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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Aug 22. 2024

런던 절에서 법회 참석하고 복합문화센터 구경하기

2024년 5월 19일

감사하게도 날이 맑은 일요일, 노비튼(Norbiton)이라는 동네에 왔다. 런던의 5 구역(zone 5)에 속하는 곳인데, 여행자는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올 일이 없다.


런던은 구역에 따라 이렇게 나눠 부른다.

- 1, 2 구역: 센트럴 런던(Central London)

- 3, 4, 5, 6 구역: 그레이터 런던(Greater London)

관광지로 유명한 스팟들은 보통 센트럴 런던에 모여 있다.


아무튼 이 동네를 방문하게 된 건, 조계종에 속해 있는 절 '연화사'의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친구가 어렸을 때 종종 찾은 곳인데,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 오랜만에 가보잔다. (참고로 저는 무교입니다...)


절을 많이 가본 건 아니지만, 주택처럼 생긴 곳은 처음이라 마냥 신기했다. 근데 안에 들어가니 또 익숙한 향과 상차림이라 기분이 묘했다. 한인 교회는 많이 들어봤어도, 한인 절은 또 처음이라 마냥 재밌었다.


한 시간 동안 식순에 따라 스님의 독경을 듣고, 일어나서 절을 하고, 불상에 물을 끼얹는 의식까지 지켜봤다. 그래도 템플스테이를 몇 번 갔다 왔다고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외부인에게도 친절한 분위기라 마음이 점점 편해졌다. 스님께서 영어를 섞어 말씀을 전하시는 것도 인상적이고, 불자가 아니지만 친구 뒤에서 쭈뼛거리는 나에게도 엄청 친절하셨다.


그리고 보살님들이 직접 만든 빵과 강정을 챙겨주셨는데, 생각 없이 먹었다가 맛있어서 놀랐다!


*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나의 인생버거인 어니스트 버거(Honest Burgers)에서 점심을 먹는 거였다. 노비튼 역에서 센트럴 런던으로 한 번에 들어오는 기차가 워털루(Waterloo) 역에서 정차했고, 그 앞에선 '사우스뱅크 센터 푸드마켓'이 열렸다. 매주 금토일 오후에만 열리는 푸드마켓인데, 한정판(?)은 못 참지. 어니스트 버거는 마음에 묻고 푸드마켓으로 간다!


음식은 물론, 디저트에 커피와 칵테일 등의 음료까지 푸드트럭이 줄지어 있었다. 한참을 구경하다 염소치즈 크레페와 철판 닭구이를 골랐다.


크레페는 보통 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을 얹어 디저트로 먹어왔는데, 역시 음식의 변주는 끝이 없다. 쫀득하고 따뜻한 크레페 반죽,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치즈의 짭짤함과 로즈마리의 향긋함. 친구랑 재료들을 하나씩 읊어가며 까먹지 말고 집에서 만들어먹자고 다짐했다.


닭구이도 상당히 맛있었는데, 특이한 시즈닝이 뿌려진 감자튀김과의 조화가 한몫했다. 맨 위에 뿌린 건 라임즙을 넣은 칠리소스였는데, 시큼함이 느끼함을 싹 잡아준다.


사실 해가 강하게 내리쬐는 곳에 오래 있으면 몸이 간지러워지는데, 꿋꿋이 손차양을 만들며 열심히 먹었다. 런던의 이 날씨는 꽤나 귀하기 때문에 있을 때 누리는 게 좋다.


*

일요일 런던 나들이는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er)'에서 마무리했다. 바비칸 센터는 유럽 최대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콘서트나 연극 등의 공연도 상영하고, 영화나 전시 등을 자유롭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따로 있지. '바비칸 컨서버토리(Barbican Conservatory)'라는 런던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온실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하는 게 좋지만, 우리는 운 좋게 워크인으로 입장했다. 입장료는 무료.


우리가 방문했을 땐 '란자니 세터(Ranjani Shettar)'라는 설치 예술로 유명한 작가와 콜라보 전시 중이었다. 온갖 종류의 식물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땅에서 솟아오른 공간에, 꽃 같기도 구름 같기도 한 설치물들이 포인트를 더했다.


식물원을 갔음 갔지, 오롯이 온실만 한 시간을 구경한 적은 처음이다. 더위를 잘 안 타는 편인데도 계단을 오르내리니 얼굴이 따끈따끈했다. 나른해진 채로 정돈되지 않은 정원 속에 있자니 잠깐 다른 세계에 온 것 같네. 여행 자체도 현실과는 다른 세계 같은데, 그 안에 또 다른 세계를 열고 들어온 기분은 묘했다.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도 생각나고. 절망 속에서도 식물의 생명력을 믿고, 온실 안에서 푸른빛의 모스바나를 키우던 존재를 떠올린다. 식물만이 가득한 공간은 정말 고요한 생명력을 내뿜는구나!


기념품샵을 돌아보다 리소그래피 스타일의 일러스트 코너를 발견했다. 온실 풍경을 담은 소품 중 티타월이 제일 눈에 들어왔다. 친구도 마음에 들어 했고, 서로 선물한 셈 치자고 하면서 하나씩 샀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주말은 기묘하고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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