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고등학교 때 가장 성적이 좋지 않았던 과목은 수학이었다. 이과였던 나에게 낮은 수학 성적은 언제나 큰 스트레스였다. 결국 고3, 재수, 삼수 세 번의 수능 모두 수학 성적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잘하지도 못하는 수학을 4년이나 더 공부하려고 했던 것일까?
당시 내 모교는 학과제가 아닌 학부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자연과학부로 입학하여 미적분학을 포함한 다양한 기초 전공과목을 수강한 후에 본 전공을 택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만난 '수학'은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던 '수리영역'과는 다른 것이었다.
대학에서의 수학은 짧은 시간 안에 누가 더 많이, 정확히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과목이 아니었다. 계산보다는 사유의 학문이었다. 과학보다는 철학에 가깝에 느껴졌다.
당연하게 여겼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고 관련된 명제를 하나하나씩 증명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셀수 있는 것이란 무엇인지, 더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공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공부를 하는 데 있어 이 과정을 누가 더 빨리 끝내느냐가 아니라끝까지 해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요소였다.
나는 이런 매력에 빠져 수학을 주 전공으로 선택하였다. 몇 날 며칠 고민 끝에 이해하기도 어려웠던 개념을 증명하였을 때, 그 성취감의 기억은 삶을 살아가는데 큰 원동력 중 하나이다.
수학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지만, 교직을 이수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는 이상 어려워 보였다. 결국 타협점을 찾아 금융권에서 통계분석 역량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 때 그'즐거움'을 느낄 수는 없었다.
회사에서 필요한 건 느린 사유가 아니라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해내는 사람이었다. 직장 생활이 답답할 때면 종종 대학교 때 보던 전공책을 훑어보거나 수학 교양서를 찾아보며 그때 그 즐거움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비슷한 갈급함을 느끼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 수학을 포기했지만 다시 수학 공부를 하고 싶어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는 사람, 수학 문제를 풀던 그 쾌감을 다시 느끼기 위해 수학 학습지를 구독하고 있다는 사람 등 각자 다르지만 비슷한 이유로 수학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왜 다시 수학을 찾는지 생각해보았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4차 산업 분야의 성장이 가시화되면서 그 근간이 되는 수학의 필요성이 점점 더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불확실하고 저성장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수학이 주는 '명료성', '불변성' 그리고 '성취감'이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