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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함께 살아가려면

by 여의도노마드

불안은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지금 하는 일이 계속될 수 있을지, 내가 쌓아가는 경력이 정말 의미 있는 일인지, 시대의 흐름에 맞는 선택을 하고 있는 건지. 미래는 예측할 수 없고, 내가 올바른 방향 위에 서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날이 많다. 그런 불확실함은 일상적인 판단을 멈추게 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조차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나는 이런 감정의 반복 속에서, 삶은 결국 불안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가끔씩, 불현듯 불안이 마음을 건드릴 때가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 의미 있을까, 회사가 나를 오래 필요로 할까 하는 생각이 들고, 같은 팀 안에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도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언젠가는 결혼이나 아이 같은 삶의 큰 일들도 마주하게 되겠지 생각하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어쩐지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럴 때 나는 더 조급해졌고, 미래를 통제하려는 마음으로 계획을 과하게 세우기 시작했다. 책이나 강의를 계속 찾아보고,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더 많이 알고 있어야만 겨우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고, 앞서 나가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불안을 없애주지 않았다. 실행보다 준비가 앞섰고 기준은 높아졌지만 만족은 줄어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없애기 위해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누군가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비교하고, 누군가는 정해진 커리큘럼과 자격증 안에서 안정감을 찾으려 한다. 게임이나 음주에 몰입하며 마음을 잠시 잊어보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대부분 잠깐의 해소에 그칠 뿐, 결국 더 큰 결핍과 피로를 남긴다. 불안을 없애려는 시도 자체가 또 다른 불안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바꾸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불안을 없앨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불안을 안고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그렇게 방향을 바꾸고 나서야,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나를 붙잡아줄 수 있는 몇 가지 중심을 천천히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구성하는 세 가지 기준이었다.


첫째, 나는 무엇을 통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가. 나는 매번 새로운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 배워가며 구조화했고, 결국엔 해결해 냈다. 그 과정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결과도 만들어냈고, 무엇보다도 ‘나는 배우고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감각이 남았다. 그 기억은 환경이 바뀌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둘째, 나는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완전히 이해받지는 못하더라도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과의 연결이 있었다. 내 생각에 반응해 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삶이 가장 조용하고 고요했던 순간에도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다.


셋째,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나는 데이터와 기술로 기업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들이 지속 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자 한다. 또한 가치 있는 기업의 스토리를 찾아,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 일을 통해 사람들이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기여하고, 동시에 내가 살아가는 이 경제 구조에 의미 있게 관여하고 싶다.


이번 글을 쓰면서 나는 내 안의 불안을 하나씩 꺼내어 바라볼 수 있었다.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아래에 놓여 있던 감정들과 그것들이 만들어낸 구조를 이해하게 되자, 예전보다 덜 휘둘리고 덜 서두르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불안을 없애기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보려 한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다가오는 시기가 있다. 그런 때 그 감정을 덮어두기보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순간이 주어진다면,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방향 하나쯤은 떠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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