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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Sep 07. 2021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밤의 여행자들> 리뷰하기

내가 주인공이라면 완전무결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 본 리뷰글에는 <밤의 여행자들>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문난 책에 읽을거리 풍부했다

최근 읽은 소설 중 가장 좋았던 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밤의 여행자들>이라 말할 수 있다. 2021년 영국추리작가협회 주관의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을 받았더랬다. 2013년 작인데 '재난 관광'이라는 소재가 2년째 코로나에 몸살 앓는 지구의 상황과 묘하게 겹쳐 8년 만에 재조명을 받고 있더랬다. 마케터로 살아가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쉽게 마케팅에 현혹되는 나란 인간. 온라인 서점의 배너에서도, 오프라인 서점의 매대에서도 시선을 붙잡는 이 책의 화려한 수식어구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 대형 서점의 자본주의적 홍보 활동이 나에게까지 닿아 정말 다행이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제목 따라 1차원적으로 며칠에 걸쳐 밤에만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회사에 있는 시간만 빼고 밤낮 붙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 못 견디겠어서 전속력으로 달리듯 읽었다. 몇 번의 탄식과 함께 마지막 장까지 완주하고 나서 바로 재독을 시작했다. 이번엔 통찰력 있으면서도 감미로운 문장을 흡수하고 싶어 발로 땅을 꾹꾹 밟으며 산책하듯 읽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


재난이 한 세계를 뚝 끊어서 단층처럼 만든다면, 카메라는 그런 단층을 실감하도록 돕는 도구였다. p.35


전선은 오선지 같았다. 그 위로 새 몇 마리가 음표처럼 내려앉아 있고, 전깃줄의 끝부분은 높은 음자리표처럼 둥글게 말려 있었다. p.93


빛의 각도에 따라 울룩불룩 솟아나는, 별들로 가득한 하늘을 향해, 천만 선인장이 다 발기하는 그 고요한 새벽이었다. p.189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에 대한 감정

문장을 차곡차곡 수집한 뒤에는 자유롭게 감상을 기록하며 책 읽기의 과정을 마무리하려 했다. 독후감의 필수 구성 요소 첫 번째, 줄거리. 재난이 휩쓸고 간 지역에서 그 흔적을 긁어 모아 관광 상품을 만드는 여행사 '정글'의 프로그래머 고요나. 그는 베트남 옆에 있는 작은 섬나라, 무이에 출장을 가게 된다. 출장 목적은 무이의 여행 상품이 재계약을 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검토하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해프닝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지 못한 요나는 무이를 완전한 재난 지역으로 만들고자 하는 섬뜩한 계획에 휘말리게 된다.


자, 이제 독후감의 또 다른 필수 구성 요소인 느낀 점. 연필을 수차례 고쳐 쥐며 머뭇거렸다. 분명 책 속의 사건은 시간 순대로 잘 이해했다. 그럼에도 느낀 점을 정리하려니 안갯속을 헤매는 것처럼 시야가 뿌옜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고요나에 대해 생각할 때 더 그랬다.  


요나는 참 입체적이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요나는 현지인들에게 구원자다. 물론 '가짜 재난'을 설계하는 과정에 살인 행위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됐지만 이를 모른 척했다. 하지만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결국 현지인 럭에게 정보를 흘렸고, 현지인 몇 백명의 목숨을 구했다. 만약 살인 행위를 문제 삼아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왔어도 무이의 가짜 재난 설계는 계속되었을 거다. 요나도 수확 없이 회사로 돌아왔기에 지위 회복은커녕 우울함의 농도가 더 짙어진 삶을 살아내야 했을 것이다.


한편 과정론적으로 보면 요나는 사기에 동조하고, 살인을 방관한 범죄자다. 많은 이들의 삶을 구원했지만 반대로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못 본 체했다. 사람의 목숨을 수치화하여 비교할 수 없기에 요나의 악행은 상쇄될 수 없다. 직접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기에 괜찮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범죄를 잘게 쪼개 뚜렷한 책임자가 존재하지 않도록 설계하면 더더욱 그렇다.


