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사진 여행 시리즈 - 포르투 편②

타지에서 보내는 보통날

by 이재인

작년 5월, 입사 동기이자 퇴사 동기인 P와 H, 그리고 나는 포르투갈 리스본행 비행기를 탔다. 퇴사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었을 때였다. 우리의 2019년 여름이 '백수들의 도피 여행'이 아닌 '프리랜서들의 취재 여행'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한 달간 정말 부지런히 움직였다. 단거리 육상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숨을 참고 전속력으로 질주하듯 그렇게 4월을 보냈다.


포르투는 쉼터였다. 돈 걱정도, 커리어 걱정도, 한 달 뒤 내가 마주할 상황에 대한 걱정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었다. 대신 매 순간을 충분히 누렸다. 장기 여행의 좋은 점은 생소하고 낯선 일들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타지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잡이를 반쯤 돌렸다가 앞으로 세게 당겨 창문을 여는 행동이 익숙해지고, '봄디아(Bom dia)'와 '오브리가다(Obrigada)'라는 인사말이 입에 붙고, 와인이나 맥주가 없으면 식사가 허전했다. 심심하면 집 근처 공원에서 동네 할아버지들이 카드 게임하는 걸 구경했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히베리아 광장이나 도루 강변까지 걸어가 버스커들과 관광객들을 몇 시간이고 구경했다.


20190520_122439.jpg 운이 좋은 날엔 반가운 존재를 만나기도 한다. 세 마리나 보다니 황송하다.


나른하고 따사로웠던 5월의 포르투. 오늘은 그곳에서 보낸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들을 함께 봅시다


Daily moments in Porto


20190520_133440.jpg

도루 강변의 터줏대감. 와이너리가 즐비한 반대편 강가를 보는 건지, 깃발을 잔뜩 꽂고 지나가는 알록달록한 배를 보는 건지 궁금하다. 강렬한 햇빛을 맨몸으로 쬐면서도 오랜 시간 꿈쩍 않고 서 있는 당신은 훌륭한 사진 모델.


2019-05-19-10-19-08.jpg

H와 P의 뒷모습. H는 영상에, P는 글에 한 달간 동고동락한 우리의 모습을 담았다. H는 매일 카메라 두 대와 삼각대를 짊어지고 다니느라 많이 고생했다. P는 콘텐츠를 위해 동네 미용실에서 한 뼘 넘게 머리를 잘랐다.


20190528_115656.jpg
20190528_115902.jpg
20190528_123952.jpg

외벽 색도, 창문 틀도, 베란다를 꾸며 놓은 모습도 제각각인 포르투의 집들. 높은 지대에서 보면 온통 주황 지붕뿐인데, 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건 개성파 그 자체인 건물들이다.


20190520_125419.jpg

위에서 본 포르투는 이렇게 주황색이 가득한데, 알고 보면 외양이 다채로운 건물들이라는 게 재밌다.


20190602_095950.jpg
20190602_100059.jpg

타일을 촘촘히 붙여 놓은 벽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꼭 가까이에서도 봐야 한다. 자잘하고 섬세한 문양이 바로 옆 타일 문양과 딱 닿아 있는 것을 볼 때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20190529_120007.jpg

모노클을 화분 받침으로 쓰고 있던 로컬 카페. 슈가파우더를 잔뜩 뿌린 브라우니와 에스프레소는 세트 메뉴였다. 브라우니는 접시에 나올 줄 알았는데 보울에 담겨 있었다. 에스프레소는 손잡이 달린 잔을 예상했는데 길쭉한 유리컵에 나왔다. 통념을 깨는 희한한 조합이 매력적이다.


20190601_132609.jpg

포르투의 두 번째 숙소는 정말 조용한 동네에 있었다. 도보 거리에 큰 마트가 두 개나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사방이 가정집인데, 낮이고 밤이고 행인이 없다.


20190602_095700.jpg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사람은 안 보이는 기묘한 동네.


20190528_125730.jpg

1층은 의류 편집샵, 2층은 카페인 건물을 방문했다. 치즈 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아치형 구조물이 특이했다.


20190531_235135.jpg

미구엘이라는 현지인의 집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화려한 유리잔에 위스키를 따라주었다. 미구엘은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닭은 행운의 아이콘이라고 말했다.


20190603_212125.jpg

히베리아 광장 근처에 있는 '프로바'라는 와인바에 두 번이나 갔다. 포르투는 다양한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도시다. 특히, 포트 와인과 토닉 워터를 섞은 '포트 토닉'은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청량하고 달콤한 맛이다.


20190525_115931.jpg

어쩌다 마주친 마켓. P는 여기서 검은색 뉴스보이 캡을 샀다.


20190518_205720.jpg

바질 페스토와 토마토를 넣은 펜네 파스타. 포르투에서 먹은 첫 '집밥'이다. 요리에 소질 있는 H와 P 덕에 마트에서 식재료를 자주 샀다. 나는 설거지 실력이 나날이 늘었다.


20190603_203435.jpg

'포르투 일몰 맛집'이라 불리는 모후 정원에 갔다. 지평선 뒤로 넘어가는 해를 보며 사람들은 환호했다. 일몰 구경을 위해 언덕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사람들은 곧 뿔뿔이 흩어졌다. 구도를 바꿔가며 열심히 사진 찍는 사람들, 바닥에 모자를 엎어두고 기타나 키보드를 치는 버스커들, 캔맥주를 들이켜는 현지인들 사이에서 나 홀로 고요한 갈매기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20190530_214900.jpg

항상 생기가 넘치는 히베리아 광장. 겨울에 방문해도 마찬가지일지 궁금하다.


20190520_180934.jpg

마무리는 매력 넘치는 포르투의 어느 문 장식. 수줍지만 정성스럽게 인사를 건넨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