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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Apr 18. 2020

방구석 사진 여행 시리즈 - 포르투 편②

타지에서 보내는 보통날 

작년 5월, 입사 동기이자 퇴사 동기인 P와 H, 그리고 나는 포르투갈 리스본행 비행기를 탔다. 퇴사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었을 때였다. 우리의 2019년 여름이 '백수들의 도피 여행'이 아닌 '프리랜서들의 취재 여행'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한 달간 정말 부지런히 움직였다. 단거리 육상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숨을 참고 전속력으로 질주하듯 그렇게 4월을 보냈다. 


포르투는 쉼터였다. 돈 걱정도, 커리어 걱정도, 한 달 뒤 내가 마주할 상황에 대한 걱정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었다. 대신 매 순간을 충분히 누렸다. 장기 여행의 좋은 점은 생소하고 낯선 일들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타지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잡이를 반쯤 돌렸다가 앞으로 세게 당겨 창문을 여는 행동이 익숙해지고, '봄디아(Bom dia)'와 '오브리가다(Obrigada)'라는 인사말이 입에 붙고, 와인이나 맥주가 없으면 식사가 허전했다. 심심하면 집 근처 공원에서 동네 할아버지들이 카드 게임하는 걸 구경했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히베리아 광장이나 도루 강변까지 걸어가 버스커들과 관광객들을 몇 시간이고 구경했다. 


운이 좋은 날엔 반가운 존재를 만나기도 한다. 세 마리나 보다니 황송하다. 


나른하고 따사로웠던 5월의 포르투. 오늘은 그곳에서 보낸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들을 함께 봅시다


▶ Daily moments in Porto


도루 강변의 터줏대감. 와이너리가 즐비한 반대편 강가를 보는 건지, 깃발을 잔뜩 꽂고 지나가는 알록달록한 배를 보는 건지 궁금하다. 강렬한 햇빛을 맨몸으로 쬐면서도 오랜 시간 꿈쩍 않고 서 있는 당신은 훌륭한 사진 모델.


H와 P의 뒷모습. H는 영상에, P는 글에 한 달간 동고동락한 우리의 모습을 담았다. H는 매일 카메라 두 대와 삼각대를 짊어지고 다니느라 많이 고생했다. P는 콘텐츠를 위해 동네 미용실에서 한 뼘 넘게 머리를 잘랐다. 


외벽 색도, 창문 틀도, 베란다를 꾸며 놓은 모습도 제각각인 포르투의 집들. 높은 지대에서 보면 온통 주황 지붕뿐인데, 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건 개성파 그 자체인 건물들이다. 


위에서 본 포르투는 이렇게 주황색이 가득한데, 알고 보면 외양이 다채로운 건물들이라는 게 재밌다. 


타일을 촘촘히 붙여 놓은 벽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꼭 가까이에서도 봐야 한다. 자잘하고 섬세한 문양이 바로 옆 타일 문양과 딱 닿아 있는 것을 볼 때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모노클을 화분 받침으로 쓰고 있던 로컬 카페. 슈가파우더를 잔뜩 뿌린 브라우니와 에스프레소는 세트 메뉴였다. 브라우니는 접시에 나올 줄 알았는데 보울에 담겨 있었다. 에스프레소는 손잡이 달린 잔을 예상했는데 길쭉한 유리컵에 나왔다. 통념을 깨는 희한한 조합이 매력적이다.


포르투의 두 번째 숙소는 정말 조용한 동네에 있었다. 도보 거리에 큰 마트가 두 개나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사방이 가정집인데, 낮이고 밤이고 행인이 없다.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사람은 안 보이는 기묘한 동네. 


1층은 의류 편집샵, 2층은 카페인 건물을 방문했다. 치즈 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아치형 구조물이 특이했다. 


미구엘이라는 현지인의 집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화려한 유리잔에 위스키를 따라주었다. 미구엘은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닭은 행운의 아이콘이라고 말했다. 


히베리아 광장 근처에 있는 '프로바'라는 와인바에 두 번이나 갔다. 포르투는 다양한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도시다. 특히, 포트 와인과 토닉 워터를 섞은 '포트 토닉'은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청량하고 달콤한 맛이다. 


어쩌다 마주친 마켓. P는 여기서 검은색 뉴스보이 캡을 샀다. 


바질 페스토와 토마토를 넣은 펜네 파스타. 포르투에서 먹은 첫 '집밥'이다. 요리에 소질 있는 H와 P 덕에 마트에서 식재료를 자주 샀다. 나는 설거지 실력이 나날이 늘었다. 


'포르투 일몰 맛집'이라 불리는 모후 정원에 갔다. 지평선 뒤로 넘어가는 해를 보며 사람들은 환호했다. 일몰 구경을 위해 언덕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사람들은 곧 뿔뿔이 흩어졌다. 구도를 바꿔가며 열심히 사진 찍는 사람들, 바닥에 모자를 엎어두고 기타나 키보드를 치는 버스커들, 캔맥주를 들이켜는 현지인들 사이에서 나 홀로 고요한 갈매기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항상 생기가 넘치는 히베리아 광장. 겨울에 방문해도 마찬가지일지 궁금하다. 


마무리는 매력 넘치는 포르투의 어느 문 장식. 수줍지만 정성스럽게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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