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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Feb 16. 2020

케익과 햄버거로 시작한 런던에서의 하루

고양이도 보고 가세요

런던에서 고양이와 함께 아침을 맞는다는 것 

런던 여행의 첫 숙소는 'Elephant and Castle'이라는 지하철 역 근처 에어비앤비였다. 5박에 40만 원이라는 가격이 가장 큰 장점인 곳이었다. 가격 다음으로 마음에 들었던 건 덩치가 장군감인 고양이, 해기스(Haggis)였다. 


해기스는 고양이의 탈을 쓴 강아지 같았다. 만난 지 10분 만에 그는 우리를 졸졸 따라다녔고, 틈만 나면 무릎에 올라와 쓰다듬어 달라고 보챘다. 어색함은 오로지 우리의 몫이었다. 그러나 저 세상 친화력을 가진 해기스 덕에 우리의 낯가림은 이틀을 못 갔다. 


둘째 날 새벽 5시에 친구가 깨지 않게 조심하며 거실로 나갔다. 소파 팔걸이에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는 해기스와 눈이 마주쳤다. 괜히 머쓱한 기분이 들어 그의 등을 한 번 쓰다듬고 주방에 갔다. 시리얼과 우유를 차례로 그릇에 부었다. 


식탁 의자에 앉아 바나나와 함께 금세 눅눅해진 시리얼을 먹는 동안 해기스는 조용히 다가와 식탁 모서리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앉아 나의 식사를 지켜봤다. 설거지 후 일기장에 메모를 하거나 전날 찍은 사진을 정리할 때도 그는 자리를 지켰다. 이것이 며칠간 반복되니 어스름한 거실에서 해기스와 눈인사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에어비앤비를 떠나는 날 새벽, 나는 일기장과 필통을 한 구석에 밀어 두고 해기스의 머리와 등과 배(꼬리는 싫어했다)만 열심히 쓰다듬다 아침을 맞이했다. 




버로우 마켓에서 만난 인생 당근 케익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식 시장인 버로우 마켓(Borough Market)은 숙소에서 지하철로 30분 거리였다. 토요일은 아침 8시부터 장이 서기 시작하는 날이라, 우리가 도착한 10시엔 이미 현지인과 관광객으로 떠들썩했다.

 


마트의 식품 코너와 푸드 코트를 야외에서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과일, 채소, 치즈 등의 식료품과 다양한 국적의 요리를 파는 가게를 지나 우리의 발걸음은 'Bread Ahead'라고 적힌 팻말 앞에 멈췄다. 빵을 밥처럼 먹는 내가 산처럼 쌓여 있는 스콘과 시나몬롤을 지나칠 수 있을 리 없었다. 


시나몬롤 한 개와 당근 케익 한 조각을 샀다. 가격은 6.5파운드, 한화로는 12000원. 

"맛없기만 해 봐."

"어떻게 할 건데?"

"속상하겠지."



근처 벤치에 앉아 시나몬롤부터 급히 베어 물었다. 

"따뜻하지 않은 시나몬롤은 역시 감동을 주지 못해."

"맞아. 맛있긴 한데, 특별한 맛은 아니야."


시나몬롤의 평범함은 당근 케익의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한 일보 후퇴였다. 두껍게 발린 프로스팅과 다진 호두가 듬뿍 들어 있는 촉촉한 시트는 정말 조화로웠다. 그다지 단맛을 즐기지 않는 친구도 '여긴 또 오고 싶다'며 거듭 이야기했다. 

"이렇게 맛있는 당근 케익은 먹어본 적이 없어."

"인생 당케다."



과하게 든든한 아침 식사

런던에서 간 첫 식당은 'The Breakfast Club London Bridge'였다. 평일엔 오전 7시 30분, 주말엔 그보다 30분 늦게 영업을 시작하는 곳이다. 길에 사람이 많지 않아 식당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는데 만석인 데다 5팀이 대기 중이었다. 



25분 후 구석 자리에 착석했다. 메뉴판을 한참 보다 '버터넛 샥슈카 베네딕트(Butternut Shakshuka Benedict)'와 '베이컨, 에그, 치즈&해시 브라운 샌드위치(Bacon, Egg, Cheese & Hash Brown Sandwich)'를 주문했다. 사실 신선한 야채가 들어간 샐러드를 먹고 싶었는데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고칼로리, 고단백 요리가 메뉴의 대부분이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친구나 연인끼리 온 2인 방문객이 많았다. 그들의 대화는 다양한 억양과 언어로 오갔고, 알아듣진 못해도 기분 좋은 내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제야 내가 런던 한복판에 있는 식당에 앉아 있다는 걸 실감했다.


에그 베네딕트는 상상한 그 맛이었다. 으깬 아보카도와도, 샥슈카 소스와도 잘 어울렸다. 베이컨과 달걀 프라이가 들어간 샌드위치는 햄버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충 살자, 햄버거 빵으로 샌드위치 만드는 런던 식당처럼."

"맛은 있지?"

"응. 근데 맛도 햄버거야."



이렇게 든든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거리에 나왔다. 반나절 후, 우리는 첫끼를 과식하길 잘했다며 서로의 식탐을 칭찬했다. 우리는 이날 3만보의 기적을 실천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프 마라톤도 아니고


대체 무얼 하며 3만보를 걸었을까요?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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