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두 가지 본능을 가지고 살아간다. 생존 본능과 의미 본능이다.
생존 본능만으로 살아간다면 인간은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의미 본능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의식하고,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삶의 의미는 결국 이 질문에 대한 자기만의 답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살아간다. 물론 사람마다 이 질문에 대한 관심의 정도는 다르다.
어떤 이는 생존 본능이 강하다. 그들은 주로 물질적 안정이나 타인의 인정을 추구한다. 그런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이유는, 삶을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반면 의미 본능이 강한 사람도 있다. 이들은 때로 현실적인 필요를 놓치기도 한다. 삶은 의미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을 잊기 쉽다.
한국 사회는 역사적,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생존 본능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의미를 더 중시하는 사람은 종종 이질감이나 고립감을 느낀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나는 늘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나는 그 답을 자유와 지혜 속에서 찾으려 한다. 내 시간과 선택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자유, 세상의 복잡함을 이해하고 단순하게 통찰할 수 있는 지혜. 그것이 나에게는 삶의 방향이자 동력이다.
생존 본능과 의미 본능은 종종 서로 충돌한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일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 사이에서 우리는 매 순간 균형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이 모순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에게만 주어진 축복이자 저주가 아닐까. 단순한 본능으로만 살지 않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며 나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자신의 천직을 찾고 싶어 한다. 천직이란 그저 생존을 위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과 깊이 맞닿아 있고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나 역시 그런 천직을 찾고 싶다. 자유롭게 배우고 탐구하며, 지혜를 쌓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그것이 내 삶의 방향과도 잘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이 균형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방법은 이렇다. 생존의 기반은 충분히 안정되게 마련하되, 그 안에서 조금씩이라도 의미를 추구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삶의 어느 한 시점에서는 생존이 더 중요하고, 또 다른 시점에서는 의미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본능 중 어느 하나도 완전히 억누르지 않는 것이다. 두 본능 사이에서 흔들리고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인간다운 삶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균형을 찾는 첫걸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지금 나는 바로 그 균형의 문제 앞에 서 있다.
해외 대학원에 합격했다. 자유와 지혜를 더 깊이 추구하기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지식을 배우고 검증할 수 있는 역량을 쌓고 싶어 지원했다. 나에게는 그것이 자유를 위한 실천이자, 삶의 의미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의미 본능은 나를 향해 “가라”라고 속삭이지만, 생존 본능은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 앞으로의 안정,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하게 만든다. 두 본능 사이에서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막상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지금 선택이 과연 옳은 방향인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 중이다. 아마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