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의 시작, 디지털노마드의 서막
대만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꽤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던 내가
스물아홉, 서른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돈은 잘 벌리고, 하는 일마다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일 끝나고는 동료랑 폭식을 하며 상사욕을 하고,
부모님을 만나서도 일 얘기만 하면 날이 곤두서고,
스트레스 때문에 과소비와 과식을 반복했다.
통장에 돈은 쌓이는데, 마음은 점점 비어갔다.
그때 처음 알았다.
“불행이라는 건 이렇게 다가오는 거구나.”
두 사람
그 무렵, 두 사람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우연히 만난 한 여행객,
그리고 내 중학교 동창인 친구 흰양.
1. 스무 살에 하고 싶던 건, 마흔이 되어도 여전히 하고 싶어요.
나는 당시 내가 하던 일 외에도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우리 집에 일주일 간 머물렀던 여행객이 있었다.
40대 직장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그 여행객은
미국을 한 달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녀가 내게 해 준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스무 살 때부터 미국에 가고 싶었는데, 늘 미뤘어요.
돈이 없어서,
혼자가 무서워서,
일이 바빠서.
그러다 이제야 다녀왔죠.
막상 갔다와보니 별거 아니더라고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 하세요.
스무 살에 하고 싶던 건,
마흔이 되어도 여전히 하고 싶거든요.”
그 말이 내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스무 살에 하고 싶은 건, 마흔이 되어도 하고 싶다
언제나 ‘언젠가’를 핑계 삼아 미뤄왔던 내 모습이 보였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할 것 같았다.
2. 흰 양이라는 이름의 신호등
그 무렵, 먼저 퇴사한 흰양과도 연락이 닿았다.
“대만 생활 어때?”라는 가벼운 안부 끝에
내가 그녀에게 장난처럼 말을 던졌다.
“그럼 퇴사도 한 김에 대만에 와서 우리 집에서 살면서 중국어 배우고, 해외생활도 즐겨보는 게 어때?”
농담이었던 그 제안을, 흰양은 단 두 주 만에 현실로 만들었다.
중국어 한마디 못하던 그녀는 어학원에서 공부하고,
틈틈이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자기만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확신이 들었다.
“그래, 이번에 여행을 떠나게 되면
나도 언어를 배우며 여행을 다니자.
무작정 떠나는 게 아니라, 뭔가 배우면서.”
나의 첫 번째 선택, 아일랜드
당시 미국병이 있던 나는 미국만 생각했지만,
어쩌다 보니 발길은 유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고른 첫 목적지는—
아일랜드, 더블린이었다.
미국 생활은 막연한 동경이었다면,
유럽 생활은 확실한 이유가 보였다.
합리적인 학비의 어학원
유럽 각지를 연결하는 라이언에어
그리고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
상대적으로 좋은 치안 (도착하자마자 휴대폰 강탈사건이 있었지만....)
여기가 바로 내가 찾던 여행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곳이었다.
출발
그렇게 퇴사 후 단 5일 만에,
나는 타이베이에서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설렘 반, 두려움 반.
이미 10년 가까이 해외살이를 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세계여행의 첫걸음.
그 두려움 속에서, 내 두 번째 삶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