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2
우선, 이 일기는 오래된 일기가 되겠다.
3월 6일에 그려놓은 것이니 무려 8개월이 훌쩍 넘었다.
이 그림을 그릴 때만 해도 여행작가학교 20기가 개강한 때였지만
지금은 20기 종강은 물론이고 21기 개강을 넘어 21기까지 종강을 코앞에 두고 있다.
여행작가학교 4기부터 시작한 여행 에세이 강의가 어느새 21기가 되었다.
그사이 많은 수강생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과연 꿈을 이루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강의에 임했던 나의 마음은 늘 한결같았던 듯하다.
오래전에 그려놓은 그림에 더 오래전에 썼던 글을 첨부한다.
그때의 마음이나 지금의 마음이나 변한 것이 없으니.
.................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정확히 표현하자면 '꿈을 가진 사람들, 그들과의 만남'이다.
내가 그들에게 애착을 가졌던 이유는 '현재의 나' 때문이 아니다.
현재의 여행작가로서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것을 전해줄 수 있겠는가.
나의 강의는 단 한 번.
불과 1시간 30분이다.
물론 현장실습여행 한 번과 글쓰기 품평 세 번의 기회가 더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만남을 다 합한다고 해도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는 시간이다.
내가 그들에게 애착을 가졌던 이유는 '과거의 나' 때문이다.
꿈을 꾸고 있었지만 숨겨야 했던 과거.
그 꿈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믿었던 과거.
혹시 수강생 중에 누군가 꿈을 포기하거나 꿈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라는 염려.
그 누구도 절대 꿈을 포기하는 슬픈 일은 없어야 한다는 믿음.
그래서 희망을 주고, 확신을 주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내가 했던 역할은 거의 없다.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했던 나와는 다른 시대다.
당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용기와 믿음이었다.
나도 꿈을 꿀 자격이 있고 이룰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것.
시대는 변했고 수강생 대부분은 작가가 아니어도 이미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적합한 것은 겸업이다.
하지만 겸업이 어디 쉬운 일인가.
한 가지 일 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여행작가학교 졸업생 중에서 누군가 나를 감동시킬 결과물을 만들어 주길 간절히 희망한다.
내 마음을 흔들어, 차마 마지막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해 주길 바란다.
그런 작업을 누군가 해준다면,
나는 단 둘이 술잔을 앞에 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어설픈 칭찬보다 묵묵히 그의 어깨를 안아 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 테니까.
내가 여행작가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에게 그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을 포기하지 말도록 용기를 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서 보고 싶었던 것은 '재능'이 아니라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을 한다.
몸을 낮추고 세상을 보자.
어설픈 충고보다 내 안의 간절함을 먼저 키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