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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풋 Aug 25. 2023

자연재해를 온몸으로 맞고 다니는 팔자(1)

2018년 일본 최악의 호우

2018년은 나에게 일본 출장으로 가득 찬 아주 즐거운 해였다. 5월부터 시작해서 그 해 연말까지 거의 매달, 회의가 많을 때는 한 달에 두 번씩 일본에 출장을 가서 3~5일씩 묵으며 일을 했었다. 지역을 설명하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오사카, 교토, 고베 등으로 알려져 있는 서일본 즉, 간사이(関西) 지역에서도 일본 최대 규모 호수인 비와호(琵琶湖)가 위치한 시가현(滋賀県)이었다. 이곳은 비와호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지역이었고, 그 안에서도 우리와 미팅할 회사가 위치한 곳은 역 주변을 제외하고는 논과 밭이 펼쳐진 그야말로 시골 중에서도 시골이었다. 


호텔에서 바라본 비와호(琵琶湖). 바다처럼 보이지만 호수가 맞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일본 교환학생 시절의 인연으로 나와 16년째 '가장 친한 일본인' 친구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녀석이 있는데,  이 녀석이 마침 이 근처에 사는 것이 아닌가. 시가현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막상 나의 출장지와 이렇게 가까울 줄은 상상도 못 했던 터라 더욱 반가웠다. 원래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한국에서 혹은 일본에서 만나는 사이였는데 출장 덕분에 친구와 일 끝나면 같이 가볍게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 수 있어서 두 배로 즐거운 출장 일정을 보낼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이렇게 거의 매달 시가현으로 출장을 다녔는데 하필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대부분의 출장 일정마다 집중호우와 여름 태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2018년 7월, 출장 기간 동안 마침 서일본 지역에는 집중 호우가 쏟아졌다. 워낙 일본은 비가 많이 오는 나라긴 하지만 이때의 호우는 특별했다. 사망자가 100명이 넘게 발생한 "헤이세이(일본의 연호로 1989년이 헤이세이 원년이다) 이래 최악의 호우"로 일컬어지는 엄청난 호우였던 것이다(현재도 일본 포털 사이트에 '2018년 7월'까지 입력하면 '2018년 7월 호우'로 자동완성이 된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 전날부터 퍼부은 엄청난 폭우로 원래 잡혀 있었던 오전 회의도 취소되고 우리는 부랴부랴 아침부터 공항으로 이동을 했다. 일본에 거주해 본 사람은 알 텐데, 일본은 워낙 각종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나라이다 보니 약간의 위험 요소만 생겨도 대중교통이 바로 운행을 중단한다. 특히 JR(전철) 선은 태풍이 접근하거나 약간의 지진 발생에도 바로 운행을 중단하기로 유명한데, 우리는 이 늘 JR선을 이용해 공항으로 이동을 했었다. 

집중호우로 인해 운행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전철 안내문

일찌감치 우리의 귀국일 전날부터 JR 운행 중단이 예고되어있던 탓에 애초에 최단 거리 루트는 사용할 수가 없어 새로운 루트를 찾아야 했었는데 설상가상 폭우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버스와 전철의 운행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구글 맵 및 기타 일본 교통 관련 어플도 모두 소용이 없어서 호텔 프런트에 문의를 해서 현재 운행하고 있는 노선 중 우리가 간사이 국제공항(関西国際空港)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해 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호텔에서 현지 지역 분들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를 타고 그 시간대에 운행하는 노선이 있는 전철역으로 가서 전철을 두 번을 더 갈아타면 공항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부랴부랴 출발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귀국행 항공편이 저녁 시간이었다는 것. 우리는 정해진 시간 내에 어떻게든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 미션을 등에 업고 비장한 표정으로 호텔을 나섰다.


이동은 예상대로 결코 쉽지 않았다. 폭우로 인해 도로가 정체되어 버스도 제때 오지 않아 한 시간 가량 버스를 기다리고 겨우 탑승을 했는데, 우리처럼 뜻밖의 상황에 갑자기 몰린 승객들로 버스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일본 여름 특유의 더위와 습함, 도로 정체와 버스 안의 혼잡,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커다란 캐리어. 그러나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버스와 전철의 운행 상황이 시시각각으로 바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역을 가도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전에 일본에 거주했던 시절 이런 상황(이보다 더한 상황. 예를 들면 동일본 대지진 등)을 많이 경험했기에 그러려니 했었는데, 나의 클라이언트 분들은 적지 않게 당황하신 듯했다. 아침에 호텔에서 알려준 루트를 알고 있고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기에 클라이언트 분들을 이끌고 침착하게 움직였다. 거의 전시상황에 준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비장하게 이동을 계속해나갔고, 여러 번의 환승 끝에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평소 같으면 최단거리로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 공항까지 2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이 날은 공항까지 무려 7시간이 걸렸다. 저녁 항공편을 예약해 놓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우리는 공항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클라이언트분들과 나는 이 날을 계기로 전우애(?)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되었고, 우리는 탑승 전 식사 자리에서 이것도 기념이라며 다 같이 사진까지 찍었다. 원래 함께 사진을 찍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하루 종일 마음 졸이며 고생을 하다 공항에 도착하다 보니 다들 살짝 제정신이 아니었던 같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무사히 우리는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었고 이 날의 일은 이후의 출장에서도 가끔 회자되는 즐거운 에피소드로 자리 잡았다. 혹독했던 역대급 폭우 속의 무사귀환. 나는 이때만 해도 이 폭우가 나의 자연재해 역사에서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괜히 제목을 '자연재해를 온몸으로 맞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지었을까. 껄껄.

폭우 같은 전시상황이 아닐 때는 대부분 교토역에서 환승하며 맛있는 것을 먹고 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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