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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Apr 15. 2020

방구석 사진 여행 시리즈 - 포르투 편①

기록하길 잘했다.

지난주 토요일을 마지막으로 뉴질랜드 여행 관련 예약 건을 모두 취소했다. 계획대로라면 2주 후 나는 친구 3명과 함께 10일간 뉴질랜드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어야 했다. 에어뉴질랜드에서 100만 원 조금 넘는 금액으로 왕복 항공권을 결제하고, 4개 도시를 효율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동선을 짰다. 호텔과 호스텔 예약까지 마치고 매일을 뉴질랜드 여행 후기글 보는 낙으로 살고 있었는데, 그랬는데. 


세 달 후 우리는 여기저기 취소 메일을 쓰느라 바빴다. 각자의 임무를 마치고 한 자리에 모인 마스크 군단은 서로를 다독이며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이 언제일까.


사진으로라도 여행을 해야겠다. 다행히 작년엔 한 달 살기 두 번을 포함해 꽤 많은 곳을 다녀왔다. 부지런히 글과 영상으로 기록을 남겼지만 수없이 많은 사진이 빛을 보지 못한 채 외장하드에 잠들어 있다. 


필터와 보정 없는 원본 사진으로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함께 봐요♬ 



시작은 내 인생 첫 한 달 살기 도시였던 포르투. 포르투는 랜드마크가 많은 도시는 아니다. 화려한 쇼핑센터나 대형 테마파크는 찾을 수 없다. 인터넷도 느려 '도시형 인간'이 장기 거주하면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포르투 한 달 살기를 다시 해보겠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네. 너무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기자기하고 잔잔한 도시의 매력은 답답함을 금세 잊게 한다. 


▶ Eat In Porto


포르투에서 한 첫 외식. 2주간 머문 에어비앤비 근처 식당이었다. 위부터 차례로 대구구이, 폭립, 프란세지냐다. 통실통실한 대구살과 구운 매쉬드 포테이토는 참 잘 어울렸다. 폭립은 여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는 맛. 빵, 햄, 고기를 차례로 쌓아 밀가루 반죽으로 덮은 프란세지냐는 포르투갈의 대표 음식이다. 느끼하지만 맥주나 콜라와 궁합이 좋다. 


프란세지냐 맛집이라길래 찾아간 식당. 앞에는 대구 샐러드다. 아무리 기다려도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는 웨이터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대구 샐러드는 병아리콩이 잔뜩 들어 있었는데, 파릇파릇한 야채를 먹고 싶었던 나의 기대와는 아주 다른 외양과 맛이었다.


프란세지냐만큼이나 '포르투 먹킷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건 바로 해물밥과 문어밥이다. 토마토와 고수 맛이 많이 나는 국물에 바지락, 대구, 문어, 그리고 무엇보다 ★밥★이 듬뿍 들어 있다. 따끈하고 개운해서 해장용으로 좋을 것 같지만, 매번 화이트 와인과 함께 먹어 효능은 알 수 없다. 


같은 식당에서 먹은 정어리 튀김. 손가락보다 조금 큰 생선이 통째로 튀겨져 나온다. 비린 맛은 전혀 없고 씹을수록 고소하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추천으로 시내에 있는 레스토랑에 갔다. 목적은 토마토 소스에 다양한 내장 부위를 넣고 걸쭉하게 조린 요리인 트리파스를 먹는 것이었다. 의외로 익숙한 맛과 향이었다. 쫄깃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따뜻하고 아늑한 조명에 차분한 느낌의 인테리어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은 식사였다.


자타공인 빵순이인 나는 어느 나라를 가든 빵을 꼭 하루에 한 번은 먹는다. 숙소 근처에 아침 8시면 빵 굽는 냄새로 행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베이커리가 있었다. 골고루 먹어봤는데 기본 크루아상이 제일 맛있었다. 바삭함 대신 폭신함과 부드러움이 강점인 빵. 커피나 우유와 같이 먹으면 행복이 여기 있다. 

 

포르투엔 카페가 많다. 간판도 없고 테이블도 두세 개뿐인 로컬 가게부터 메뉴도 다양하고 공간도 널찍한 현대적인 카페까지. 급히 작업할 일이 생겨 눈에 보이는 근처 카페를 방문했다. 커피 맛도 괜찮고 아늑한 분위기도 매력적인데 사람이 없어 의아했던 곳.  


See In Porto


볼 때마다 새로운 도루 강 근처 풍경. 


공원에서 전망대 노릇을 하는 언덕에 올라가면 도루 강을 실컷 내려다볼 수 있다. 


날씨가 흐려도 괜찮다. 주황 지붕은 쨍한 하늘과도, 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도 잘 어울린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제일 왼쪽 집, 최근에 외관 페인트칠을 한 것 같은 중간 집, 그리고 촘촘한 벽돌벽이 인상적인 마지막 집까지. 아침마다 창문을 열고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과일 가게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조롱박 모양의 서양 배와 납작 복숭아가 인상적이다. 


비둘기가 있는 곳엔 갈매기도 있다. 둘은 전혀 다르게 생겼지만 하는 행동이 똑같다. 사람을 하나도 안 무서워하는 것부터 정체 모를 음식 덩어리에 우르르 모여드는 것까지. 


그늘에서 잠시 더위를 시키는 갈매기들. 사람도 셋, 갈매기도 셋. 


기념품 가게 몇 군데를 둘러보며 포르투갈은 패턴 강국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양한 무늬의 타일, 손수건, 접시 등을 보고 있으면 소장욕구가 샘솟는다. 


숙소의 거실과 침실. '공간에 정이 든다'는 걸 정말 많이 느꼈다. 떠날 때도 아쉬웠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자주 생각났다.


히베리아 광장으로 가는 길엔 좁은 골목이 많다. 


포르투에서도 "나만 고양이 없어."


도루 강변에서 열린 벼룩 시장. 컵, 자석, 타일 등 여느 기념품 가게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인데 강을 담은 듯 푸른 일러스트와 패턴에 눈이 갔다. 


마무리는 뭐니 뭐니 해도 도루 강 야경.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눈으로는 반짝이는 강물과 저 멀리 있는 수도원을 구경하고, 귀로는 조금 어설프지만 매력 있는 버스킹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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