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트랑 관광지, 느리지만 걸어서
전날 밤 갑자기 내린 비를 보며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우기 시즌의 나트랑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나를 맞아주었다. 마치 나트랑이 외곽을 걸어 다니려는 내 결심을 축복해 주는 듯했다. 본격적으로 나트랑 외곽의 관광지를 걸어 다녔다. 생각보다 나트랑은 볼만한 관광지는 많이 없지만 관광지와 관광지사이를 걸어 다니며 진짜 나트랑의 모습 속에 녹아들 생각이다. 목표는 포나가르 사원부터 롱선사까지.
포나가르 사원은 나트랑 시내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카이강 건너편에 있다. 카이 강의 물은 흙빛으로 탁했지만 아침 시간엔 해류가 북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바닷물은 비교적 맑게 보였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새벽부터 아침 사이 해변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졌다.
아직 오전이지만 벌써부터 햇빛이 머리를 뜨겁게 달굴 때쯤 포나가르 사원에 도착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국적인 건축 양식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부지런히 사원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뒤에서 나 또한 조용히 멋진 포나가르 사원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을 위해 서로 배려하는 모습에서 서로 미소가 번지는 것이 행복하게 여행을 즐기고 있는 거 같아서 나 또한 미소가 전염되었다.
사원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웅장함이 먼저 다가오고 가까이서 보면 세밀한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돌을 깎아 새긴 문양과 종교적 의미를 보며 당시에 이 사원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상상이 갈 정도였다. 사원 옆으로는 나란히 작은 건축물이 서있었다. 한 바퀴 둘러본 뒤, 나는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같은 바람이라도 그늘에서 맞는 바람은 뜨겁던 몸을 선선하게 식혀주었다. 땀이 식자 갈증이 올라와 물을 마실 겸 다음 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며 그랩을 타고 왔던 다리를 걸어서 건너며 담시장을 거쳐 롱선사를 향했다. 다리를 건너며 만난 동네는 관광지의 화려함과 달랐다. 에어컨 없이도 묵묵히 일하는 가게 주인들, 작은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는 사람들, TV 멜로디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웃고 떠드는 풍경. 막상 보면 내 주변에서 언제든지 보일 수 있는 일상들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크게 보면 비슷한 거 같았다. 이런 곳까지 걸어 다니는 낯선 외국인인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많기에 좀 부끄러웠지만 옅은 미소로 인사를 대신하며 지나갔다. 이렇게 보니 해외에 나가면 유독 표정이 풍성해지는 내 모습을 보면 나는 역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여행자체를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여행을 통해 내 인생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더욱 여행을 하는 것이 값지지 않을까? 실제로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 주었기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다.
롱선사에 거의 다다랐을 때 작은 공원을 지났다. 정돈된 나무 사이로 펄럭이는 베트남 국기가 눈에 띄었고 공원은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공원을 가로질러 가다 보면 작은 시장이 나오는데 롱선사에 들리기 전 둘러보았다. 시내의 관광시장과 달리 이곳에 다양한 식자재와 생소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어 천천히 구경하기 좋았다. 익숙지 않은 음식 냄새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고 잘 익은 과일의 달콤한 향에 구매를 고민하기도 했다. 관광객을 위한 상점으로 가득한 시내 시장과는 다른 우연히 마주친 낯선 경험이었다.
거대한 입구를 지나 롱선사에 도착했다. 위로 보이는 작은 불상의 모습이 미리 보이는데 저곳까지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몇몇 사람들은 돈을 내고 오토바이로 근처까지 올라갔지만 나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계단을 따라 오르며 스님들의 숙소와 오래된 종 등 충분히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10분쯤 걸어 올라가면 마주하는 거대한 불상. 시야에 방해되는 것들 하나 없이 맑은 하늘 아래 우둑하니 앉아있는 불상을 올려다보며 한 걸음씩 올라갔다. 걸어 다니며 흘렸던 땀과 습기로 찡그린 얼굴을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 앞에서 풀렸다. 좋지 않은 기분을 가지고 있어 봤자 달라질 게 없으니 흘려보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닐까. 누워있는 불상까지 보고 난 뒤 롱선사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근처에 다른 사원이 있어 즉흥적으로 둘러보기로 했다.
롱선사 인근에 작은 사원도 있다. 관광객에게는 유명한 곳이 아닌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문이 잠겨 내부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입구의 불상이 롱선사에서 본 것과는 달라서 다시 와서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남았다. 조만간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근처에 나트랑역이 있어 나트랑역까지 보고 일정을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고 이내 비가 쏟아졌다. 서둘러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가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 편리하고 베트남의 저렴한 택시비는 여행의 합리성을 더해 준다. 하지만 이동 과정에서 풍경을 빠르게 지나쳐 버리면 그곳의 진짜 매력을 놓칠 때가 많다. 느리게 걷는 여행은 피곤하지만 그만큼 잔잔하고 뜻밖의 발견을 준다. 이것 또한 여행의 묘미가 되지 않을까.
걷는 걸 좋아하는 나는 자연스레 이 매력에 빠져들었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짧은 여행 안에서 잠깐이라도 속도를 낮춰 걸어보길 바란다. 느림은 때로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