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이유에 대한 고찰 (feat. 조지 오웰)

점점 에세이 쓰기에 진심이 되어 갑니다

by 이재인

어우, 너무 더워요. 집에 가만히 있는데도 더워서 흐물흐물 무기력해집니다. 그래서 요즘 외출은 거의 못하고 집에서 책만 읽었습니다. 특히, 글쓰기에 대한 책들이요.


그래서 오늘은 소소하게 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책은 두 권 가져왔어요.


첫번째는 유병욱 작가의 <생각의 기쁨>입니다.

작가는 TBWA KOREA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도 잘 알려져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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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부터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컨셉진'을 발간하는 회사, 미션캠프의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강의 이름은 '직업 탐구 캠프', 말 그대로 15주 동안 매주 1개의 직업을 이해하고 체험해보는 온라인 캠프예요. 지금은 13주차를 지나는 중입니다.


11주차 직업은 카피라이터였는데요, 유병욱 CD님이 영상에 등장하시더라고요. 강의를 흥미롭게 듣고 있는데, 내용이 낯설지 않은 거예요. '나 이분 책 있지 않나?' 있더라고요.


2017년, 사회 초년생 시절에 교보문고에서 구매했던 게 기억나요. 베테랑 카피라이터는 글을 쓸 때 어떤 노력을 하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아래 내용이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 카피라이터에게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지

- 스스로는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6년이 지나 책을 다시 읽어보니 당시에 했던 생각들이 떠올라요. 저는 책에 줄긋고 메모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 책에도 2017년에 제가 남긴 메모가 중간중간 있더라고요.


"앞쪽에서 깊이 파기 위해 넓게 파라는 이야기나 사소한 줄 알았던 만남들이 결국 인생의 버튼이 된다는 메세지는 미리 정해놓고 계획할 수 없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


"결국 어느 정도의 운이 작용한다는 건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오픈 마인드로 운을 잡을 수 있는 확률을 늘리는 것 뿐. 매사에 호기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자. 당장은 짜증나도."


예를 들면 이런 거요. 다른 얘긴데, 사실 2017년의 저는 회사 생활이 힘들었어요. 70명 본부에 신입은 저 하나였는데, 또래도 없고 일도 많아 야근하기 일쑤였거든요. 물론 좋은 사람도 있었지만, 사회 초년생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뭐라도 배우고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참을 인자 수도 없이 그렸습니다. 존버는 승리한다 정신으로! (그런데 존버 못함 ㅎ)


*

어쩌다보니 마케터로 5년 넘게 일했지만,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직업인이 되기 한참 이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만 기자나 카피라이터처럼 글쓰는 게 본업인 분들의 책을 찾게 되더군요. 올인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취준생 시절 언론고시나 광고회사 시험에도 수차례 도전했어요. 잘 안되더라고요. 지금이 아닌가보다, 했어요.


아직도 카피라이터는 참 멋진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상업적인 글인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낭만적이기도 하고요. 유병욱 CD님도 강의 말미에 본인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95점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강의를 듣던 중, '카피라이터에게 중요한 건 필력과 관점이다. 나도 이를 성장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두 가지 모두 타고날 순 있지만, 오랜 시간에 걸친 진득한 훈련이 필수라는 것도 적어둡니다.


저는 카피라이터는 아니지만, 간헐적 글쟁이로서 글쓰기 훈련에 대한 갈증을 자주 느껴요. 자꾸 쓰고, 좋은 건 따라 써보며 필력을 훈련해야겠죠. 다양한 걸 보고, 듣고, 느끼며 이를 나름대로 소화하며 관점을 넓혀야겠고요.


그리고는 조지 오웰의 <책 대 담배>를 읽었어요.



전 글에서 언급했던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장강명 작가는 "뛰어난 작가들의 담백하고 성숙한, 좋은 에세이들"의 대표 예시로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추천했습니다. 글쓰기, 특히 에세이 쓰기에 관심 많은 요즘 읽으면 좋겠다 싶어 <나는 왜 쓰는가>가 실린 조지 오웰의 얇은 에세이집 <책 대 담배>를 빌려왔습니다.


조지 오웰은 생전 수백 편의 에세이를 발표한 산문 작가래요. <동물농장>이나 <1984> 같은 대작을 쓰면서 에세이까지 다작을 했다니 대단하지 않나요. 역시 어디가서 시간 없다는 핑계는 대면 안되겠어요.


<책 대 담배>는 그중 독서, 글쓰기, 책, 작가, 문학과 관련된 에세이 아홉 편을 소개합니다. <나는 왜 쓰는가>도 포함해서요. 그중 인상적이었던 작품 몇가지만 소개해볼게요.


우선, 표제작인 <책 대 담배>예요. 예전엔 책을 읽지 않는 건 독서가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서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나봐요. 조지 오웰은 이에 불만이 많았나봅니다. 그는 본인이 보유한 책과 소비한 담배의 총량을 비교하며 독서에 들어가는 돈이 훨씬 적다는 걸 집요하게 증명합니다.


"책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책을 읽는 것조차 돈이 많이 들어서 평균적인 사람들은 갖기 힘든 취미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기에 이를 한번 세세하게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 (p.7)


두 번째는 <문학을 지키는 예방책>입니다. 조지 오웰이 살았던 시기는 세계대전으로 이념의 충돌이 극대화되었어요. 작가로서 그는 사상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가 침해받는 상황을 걱정하고 이를 벗어나고자 노력했어요.


