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1
2주가 되었다. 심한 비염으로 시작해서 감기가 찾아왔고 곧 몸살이 겹쳤다. 비염이야 평생 달고 사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날의 비염은 상상 이상이었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쉴 새 없이 콧물이 고였고 5분, 10분 간격으로 잠에서 깼다. 잠들만하면 콧물 때문에 깨고, 잠들만하면 다시 깨는 일이 반복되었다. 졸려 죽을 지경인데 자꾸만 깨다 보니 극도로 예민해졌다. 두통이 동반된 감기도 시작된 상태였다. 그야말로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더욱이 그날은 대회 전날이었다.
그렇게 잠 한숨 자지 못하고 인천에서 열린 듀애슬론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참담했다. 도저히 나의 실력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였다. 하지만 함께 대회에 나갔던 팀 동료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과는 나의 것이고 사족을 붙이는 것은 핑계에 불과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였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대회까지 치르고 나니 몸은 그야말로 바닥이었다. 이튿날부터 몸살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많은 땀을 흘리기도 처음이었다. 한 여름 전력질주 후에 흘리는 땀보다도 더 많은 땀이 흘렀다. 음식을 먹을 때 가장 심했지만 시도 때도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베개가 젖어있었고, 요도 눅눅했다. 속옷은 하루에도 몇 번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였다.
결국 내 발로 병원까지 찾아가 수액을 맞았다. 병원에 가는 날도 기운이 없어서 기어가다시피 했다. 이후 훈련은 거의 접어야 했다. 그렇게 2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심한 비염이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2주 동안 땀을 그렇게 많이 흘린 적도 없었지만, 이렇게 심한 농이 나오는 것도 처음이었다. 코 주변에서 쉴 새 없이 농만 생산하는 것 같았다. 몇 분에 한 번씩 코를 풀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나오는 농의 양이 어머어마했다. 너무 더러워서 역겨울 정도였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그렇게 많은 양의 농을 만들어내는 것인지 놀아울뿐이었다.
병원 처방은 두 번 받았다. 7~8알이 넘는 약을 하루에 세 번씩이나 먹는 것이 싫어서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았다. 몸살이 사라져 살만해진 것도 이유였다. 하지만 코의 염증은 전혀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았고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결국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이비인후과에 갔다. 내과가 아니라 이비인후과에 가야 한다고, 비염은 아무리 짧아도 5일 이상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서 받은 판정은 축농증이었다. 5일이 아니라 2주 이상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축농증의 원인 당연히 심한 감기였다.
축농증과 별개로 의사는 나의 오른쪽 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의 코뼈는 완전히 휘어 있다. 의사가 그랬다. 이 정도면 수술해야 한다고.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운동해요? 드디어 의사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다. 늘 농담처럼 했던 말. 아픈 거 참고, 참고, 참다가 병원에 가면 혹시 의사가 그러는 거 아냐? '그동안 많이 힘드셨을 건데, 어떻게 참으셨어요?' 하지만 수술할 생각은 없다. 어마어마한 통증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몇 년 후 대부분 재발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수술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평생 이리 살았으니 이제 와서 수술은 하고 싶지는 않다.
컨디션이 엉망이고, 머리가 아프고, 쉬지 않고 나오는 농 때문에 쉴 새 없이 코를 풀어야 하고, 가끔 기침을 한다. 당장 5월 26일 큰 대회를 앞두고 훈련에 매진해야 할 상황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다. 병원에 들렀다가 억지로 수영장으로 갔다. 1km 수영 후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나왔다.
2주 동안 아픈 덕분에 몸무게는 드디어 69kg 대로 내려갔다. 애초의 목표였던 69kg. 몇 달을 노력해도 달성하지 못했던 몸무게였다. 12년 만에 최저 체중. 몸이 좋아지면 다시 올라갈 확률이 높지만 우습게도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약이 독한 것인지, 아직 내성이 없어서인지, 다행히 약 먹고 하루 만에 호전되고 있다.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나오던 농이 확 줄었다. 조금 살만하긴 하다. 이제 어찌해야 할까? 온몸이 늘 노곤한 상태임에도 무리해서 운동을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쉬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