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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Dec 17. 2023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커피 전문점, 피츠커피 후기

2023년 10월 10일

시카고 여행 12일 차, 벌써 단골이 된 카페가 생겼다. 2주도 안 되어 세 번 간 거면 그게 단골이지. 친구집 동네에도 있고, 다운타운에도 지점이 있는 이 카페의 이름은 바로 '피츠커피(Peet's Coffee)'다.


피츠커피는 블루보틀, 필즈커피(Philz Coffee)와 더불어 미국 서부지역 3대 커피로 불린다. 참고로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는 블루보틀, 스텀프타운(Stumptown), 그리고 인텔리젠시아란다. 사실 이 정보의 출처는 우리나라 뉴스들이다. 어떤 기준으로 뽑은 3대 브랜드인지, 누가 선정한 건지 궁금해 미국 뉴스들도 찾아봤는데, 관련 내용은 없었다. 피츠커피도, 인텔리젠시아도 국내 진출을 앞두고 있다는데, 그래서 보도자료용으로 만든 문구인가 싶다. 3대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두 브랜드 모두 미국의 커피 산업에서 손꼽히게 유명한 건 맞다.


사실 동부에서도 시카고만 여행하는 내가 미국 서부에서 탄생한 카페를 리뷰한다는 게 조금 머쓱하지만, 전 세계에 약 370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대형 브랜드이기에 미국 본토에서 마셔본다는 데에 의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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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커피의 시작은 1966년 캘리포니아에서였다. 알프레드 피트(Alfred Peet)가 커피 원두와 찻잎 무역 산업에서의 오랜 경험을 살려 창업한 브랜드다. 미국의 커피 수준을 높이겠다는 사명감으로 피츠커피는 자체적인 로스팅 시스템을 구축했고, 다크 하면서도 단맛이 나는 원두를 높은 수준으로 생산해 냈다. 게다가 피츠'커피'지만 차 음료에 대한 열정도 식지 않아 'MightyLeaf Tea'라는 프리미엄 차 제조 브랜드도 인수했단다.


피츠커피 홈페이지에서 브랜드의 역사를 쭉 읽어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앞서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라고 언급한 스텀프타운과 인텔리젠시아 모두 피츠커피 소유라는 것. 심지어 두 브랜드의 창업자 모두 피츠커피 출신이라고. 이쯤 되면 피츠커피는 미국 서부만이 아닌 미국 전역을 대표하는 카페 브랜드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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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방문한 피츠커피 매장은 시카고에서 기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에반스톤(Evanston)'에 있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가 중심인 곳이고, 그래서 카페고 식당이고 학생들이 많다. 카페에 들어가려는데 출입문에 계절 한정 메뉴의 홍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가을 하면 호박, 포스터 속 이미지도 역시나 호박라떼였다.



내부 분위기는 소박하고 깔끔하다. 화려한 느낌은 전혀 없는데, 오히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방문객들은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처음 마신 음료는 콜드브루 오트라떼였다. 기분 좋을 정도로만 단맛이었다. 개성 있는 맛은 아니었지만 오트밀크와 콜드브루의 조합이 딱 좋았다. 어느 한쪽의 존재감이 더 강하지 않았다. 그리고 뜻밖의 발견, 기대 없이 주문한 호박스콘이 별미였다. 퍽퍽하지도 않고 견과류도 많이 들어 있어 식감이 좋았다. 위에 덮인 아이싱도 과하지 않았다.



같은 지점에 두 번째 방문했을 땐 시즌 메뉴인 호박라떼를 마셨다. 우유는 오트밀크로 변경했다. 한정 음료가 맛있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그걸 해내네. 메뉴 설명에 '호박파이의 풍부한 맛을 담았다'고 하던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호박과 시나몬맛은 확실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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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다운타운 시카고에서 방문한 매장이다. 광화문이나 여의도처럼 현대적인 고층건물이 즐비한 지역에 있었다. 에반스톤 지점과는 달리 평일 낮의 카페엔 캐리어를 옆에 둔 라틴계 여행객과 나뿐이었다. 중간중간 테이크어웨이 손님들은 꽤 있었다.