"자신의 고결함을 지키고자 하는 작가나 언론인은 적극적인 핍박이 아니라 사회 내의 대체적인 풍조 때문에 좌절한다. 그들을 좌절케 하는 것들로는 극소수의 부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언론, 독점 지배되고 있는 방송과 영화, 책 사는데 돈을 쓰지 않으려는 대중, 정보부나 영국 문화원 같은 정부 기관의 침해, 지난 십년간 지속된 전쟁 분위기가 있다. (p.22)"


세계대전은 끝났고, 몇십년의 시간이 지났으니 당연히 상황이 많이 변했죠. 그런데 스케일은 작아졌을지언정, 외부의 압박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나 쓰고 싶은 글이 빛을 못 보거나 찌그러진 채로 세상에 나오는 경우가 많을 거예요. 그러니 '문학을 지키기 위한 예방책'으로 작가들이 자유롭게 쓰고 출판할 수 있게 만들어주자는 거죠.


세 번째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죽는가>입니다. 20대 후반, 조지 오웰은 파리에 있는 병원에서 몇 주를 보냈어요. 지갑 사정이 좋지 않은 환자들이 어쩔 수 없이 찾는 시설이 열악한 곳이었어요. 병실에 누워 죽어가는 사람들을 담담히 묘사하며 그는 특유의 통찰과 감상을 덧붙입니다.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은 잔인하고 비참한 사소한, 너무 하찮아서 헤아린다는 것 자체가 아무 의미 없는, 엄청나게 끔찍한 고통스러운 기억만을 남길 뿐이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매일 누군가가 죽어 가는, 급박하고 바글바글하고 비인간적인 장소이기에 더 그렇다." (p.103)


당시 경제적으로 형편이 괜찮았던 사람들은 집으로 의사가 방문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시설이 좋은 병원도 있었겠지만, 1920년대의 프랑스 병원은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였나봐요. 그런 곳에서 치료 받으면서도 날카로운 관찰과 탐구 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게 대단해요.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네 번째는 바로 <나는 왜 쓰는가>입니다. 조지 오웰이 말하는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네 가지입니다.

1. 온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거나 사후에 기억되고 싶거나 어렸을 때 자신을 막 대했던 어른들에게 앙갚음하고 싶다는 등등의 욕구.

2. 미학적 열정: 잘 쓴 산문이 주는 견고함이나, 잘 쓴 이야기의 리듬이 주는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욕구.

3. 역사적 충동: 모든 일을 그대로 보고, 진실을 찾아내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 두려는 욕망.

4. 정치적 목적: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또는 추구하는 사회의 유형에 관해서 남들과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망.


조지 오웰은 처음 세 충동이 강한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시대적 상황 때문에 네 번째 충동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전체주의에 맞서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글을 꾸준히 써왔죠. 그런데 예술가로서의 성향이 강하기에 이러한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데에 힘을 쏟은 거죠.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솔직하게 저는 1번과 2번 충동이 강합니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기에 좋아하는 일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요. 또,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를 단정한 폰트에 담은 책을 보면 기분이 좋고 저도 그런 완결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3번 충동은 잘 모르겠어요. 후세를 위해 남겨두고 싶을 정도의 글이라, 작가도 아닌 작가 지망생에게는 너무 거창한 이야기처럼 들리거든요. 4번은 처음엔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정치'라는 단어에 꽂혀 내가 무슨 정치적인 글을 써, 했는데 지금 시대에 맞춰 생각해보니 타인과 나누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4번 충동에 해당되는 글일 것 같더라고요.


구조적 불합리를 고발하는 글, 사회적 약자를 조명하는 글, 편견에 맞서는 글이 그렇고요. 더 작게는 우울에 빠진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분 좋은 글, 앞길이 막막한 청년에게 행동할 용기를 주는 글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군가의 가치관이나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글을 쓰자. 내가 가진 역량 안에서 작게 시작하되 점점 스케일을 키워나가자. 그런 마음으로 글을 꾸준히 쓰면 되겠어요. 'why'의 뿌리를 찾다보니 'how'도 머릿속에서 구체화되는 것 같아요. 약간 비장해지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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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1.

<생각의 기쁨>을 읽고는 글쓰기에 대한 의지가 강해졌고, <책 대 담배>를 읽고는 에세이 쓰기에 진지하게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 일상을 진솔하게 담자는 마음으로만 에세이를 쓰면 안될 것 같다고요. 물론 자기 만족을 위한 글이라면 상관 없겠죠. 그렇게 써도 확률은 낮지만 운좋게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일기장이 아닌 공개된 플랫폼이든 책이든 타인이 볼 수 있는 곳에 글을 쓴다면 누군가의 마음에 살짝이라도 파동을 일으키고 싶어요. 제가 권태나 우울을 책으로 상당 부분 이겨내서 그런지 받은 에너지의 10분의 1이라도 전파해야겠다는 작은 사명감도 있고요.


아니 근데, 다들 처음엔 '내가 뭔데...ㅎ'라는 생각을 이겨내면서 한자한자 글을 써나가는 거겠죠? 글쟁이들 모두 화이팅화이팅...


덧붙임2.

썸네일에 있는 <WHY I WRITE>는 영국 출장 가서 사온 <나는 왜 쓰는가>의 영국판입니다. 영어로 읽어보려 했는데 반 정도 읽다 포기했습니다.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더라고요 허허... 동네 도서관에서 바로 한국판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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