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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Jun 20. 2019

실망시키지 않는 '기내식 맛집' 에어프랑스

파리-인천 구간 에어프랑스(AF0262) 탑승 후기 

포르투갈에 갈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올 때도 에어프랑스 이코노미석을 이용했다. 이번에도 파리를 경유하며 '파리-인천' 노선으로 11시간 장거리 비행을 했다. 


'역시나'였다. 

무슨 뜻이냐 하면, 역시나 에어프랑스는 '하늘 위 맛집'이었다는 거다. 

(참고 글 : #1. 기승전 기내식이었던 에어프랑스 이코노미석)




저녁 : 여기서 갈비찜이요? 


이륙하고 얼마 안 되어 가르마가 인상적인 남자 승무원이 메뉴판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는 한식과 프랑스식 중에서 고르는 것이었다. 메뉴판을 빠르게 훑는 동안 단연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갈비찜?"


더 이상의 고민 없이 한식을 먹기로 했다. 프랑스식 메인 요리는 '야채와 함께 소스에 졸인 닭고기'였는데, 일주일 넘게 고향 음식을 그리워한 한국인에겐 갈비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작은 당근과 마늘이 듬뿍 들어간 갈비찜은 정말 부드러웠다. 압력솥에 조리한 것처럼 고기는 결대로 뭉그러지고 야채도 소스를 잘 흡수해 촉촉했다. 간이 조금 셌지만 밥과 먹으니 딱 좋았다. 길게 썬 돼지고기를 넣은 야채볶음은 그저 그랬다. 올리브 오일을 많이 뿌린 건지 기름기 때문에 야채가 아삭하지 않았다. 치아바타는 무난했는데 버터가 맛있어서 금방 다 먹었다. 


식사의 마무리는 와인과 치즈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둘의 궁합이 환상임을 알게 됐다. 화이트 와인은 약한 탄산 때문에 청량감이 느껴졌고, 레드 와인은 도수는 꽤 높지만 맛은 순했다. 

 

아까 본 남자 승무원이 접시를 가져가며 커피나 차를 마실 건지 물었다. 뜨거운 홍차까지 마시니 식곤증이 몰려왔다. 양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식사 때 받은 포장 생수와 양치 도구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기내 수돗물은 손 씻기엔 괜찮아도 입을 헹구기엔 껄끄럽다. 



선잠이 들었다가 난기류에 눈을 떴다. 


"와아..."

진한 주황색이 가로선을 만든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이럴 때 읽으려고 구매한 전자책이 있다. 


바로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이다. <어린 왕자>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생텍쥐페리는 프랑스 작가이자 비행사였다. <야간 비행>은 여러 위험 요소가 있던 초기 우편 비행 사업에 조종사로 가담했던 그의 경험담이 담긴 소설이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한 원칙주의자인 항공로 총책임자 리비에르가 야간 비행을 관철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은 소설이다.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이나 후배 조종사의 희생과 같은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주인공의 굳건한 의지가 포인트다. 그러나 한창 구름 속을 날고 있는 독자에게는 인상적인 부분이 따로 있었다. 


하나는 아르헨티나행 우편기를 모는 조종사가 창밖의 밤하늘을 묘사하는 부분. 

"밤에 구름이 눈을 부시게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보름달과 모든 별자리들이 구름을 빛나는 물결로 변하게 한 것이다. (생략) 모든 것이, 그의 두 손이, 옷이, 비행기 날개 등이 빛나고 있었다. 빛이 별들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래와 그의 주위에 있는 이 새하얀 구름으로부터 발산되었기 때문이다."

비행기 아래로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 모습을 힐끔거리며 읽으니 절로 감정 이입이 됐다. 한정된 시야로도 이렇게나 아름다운 밤하늘을 탁 트인 조종석에서 보면 얼마나 더 감동적일까. 


또 하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난기류를 만난 조종사가 심리적으로 크게 동요하는 장면. 

"급 하강할 때마다 엔진이 어찌나 심하게 요동치는지 비행기 전체가 분노에 떠는 것처럼 흔들렸다. 조종석 바깥은 모든 것이 뒤섞인 어둠, 태초의 암흑과 같은 어둠에 잠겨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더는 분간할 수 없었다. (생략) 숫양의 발길질 같은 돌풍 속에서 조종간의 진동을 완화하기 위해 그는 전력을 다해 핸들을 움켜잡았다."

항공 사고는 대부분 이착륙 중에 발생한다지만 하늘 위에서 비행기가 흔들리는 건 아무리 경험해도 적응이 안된다. 안 그래도 겁이 많은데 어두운 기내에서 혼자 독서등을 켜놓고 이 장면을 읽자니 작은 흔들림도 몇 배는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눈으로는 책을 따라가며, 손으로는 좌석 팔걸이를 쥐었다 폈다 하며 밤을 보냈다. 




아침 :  부담스럽진 않지만 든든하게 


도착을 한 시간 반 앞두고 두 번째 식사를 시작했다. 아침은 단일 메뉴라 금방 서빙됐다. 


메인은 야채를 곁들인 달걀 요리였다. 시래기와 비슷하게 생긴 녹색 채소와 버터를 넣어 볶은 스크램블드 에그가 따뜻하게 나왔다. 이전 식사에서도 먹은 빵과 버터에 딸기잼을 듬뿍 발랐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먹으니 속이 훈훈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스펀지처럼 푹신푹신한 식감의 마들렌까지 먹고 나니 배불렀다. 후식으로는 사과 퓌레를 떠먹었다. 사과 외엔 아무 첨가물도 들어있지 않은 듯한 정직한 맛이었다. 


아침에 먹기엔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든든한 한 끼였다.




간식 : 출출할 땐 셀프바


에어프랑스는 식사 외에도 수시로 먹을 수 있는 게 많다. 새벽에 목이 말라 찾아간 갤리에는 음료수 외에도 다양한 간식거리가 있었다. 



말로만 듣던 셀프 스낵바(self snack bar)였다. 엄지 손가락 크기의 바싹 구운 브루스케타, 버터향이 많이 나는 비스킷, 초콜릿 칩이 씹히는 시리얼 바, 알사탕만 한 킨더 초콜릿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단맛, 짠맛 가리지 않는 나에겐 모두 맛있었다.  그 외에도 식전에 주는 소금맛 프레첼 과자나 새벽 3시쯤 비몽사몽 먹게 되는 아이스크림이 있다. 


입이 심심할 틈을 주지 않는 에어프랑스는 이번에도 좋은 사육사였다! 






한 달간의 포르투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는데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홀가분한 것 같기도, 아쉬운 것 같기도 한데 긴장이 탁 풀려버려 구름에 둘러싸인 비행기처럼 머릿속이 부연 채로 11시간을 날아왔다. 제자리로 돌아와 며칠을 지내보니 흐릿했던 아쉬움은 또렷한 섭섭함과 그리움이 되었다. 포르투갈에서 남긴 무수한 사진과 기록을 정리하며 다짐했다.


"꼭 다시 보러 갈게, 포르투갈!"


P.S. 두 편의 에필로그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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