이나 쓰여졌다. 회의가 끝나고, 따로 개인톡으로 이런 일은 따로 얘기해달라고 하면, 안읽씹 당했다. 이런 의도적인 “전체 공개 망신 주기”를 3-4번을 계속해서 당했다.
몇 번은 기획서를 만들고, 공개 회의 전 팀원한테 미리 보고하라고 해서 미리 보고했더니, 갑자기 다음날 공개 회의 가서 자기가 한 것 마냥 이야기했다. 90% 해서 넘긴 걸 그대로 자기가 가지가서는, 아, 뭘 잘못했길래 자기가 그냥 해버렸다, 자기가 다 다시 했다며 이야기했다. 그게 몇 번 반복되자, 그 인간들이 너무 역겹고 더러워서 말을 섞기만 해도 토악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 해놓은 업무를 통째로 몇 번이나 빼앗겼다.
정이란 정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하도 이유도 모른 채 욕이란 욕을 다 먹으니, 뭐 하나 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잘못한 게 없어도 잘못했다고 욕을 하는데, 진짜 혹시 하나라도 잘못하는 날에는 어떻게 될까?
극도로 불안 장애와 우울 장애가 겹쳐서 오기 시작했다.
정신과에 가서 약을 처방 받았다. 팀 미팅에 들어가야할 때마다 너무 불안하고, 마음이 힘들었다. 팀 미팅에서 또다시 영문도 모른채 공개 저격과 집단적인 추궁을 당한 뒤에는 집에와 혼자 울기도 했다. 잠이 오지를 않았다. 마치 학창 시절에 왕따를 당하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이유 없이 나를 집단이 아주 미워한다는 그 기분이 너무 힘들었다.
혼자 독방에 갇혀서 이유도 모른채 고문당하는 느낌이었다. 가스라이팅이 아주 제대로였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계속 회의 때 들어갈 때마다 “잘못했다” “일을 안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외쳤다.
외부 협업이 많아서 외부 파트너사와 논의를 주로 내가 진행했는데, 파트너사랑 딜을 진행하기로 하고, 회의에서 승인 받고, 이후 실무진에게 자료나 지원 요청하면 모른 척을 한다. 내 메세지를 무시하다 갑자기 자기네는 이런 일 해준다고 한 적 없다 시전하며 또다시 “잘못했다” 이야기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자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도 두 달이나 먹게 되었다. 마지막 달에는 회의 들어갈 때 거의 공황 장애가 올 것 같아서 회의도 들어가기가 힘들어졌다.
퇴사를 결심하고,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니, 그래도 이번 프로젝트 마칠 때까지만 버텨야겠다 생각하고 이 악물고 버텼다. 한달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5개월이나 딜레이되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 드디어 퇴사할 수 있게 되었는데, 마지막 달 계약 종료 30일 전에 서로에게 통보하는 계약 조항이 있어, 대표랑 얘기하고 30일 기다려 퇴사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달에는 회사에서 나한테 인수인계만 부탁했다. 업체 리스트 만들고 새로운 담당자 소개해달라고 했다.
업무 종료까지 업체 리스트 만들고 요청한 인수인계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회사에서 갑자기 “그동안 회사 근무가 태만했으니 양심상 마지막달 급여는 못 주겠다, 자진 반납해라”며 협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 본인의 평판을 깎아먹는 것이다” 시전.
나는 이 일련의 사태가 상당히 억을해서 주변 (한국인 & 외국인) 친구들에게 상담했더니 친구들이 하나같이 “한국 회사 종특”이라고 이야기해줬다.
그도 그럴게 이게 미국에서 이랬으면 여러모로 소송감이다. 미국 회사 다닐 때 너무너무 행복하게 다녔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테크 회사는 다 그렇겠지 생각한 지난날의 나의 아둔함이 후회될 따름이었다.
주변 봐도 한국 회사 생활이 원래 이런 건가 싶다. 인간 미만의 생활. 지독한 가스라이팅과 갑질. 다들 이렇게 회사를 다니고 있는 거라면, 한국 회사는 살면서 다시는 못 다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