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능적으로 단순함을 좇는다. 세상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간단한 설명과 직관적인 구조, 예측 가능한 규칙에 기대며 살아간다. 단순함은 편리하고 안전하다. 하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일은 드물다.
단순한 이야기는 빠르게 소비되지만 오래 남지 않는다. 삶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전이 되는 이야기는 대체로 이해하기 어렵고 금방 다 알 수 없다. 그래서 자꾸 돌아보게 만들고 해석하게 만들며 어느 순간마음 깊은 곳에 스며든다.
문학, 음악, 미술, 철학, 수학 등 저마다 다른 언어를 쓰지만 모두 복잡한 세계를 바라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문학은 감정의 흐름을 붙잡으려 하고, 음악은 말로 옮기기 어려운 울림을 전한다. 철학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인간이라는 존재를 끝없이 되묻고, 수학은 보이지 않는 질서와 관계를 수식으로 표현한다. 미술은 눈에 보이는 이미지 속에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감정과 시대의 흐름을 새긴다.
우리는 이런 도구들을 빌려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려고 애쓴다. 복잡한 흐름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짧은 문장이나 하나의 수식으로 응축되는 순간이 있다. 그 안에 담긴 수많은 맥락과 모순이 단숨에 하나의 구조로 정리될 때 우리는 묘한 감동을 느낀다. 단순함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뒤에 숨어 있던 복잡함을 알기 때문이다.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내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닮아 있다. 나는 한때 모든 문제를 데이터와 수식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복잡한 현실도 논리적으로 구조화하면 명확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태도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고 업무도 사람도 그렇게 바라보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계산되지 않았고 사람은 예측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수식으로 정리되지 않는 상황들 앞에서 자주 당황했고 뜻하지 않은 갈등에 부딪히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어려움은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보려 한 데서 시작되었다. 삶과 사람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매일의 혼란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삶은 선명한 줄거리로 정리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고 모순투성이며 한 가지 언어로 담기지 않는다. 그 혼란을 감당하려 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내 삶을 미워하지 않게 된다.
사람 사이의 사랑도 다르지 않다. 타인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말과 행동 이면에는 수많은 맥락과 옮기기 어려운 감정이 숨어 있다. 그 복잡함을 단정 짓지 않으려는 태도, 이해보다 존중을 먼저 두려는 마음에서 비로소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은 단순한 설명을 넘어선다. 말로 다 닿지 않기에 오래 들여다보게 되고 끝내 마음을 내어주게 된다. 삶도 타인도 마찬가지다. 설명되지 않기에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