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 또래들 사이에서 많이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는 '파이어(FIRE)'족이라는 말이다. 'FIRE' 란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약자로 30,40대에 경제적 자유와 조기 은퇴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파이어족이라 한다. 쉽게 말해 젊었을 때 남들보다 열심히 벌고 모아 하루라도 빨리 노동소득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것이다. 남은 인생을 경제적 고민 없이 각자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다.
파이어족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며 성장주나 가상화폐 같은 자산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투자 대신 여러 개의 부업을 병행하며 소득의 많은 비중을 저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산이 필요할까?
이형욱 작가의 책 <대한민국 파이어족 시나리오>에서는 필요한 생활비에 4%의 역수, 즉 25를 곱한 수가 적정한 은퇴 자산이라 말한다. 내가 은퇴 자금을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는 자산에 투자해뒀을 때, 은퇴 자금의 4% 이하로만 한 해 생활비를 쓴다면 전체 자산은 영원히 손실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에 근거한다.
예를 들면 연간 3,000만원의 생활비가 필요한 사람은 7억 5천만원의 은퇴자산이 필요한 것이다.
작가는 어떻게 자산을 모으는 가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행복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 생활비'를 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자신의 경험과 일상을 돌아보며 '나'를 행복하게 했던 요소들을 빠짐없이 나열한다.
둘째, 불필요한 요소들은 제거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요소들을 위해 필요한 각 비용을 모두 더하여 최소 생활비로 정한다.
책장을 잠시 덮고 메모장을 끄적이며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됐다고 느끼는 것
나의 지식과 생각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일상, 추억, 꿈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와 음악을 만나는 것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멀리 떠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산책을 하는 것
땀으로 등을 적실만큼의 운동을 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
햇살이 들어오는 집에서 좋아하는 음악, 책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것
구체적인 내용을 적지는 않았지만 나만의 행복 리스트와 필요한 비용을 적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음에 놀랐다. 또한 현재도 대부분의 것들을 누리며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니 이번 삶에 더 감사함을 느꼈다.
나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기에, 지금의 생각과 계획대로 남은 인생을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적 자유를 위해, 내 행복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고민하다 보니 막연한 불안감은 줄어들고 삶에 대한 감사함은 늘어났다. 돈과 행복의 문제는 나에게 늘 어렵고 회피하고 싶은 숙제였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좀 더 용기를 가져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