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인 Aug 24. 2021

1년 3개월 만에 브런치를 다시 쓰기로 마음먹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그동안 브런치를 찾지 않은 이유(라 쓰고 변명이라 읽는다)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건 2020년 5월이었다. 외전, 그리고 외전의 외전 격인 글들을 제외하면 1년 반도 훌쩍 지나버렸다. 그동안 글을 쓰지 않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퍼블리와 폴인에서 객원 에디터로 일하며 다른 사람의 글을 편집하거나, 경영·경제서에 대한 요약글을 썼다. 회사에서도 주로 소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안에 들어가는 텍스트도 모두 내 손끝에서 나온 것이다. 그 외에도 작은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등 이리저리 글을 쓰려는 노력을 (희미하게나마) 했다.


그럼에도 글쓰기에 대한 욕구는 충족되지 않았다. 2년째 '갑'인 클라이언트를 위해 제품 홍보성 콘텐츠를 만드는 건 가끔 버겁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고, 전문가의 글을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듬는 작업도 꽤 보람 있었다. 그런데 즐겁지도 않았다.


나에 대해, 내가 쓰는 진솔한 글은 일기장에만 존재했다. 기분 좋을 때 쓴 일기도 있지만, 답답하고 우울할 때 감정을 표출하듯 줄줄줄 늘어놓은 문장들도 많았다. 며칠이 지나면 금세 색을 잃는 글들이었다. 밥은 혼자 먹어도 맛있던데 글은 혼자 보면 재미가 덜하다. 방치된 브런치가 생각날 때마다 착잡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덮어두었다. 또 온전히 체념하지는 못해 다른 사람들의 브런치는 종종 들여다보며 은밀히 질투하고 고통스럽게 부러워했다.


한번 손을 놓게 된 일을 재개하려면 처음 시작할 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새벽 5시에 기상해 외출하기 전 한두 시간이라도 에어비앤비 한 구석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2019년의 나는 서울 한복판에서 점점 모습을 잃어갔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의 부재를 잊고자 열심히 남이 쓴 글을 읽었다. 그러면서 '꾸준히 글을 쓰는 건 이렇게 재능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거야'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와 만났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지난 주말부터 어제까지, 그러니까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다. 오랫동안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지키고 있는 이 책의 표지를 보며 절대 내 취향이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인이 읽고 있는 걸 보고 냉큼 빌려왔다. 만사에 대한 의욕이 바닥을 치는 요즘, 어쩌면 동화 같은 이야기로 마음을 정화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이었나 싶다.


솔직히 처음에는 '예상대로 유치하군'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외국 소설이라 그런지 문장은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았고, 어딘가 화려하게 꾸며진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심드렁하게 페이지를 넘기다 한순간에 몰입해버렸다. 주인공 노라가 다른 평행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자신이 되면서부터였다.


극심한 우울증에 자살 시도까지 한 노라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자정의 도서관(=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갇혔다. 그곳에는 어렸을 때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함께 체스를 두던 엘름 부인만 있다. 그는 노라에게 인생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모습의 노라가 되었을지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설명한다. 노라는 이동자가 되어 수많은 노라가 되어보며 삶의 의미에 대해 점차 깨닫는다.


원래의 삶에서 노라는 동네의 작은 악기 판매점에서 일하며 일주일에 한 번은 피아노 강습을 했다. 이동자 노라는 이웃이었던 외과 의사의 아내가 되어 사랑스러운 딸을 보살피기도 하고, 빙하학자가 되어 지구의 최북단에서 북극곰을 마주하기도 하고, 세계적인 록밴드의 보컬이 되어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지구 곳곳에 있는 까무잡잡한 노라, 약물중독자 노라, 전직 수영선수 노라로도 살아본다.


그는 살면서 후회가 됐던 순간들을 하나씩 짚어보며 당시에 포기했거나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일들을 반대로 뒤집어본다. 그러나 경험을 거듭할수록 알게 된다. 어떤 삶을 사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가 모든 걸 좌우한다는 걸 말이다. 월드스타가 평생 동안 느끼는 기쁨과 슬픔은 시골의 한 오두막에 사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사실은 후회라는 감정 자체가 노라를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35살의 영국인 노라에게 30살의 한국인인 나는 과몰입했다. 회사에 대해, 주변인들에 대해, 그리고 글쓰기에 대해서까지도 나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선택을 했고, 그것이 엉켜 지금의 내가 됐다. 잘했다고 생각하는 결정도, 아무렴 상관없었던 결정도 있지만 슬프고 우울할 때마다 불쑥 고개를 내미는 건 선택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미련이다. 꽤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줄 알았더니 코로나 블루에 버튼이 눌린 건지, 후회는 자존감이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슬그머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 찾아온다. 나는 노라처럼 평행 우주에서의 나를 볼 수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완독 하며 긍정 에너지가 약간 충전된 것 같은 개운함을 느꼈다. 누군가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다 마지막엔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번쩍 일으켜준 것 같기도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책에 대한 리뷰를 일기장에 끄적이다 보니 이런 문장을 적게 됐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지. 대신 앞으로 무언가를 할 땐 미련이 남지 않게 부담 갖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자."


딱히 계획은 없지만 의욕은 충만하답니다

책 감상글인지, 다짐글인지 모를 이 이야기를 일기장에서 브런치로 옮겨온 건 그 이유다. '나의 글을 써야지'라는 주기적으로 고개를 드는 스스로에 대한 부채감을 마침내 청산하고자. 아직 글을 발행하지도 않았는데 기쁘고 후련하다. 다시 소소한 나의 이야기를 몇 명이 될지 모를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음에.


앞으로 무엇에 대해 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아직은 여행에 대해 쓸 수 없으니 좋아하는 다른 것들에 대해 조잘조잘해보려고 한다. 책에 대해, 영화에 대해, 전시에 대해, 음식에 대해, 그리고 갑자기 꽂힌 여러 가지 생각들에 대해. 이왕이면 누군가가 즐거움이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글이면 좋겠다. (대왕희망편)


"재미있게도 오래 버티다 보면 가끔 인생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고 노라는 생각했다." 존버는 승리한다는 말을 길게 한 것 같은 책 속의 문장에서 이상하게도 편안함을 느꼈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일직선처럼 살고 있기에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변할 수 있다.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원할 때 이 선은 굽이질 수도, 여러 갈래로 뻗어나갈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다시, 쓰기로 마음먹었다.

작가의 이전글 미운 정 고운 정의 도시, 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