해외여행 중 직장인들이 많은 동네에서 낮에 시간을 보낼 때면 기분이 참 이상하다. 주변은 분주한데 내 주변 공기만 느리게 흐르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다른 세게에 불시착한 것처럼 붕 뜬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게 좋은 기분인지 나쁜 기분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이상하다고밖에 표현이 안 된다.


어쨌든, 이 매장엔 베이커리와 굿즈도 다양했다. 원두 패키지도 종류가 꽤 많아서 하나 살까 고민하다 그냥 돌아왔는데, 나중에 마트에서도 살 수 있단 걸 알고 매우 기뻤다.


온라인숍이나 마트에서 살 수 있는 피츠커피 원두 패키지 (출처: 피츠커피 홈페이지)


여기선 드립커피를 주문했다. 라떼류는 작은 사이즈도 5달러대였는데, 드립커피는 3.30달러라 기분이 확 좋아졌다. 미국식 드립커피가 점점 좋아진다. 풍미가 좋다곤 할 수 없지만, 호불호 없을 구수한 맛이 은근 매력 있다. 무엇보다도 착한 가격이 제일 매력 있다. 음미보다는 편하게 호로록 마시는 게 어울리는 커피다.



피츠커피는 회전율이 높은 편이라 30분에 한 번씩 드립커피를 내린단다. 그래서인지 산뜻하고 고소한 맛이 좋았다. 창가에 앉아 이따금씩 지나가는 사람들과 대리석 계단마다 자리 잡고 꿈적 않는 비둘기들을 별생각 없이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말을 걸었다. 에어팟을 빼고 돌아보니 나를 제외하곤 카페 안의 유일한 손님인 그 라틴계 여행자였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싶은데 짐을 봐줄 수 있냐는 거다. 아유, 당연하죠.


한국이나 일본이 아닌 곳에선 카페에서 짐을 두고 자리를 절대 뜨지 않는다.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는 물론 그 어느 것도 나 대신 자리를 지키게 할 수 없다. 뭐라도 없어지면 오롯이 내 책임이니까. 슬프게도 옆사람에게 짐 봐달라고 말 붙일 숫기도 없다. 그러나 누가 나에게 부탁한다? 기쁜 마음으로 내 소지품인 양 지켜준다.


라틴계 여행자는 주황색 캐리어와 그 위에 얹어둔 남색 보스턴백을 맡기고 화장실을 갔는데, 보스턴백에 묶여 있는 손수건인지 스카프인지 모를 천에 화려한 패턴의 자수가 인상적이었다. 이분은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사는 분일까. 금방 돌아온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는, 가방을 주렁주렁 메고 끌며 떠났다. 별일 아닌데도 아까의 이상한 기분이 조금 사라져서 신기했다. 이 정도로 효능감 느낄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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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커피 방문기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사실 한국에 돌아와 여행지에서의 기록을 정리하고 있는데, 피츠커피는 이후에도 여러 번 갔다. 카페 분위기도, 음료의 맛도 무난한데 그냥 유난히 마음이 갔다. 장기여행에서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걸 발견하면 빠르게 정이 드는 것 같다.


일상에서는 익숙함이 때때로 지루하게 느껴지는데, 여행에서는 편안하고 익숙한 걸 찾으면 그렇게 신이 난다. 인간은 참 청개구리 같단 말이지. 그래서 이번 시카고 여행에서는 무엇에 정을 붙였냐고? 일단 12일 차인 지금까지는 동네 마트인 타겟(target), 최고의 쿠키 맛집인 인썸니아 쿠키, 친구집에서 노스웨스턴 대학교로 이어진 산책로, 그리고 피츠커피. 모두 3회 이상 방문한 곳으로, 여행자임을 감안하면 당당히 단골이라 말할 수 있는 곳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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