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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Jan 13. 2020

후유증 없이 여행하는 법

일상도 소중하니까요

퇴사 여행이나 낯선 도시에서 한달 살기가 여행업계를 강타하는 키워드가 됐다. 모든 걸 던져버리고 떠나는 종류의 모험들, 일상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는 것이 목표인 여행들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5월의 포르투


그런 여행은 시작부터 무척 큰 용기와 다짐을 필요로 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여행이 끝나고 돌아온 다음 마주해야 할 상황이 두렵기 때문이다. 스스로 던져놓은 일상을 다시 차곡차곡 주워담고, 여행하는 동안 뒤로한 현실에 적응하는 기간은 누구에게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에서 돌아와 바닥난 잔고를 앞에 두고 다시 해야 할 일을 마주하는 시기에 상당한 좌절감을 느낀다. 


나는 지난 해 한 달짜리 여행 두 번, 사흘에서 2주 사이의 짧은 여행을 서너 번 다녀왔다. 돌아온 후에는 늘 할 일이 있었으므로 재빨리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어떻게 비일상적인 여행의 단꿈에서 빠져 나와 돌아온 일상에서의 하루하루에 고통을 덜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일상의 루틴을 사수하기


프라하에서의 라떼 한 잔


여행이 지금까지의 나에게서 멀리 떠나오는 일이라고 매일 지켜왔던 루틴들을 내팽개친다면, 돌아왔을 때 그것들을 다시 획득하기 위해 배로 노력해야 하고, 그것은 여행 후유증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때문에 되도록 일상의 나로부터 완전히 달라지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면 지내는 환경이 달라지기에 지금의 나를 만들었던 오랜 습관들을 지속하기 위해 따로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이런 노력들이다: 매일 공원을 달리는 습관이 있다면 숙소 주변의 괜찮은 트랙을 찾기. 하루를 마무리할 때 차를 마시며 독서를 한다면 평소 마시는 차와 읽을 책을 챙기기. 아침으로 빵과 시리얼을 먹는다면 근처 마트에서 미리 사서 비축해두기. 일주일에 한 번은 새벽수영을 한다면 가까운 수영장과 운영시간, 비용 등을 알아두기. 


물론 완전히 다른 도시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과 같은 루틴을 반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저녁 퇴근 후 요가 학원에 다녔지만 여행지에서는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매일 밤 잠들기 전 영상을 보며 간단한 동작을 연습해 감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할 수 있는 일을 미루지 않기


이왕 지내던 곳을 박차고 떠나온 바, 떠나온 곳에 두고 온 일들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지인 중에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모두와 연락을 두절하고 모든 SNS를 끊은 채 완전히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단절은 여행의 맛을 살리기 위해 권장되는 행동이기도 하다.


여행 필수품 아이패드


하지만 집에 와서 산더미같이 쌓인 일들을 괴로움 속에 처리하고 싶지 않다면 사소한 일들은 바로 바로 처리해두는 것이 후유증 줄이기에는 더 낫다. 하루 5~10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할 수 있는 공과금 납부나 한두 줄로 답장할 수 있는 메일에 회신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큰 계획이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프로젝트라면 잠깐의 여행을 위해 미룰 수 있겠지만, 여행의 흥을 깨지 않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미루었다가는 몇 분이면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을 며칠에 걸쳐 해야 하는 불상사를 낳게 된다. 여행이 끝나고 가뿐한 마음으로 후유증 없이 일상에 복귀하고 싶다면 성가신 작은 일들은 재빨리 해치우자. 


여행 경비 가계부 쓰기


여행 후유증은 여행지에서의 신나고 행복했던 시간들과 돌아온 후의 자극 없고 지루한 일상을 비교하는 순간 시작된다. 그럴 때 여행 경비 가계부가 필요하다. 행복했던 기억 때문에 일상이 너무나도 괴롭게 느껴질 때마다 가계부를 펼쳐보면 된다.


여행 후유증과 가계부가 무슨 상관일까? ‘니스에서 정말 행복했지. 매일 아침 창문을 열면 보이던 동 트는 자갈 해변이 그립다’ 하는 생각이 들 때, 당시 가계부를 뒤적여보면 ‘숙소비 38만원’의 기록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왜 행복했는지 정확히 알게 된다.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가 있는 숙소에 머물렀기 때문에 그런 기억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여행의 소중한 기억을 돈으로 환산하다니 너무 금전주의적 사고 아닐까? 하지만 이런 버릇은 막연히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시 그런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소비와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한 현실적 감각을 일깨워주기 때문에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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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에서 묵었던 에어비앤비


결국 모든 이야기들은 일상적인 것을 놓치지 말라는 말뿐이다. 그렇게 일상에 집착할 거면 왜 여행을 가야 할까? 평생 여행하며 살 것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되돌아가야 할 일상이 있고, 여행은 일상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일상은 소중한 만큼 망가지기도 쉽다. 좀 더 오래 많이 여행하고 싶다면, 또 가볍게 떠나 가뿐히 돌아오고 싶다면 일상을 홀대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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