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과였지만 역사와 사회과목이 참 재밌었다. 부모님은 싫어하셨지만 역사학자는 내 어릴적 꿈 중 하나였다. 역사학자들이 과거 기록과 유물을 토대로 과거 모습에 대한 가설들을 검증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정말 멋있고 재밌어 보였다. 초등학생 때도 주말이면 혼자 티비 앞에 앉아 역사 다큐를 챙겨보았고, 중고등학교때도 국사와 사회과목은 재밌기도 하였고 성적도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부모님은 내가 '의사'라 불릴 수 있는 직업을 갖기를 원하셨다. 부모님이 간절히 원하셨던 '의과대학'이나 '치의과대학'에 진학하기에는 부족한 성적이었고, 결국 재수 끝에 지방에 있는 모 '수의과대학'에 합격하였다. 나도 그게 당연한 길이라 생각했다. 이과였고, 성적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전문직이 되어야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막상 대학에 입학하려니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예과 2년 본과 4년 군복무 3년 거기에 인턴 까지 최소 10년은 이 공부를 해야할텐데.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거지? 처음으로 '나'에 대해, '나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답을 구하려 여러 자기계발서를 탐독하고 성공한 인물들의 강연과 다큐를 찾아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10년의 인생 방향을 결정하기에는 내가 너무나'아는 것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지금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견을 넓힐 수 있고 진로 결정에 더 많은 선택지가 있는 곳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목표를 갖게 되었다.
입학과 동시에 다시 수능 준비를 하였다.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지만 수의과대학을 자퇴하고 현재의 모교에 입학하였다. 모교를 택한 이유는 당시 지원이 가능했던 학교 중 다전공제도가 가장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 계열로 입학 후 사회과학 계열을 복수전공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나는 수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반대가 많았다.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대학생활에 최선을 다하였고 후회없는 20대를 보냈다. 다양한 전공과 꿈을 가진 친구, 선후배, 교수님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요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올 때 마다 그 때 내가 왜 자퇴를 결심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만약 수의과대학에 남았더라면 지금보다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20대가 이만큼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의 30대도 조금 불안정할지는 모르지만 후회없는 시절로 남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