요나는 분명 죄가 많다. 그런데 연고도 없는 타지에 낙오되었는데도 마땅히 도움 청할 곳이 없는 그를, 10년 다닌 직장에서도 이유 모르게 팽 당할 위기에 처한 그를, 비참한 마음으로 벼랑 끝에 서 있다 달콤한 유혹을 덥석 잡아버린 그를 마냥 미워할 수 없다.


등장인물에 대한 판단을 계속 유보하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의 빙의 단계로 진입했다. 내가 말 한마디도 안 통하는 도시에서 휴대폰도 지갑도 여권도 없이 낙오됐다면. 뾰족한 수가 없으니 나 역시 리조트에 돌아왔을 거다. 하지만 요나와는 다르게 리조트에 오자마자 휴대폰을 충전하고 지인들에게 연락해 돈을 부쳐달라고 했겠지. 다음 날엔 큰 도시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찾아가고.


하지만 요나처럼 의지할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없다면 어땠을까. 리조트에 며칠 더 머무르며 재난 설계에 동참하겠냐는 제안을 듣는 상황을 상상해본다. 관련 여행 프로그램을 잘 짜기만 하면 회사에서도 성과를 인정해준다고 한다. 요나처럼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인생 전체를 리모델링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쉽사리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물론, 살인이 포함된 사기 행각인 것을 눈치챘다면 그 순간 자리를 박차고 나가 어떻게든 무이를 빠져나왔을 거다. 회사에서 잘리더라도 10년 경력을 활용해 다른 여행사로 이직했을 수도 있다. 살인에 가담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사는 건 생지옥 속에서 헤엄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살인 방관은 이유 불문 악행이고, 사기는 절절한 사연이 있으면 괜찮다는 건가. 주인공에 빙의해 나름의 도덕적인 기준을 세워보아도 이것이 타당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무이를 도망쳐 나왔어도 현지인들의 죽음은 막을 수 없었을 텐데, 사기에서 발을 뺀 가상의 내가 자신의 희생으로 현지인들의 목숨을 살린 책 속의 요나보다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것이다.


다짐으로 마무리하는 독후감

머리를 쥐어짜도 결론이 나지 않아, 책의 주제 의식이 집약되어 있을 결말 부분을 다시 살펴보았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발견해 이에 편승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선행을 하든 안 하든 악에 조금이라도 물든 사람은 모두 대자연의 처벌을 동등하게 받는다. 모두가 비극을 맞이한 결말을 곱씹어보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결국 작가는 독자가 스스로 가치 판단을 하도록 안개를 걷지 않고 그냥 둔다.


안갯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판단하지 말고 다짐하자는 거다. 요나와 가까워질수록 그의 사연이 안타깝고, 마지막의 선행으로 악행을 합리화하고, 그래서 도덕적 기준이 자꾸 흐려진다. 이를 막기 위해  좋은 마음이 스며들  있는 여지를 차단해본다. 남들의 불행보다 나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인간의 본능이라지만, 그럼에도 인간이기에 이성으로 본능을 통제하며 성숙해져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다짐의 첫 번째는 거짓을 만들지 말자는 것. 두 번째는 나에게 이득이 될만한 것도 남의 행복을 빼앗아 이루어야 한다면 쳐다도 보지 말 것. 세 번째는 어느 한 세계에 매몰되지 말고 성글게라도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살아가자는 것. 내가 곤경에 빠질 때 기댈 곳이 있고, 누군가 의지하고 싶을 때 내가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말이다.


마지막은 남의 불행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 기만적인 감정을 멀리하자는 것이다. 열등감만큼이나 빗나갈 수 있는 감정이 우월감이라고 생각한다. 열등감은 자기 발전의 에너지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기 비하와 혐오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비밀스러운 우월감은 마찬가지로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지만, 심해지면 이기심과 부도덕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재난 관광도 '이곳에 비하면 내가 있는 곳은 살만하구나'라는 여행자들의 우월감을 자극한다. 나와 다른 세계를 마주할 때는 위아래로 비교하는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되고, 그럴 자격도 없다. 그저 나와 다름에 관심을 갖고 탐구하면 된다. 그렇게 위아래로 서열 정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세계를 넓혀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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