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0
욕실 타일 벽에 붙어 있던 시계가 멈춘 것은 아마도 여덟 달 전 무렵.
그 무렵 매우 바빴고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제법 많았다.
하지만 시계의 건전지를 교체하지 않은 이유라고 말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나도 알 수 없는 이유.
굳이 조금 더 깊게 따져보자면,
이 번 일만 끝내면, 이 번 일만 끝내면,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고,
정말 그 일만 끝내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훌쩍 여행이라도 떠날 생각이었다.
그때 청소도 하고, 책상도 정리하고, 시계 건전지도 교체한다면
홀가분하기도 하거니와 새 출발을 하는 기분일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밥 먹는 시간도, 샤워하는 시간도 괜히 불안했던 날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 번 일이 끝나면 다음 일이 시작되었고,
그 일이 끝나면 또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게으르고 집중력을 잃은 것이 원인이었다.
아무튼 그 무렵 드로잉도 멈췄다.
거의 매일 그리던 그림도 무 싹을 자르듯 싹둑 잘라버렸다.
당연히 그림일기도 그리지 않았다.
어쩌면 시계 건전지를 교체하는 날,
내 모든 시간들도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미뤘던 건전지를 오늘 교체했다.
압축력이 미흡해서 몇 번이고 욕실 바닥에 떨어졌던 시계지만 곧바로 바늘이 움직였다.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나의 일상도 어느 정도는 제자리로 돌아오겠지.
그럴 것이라 믿는다.
그래야만 한다.
이제 2018년도 40여 일 밖에는 남지 않았으니까.
지금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40여 일 후 더 큰 자책감에 빠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