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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Sep 14. 2021

허상의 행복과 실재하는 무수한 불행이 공존하는 세계

정유정 작가의 최신작, <완전한 행복> 리뷰하기

완전무결한 행복에 대한 광기

결말부를 확인하고 맥이 탁 풀렸다. <완전한 행복>을 읽는 열몇 시간 동안 온몸에 힘을 주고 있었는지, 뒷목은 뻣뻣하고 어깨는 잔뜩 뭉쳐져 있었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허리를 두들기며 '작가의 말'을 읽어 내렸다.


완전한 행복에 이르고자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려 '노력'한 어느 나르시시스트의 이야기.

작가는 500페이지가 넘는 자신의 소설을 한 줄로 명료하게 정리했다. 독자인 내가 조금 살을 붙여 보자면, '어느 나르시시스트'는 삼십 대 중반의 여성인 신유나다. 유나의 유일한 삶의 목표는 행복해지는 것이며, 이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는 '화목한 가정'이 있다.


여기까지 보면 유나의 이상한 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직 살을 덜 붙인 부분이 있다. 유나는 행복을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라 말한다. 행복을 향한 질주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무조건 없애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나타날 수 없게 지우개로 지워버린다. 그 요소가 사람일지라도.


어렸을 때는 부모에게 떼를 쓰며 친언니 재인이 소유한 모든 걸 빼앗았다. 나중엔 재인이 10년 넘게 짝사랑하던 준영과 결혼해 딸 지유를 낳았다. 전 남편인 준영과 현 남편인 은호가 제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하자 가해와 자해를 서슴지 않았다. 딸에게도 가차 없었다. 지유가 거짓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모습을 보이면 고아로 만들겠다고 협박했다.


유나의 신념이 만들어낸 우주에서 그는 태양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 태양의 빛과 열에 눈이 멀고 몸이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는 채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행성이 아니다. 자신만의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자의식이 있는 존재다. 유나의 무차별적 폭언과 괴행에 당하던 존재들은 결국 이 악물고 온 힘을 다해 싸운다. 자신을 위해, 그리고 이미 사라져 버린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도 특별하고, 당신도 특별한 사람이니까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은 자신감이나 자존감으로 나타난다. 자신'만' 사랑하는 감정은 나르시시즘으로 발현된다. 이것이 극으로 치달으면 나만이 특별한 존재이며, 남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의 이기심과 위험한 계약을 맺는다.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와 함께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작가의 말'을 마저 읽다 마음 한 구석이 움찔했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던 때가 있다. 과거형이라고 확신할 수 있냐 묻는다면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답을 피하고 싶다. 아직도 가끔은, 내 속에 있는 반짝임을 느끼며 비밀스럽게 두근거리기도 하니까. 그것이 나를 어떤 것에든 도전할 수 있게 떠미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


나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품는 것 자체가 나쁜 걸까. 대부분의 시간에는 직장인 1, 행인 1로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데도? 아니다. 아마 작가는 오직 나만이 특별하다 여기며 남들보다 우위에 서있으려는 욕망을 경계하는 것일 테다.


나는 나뿐만이 아닌, 가족과 식사할 때도, 친구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눌 때도, 동료와 회사 일로 의견을 조율하는 회의에서도 상대방에게서 문득 반짝임을 발견하곤 한다. 멀리서 보면 비슷한 존재들이 조화롭게 뭉쳐있는 것 같은데,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보면 각자 다른 색의 특별함이 팟, 하고 빛난다. 눈빛에서든, 화법에서든, 무의식적 행동에서든.


샛길로 빠져 열심히 항변했는데, 결국 고유성이든 특별함이든 나를 포함해 누구든 품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를 소중히 하는 것만큼이나 남을 존중하는 태도는 중요하다. 그러니 나의 행복만큼 남의 행복 역시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렇게 책의 대주제로 돌아왔다.


유나의 우주는 결국 파멸한다. 마지막까지 남이 자신의 삶에 어떠한 결정권도 행사할 수 없게 차단해버렸다. 난공불락의 악인 타노스에 맞서는 어벤저스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손에 땀을 쥐며 기다렸던 결말인데 가슴이 답답했다. 이미 상처 입을 대로 입고,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히어로들의 참담한 모습을 보는 듯 쓸쓸하고 허망했다.


악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

마음에 드는 소설을 만나면 그 소설의 바다에 풍덩 빠져버린다. 경쾌하고 가벼운 이야기는 물이 맑고 깊이는 얕은 바다 같다. 반면 어둡고 슬픈 이야기는 심연 같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가슴에 추를 단 듯 묵직함을 느끼며 그 안에 잠수해있다. <완전항 행복>은 춥고, 고요하고, 캄캄한 바다 같았다. 몸부림칠수록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책을 덮으면서 물밖에 나왔는데도 금방 바다를 떠날 수 없었다. 흠뻑 젖은 몸이 마르기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나는 그걸 '책의 여운'이라 부른다. <완전한 행복>은 서늘한 날씨에 그늘에 앉아 몸을 말리는 것처럼 여운이 길었다. 오래도록 유나의, 은호의, 지유의, 재인의 우주를 생각했다.


이번엔 유난히 바다 옆에 쪼그려 앉아 있는 시간이 길었다. 하필 유나가 평생 증오했던 대상인 친언니의 이름이 나와 같았다. 그는 재인을 절대 언니라 부르지 않는다. 가장 즐겨 부르는 애칭은 '도둑년'이다. '프로과몰입러' 나는 성을 바꿔 신재인이 되어 유나와 주해보려 했다. 바로 포기했다. 나라면 진작에  나라로 이민을  다시는 동생과 만나지 않으려 했을 거다.   신재인처럼 목숨을 걸고 동생을 들이받지 못했을 거다.


나는 신재인이 될 수 없다. 절대로,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은, 이라고 하고 싶다. 신재인도 어렸을 때는 착한 딸 콤플렉스와 동생에 대한 무서움 때문에 갈등을 외면했다. 그가 등을 돌려 정면으로 공포를 마주하기까지는 20년이 넘게 걸렸다.


살면서 유나 같은 악인을 만날 일은 없을 테고, 없어야 한다. 그러나 경쟁 때문에, 혹은 이해관계 때문에 상대적 악인이 되어버린 누군가와 얽힐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있을 때 냅다 도망치지 않고, 나와 나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맞설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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