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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여행자 박동식 Feb 23. 2019

38. 5천만 원으로 내 집 마련?

2019.02.22


삶은 다양하다. 한 달 동안 폐지를 모아 판 돈이 단돈 3만 원이라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 들어보았다. 그런 보도를 들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차라리 3만 원을 안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새벽부터 폐지를 주우러 다니느니 생활비 3만 원을 절약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한 달에 단돈 3만 원을 벌기 위해서 폐지를 찾아다니는 삶을 솔직히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누군가 나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충분히 한다.


지금 사는 집은 반지하다.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좋은 반지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지상층보다 오히려 습기가 없는 반지하다. 지상층에 비해 빛이 잘 들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매우 쾌적한(?) 집이다. 하지만 밖을 볼 수 없는 반지하는 격리된 생활과 다를 것이 없다. 퇴근해서 저녁 먹고 잠자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출근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종일 집에서 일하는 날이 많은 프리랜서에게 밀폐된 반지하는 숨 넘어갈 정도로 답답한 생활이다.


이 집은 월세다. 보증금 1500만 원에 월세 20만 원. 이사 온 지 5년이 막 지났다. 이사 올 때 내 수중에는 1500만 원 보증금이 전부였다. 친구나 후배 혹은 선배에게 가끔 그렇게 말했었다. 5천만 원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겠다. 세상에 걱정 하나도 없겠다. 그런 마음이었다. 진심이었다. 5천만 원만 있으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누군가 그렇게 반문하기도 했었다. 5천만 원으로 뭐할 건데? 그때 딱히 답하지는 못했지만 당연히 그 돈으로 장사를 할 생각이었다. 또 누군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깟 5천만 원으로???


어느 순간, 통장 잔고가 1500만 원이 되었다. 적금을 모르는 삶이다. 원고료가 들어오면 쌓이고, 생활비가 지출되면 잔고가 줄어드는 것이 내 생활 방식이다. 1500만 원이 모였을 때 선배에게 술을 샀다. 기뻤고 자랑하고 싶었다. 통장 잔고 1500만 원으로도 충분했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일용직 근로자처럼 매달 들어오는 원고료로 매달 살아가는 삶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1500만 원이면 원고 청탁이 전혀 없어도 6개월은 버티고도 남을 테고, 아끼고 아낀다면 1년도 살 수 있을 돈이었다.


신기하게도 통장 잔고는 점점 늘었다. 삶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지나치게 아끼지 않는 것 또한 내 삶의 방식이다. 드론을 사고, 서브 카메라를 사고, 캠핑 장비를 사고, 브롬톤을 사고, 사이클을 사고, 카본 휠을 사고, 악기를 사고, 학원을 등록하고. 그럼에도 통장 잔고는 점점 늘었다. 5년 전 보증금 1500만 원이 전부였지만 어느새 통장 잔고가 4000만 원이 되었다.  


설 연휴 직전이었다. 늦잠을 자고 있었고 휴대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초등학교 동창 친구였다.

"아파트 급매 나왔어."

"??????"

"1억 8천. 시세는 2억 천이야."

"무슨 소리야?"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이랬다. 몇 개월 전에 내가 그랬단다. '야, 4~5천으로도 집 살 수 있냐?' '그럼, 당연히 있지.' 친구는 부동산을 하고 있었다. 나는 새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듣고 보니 그렇게 이야기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잊고 있던 이야기를 친구는 기억을 하고 있었고 김포 풍무지구에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온 아파트가 나오자 곧바로 연락을 한 것이었다.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겁도 덜컥 났다. 자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갑자기 집을 사라니. 1억 4천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매달 40만 원 이자에 원금 25만 원. 설이 지나고 곧바로 아파트를 보러 갔다. 23평. 월드메리디앙. 1800세대. 16층에 5층. 끝 라인도 아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반지하에 살다 그런 집에 들어서면 덜컥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 하나도 끌리지 않았다. 구조와 방향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고민을 해보기로 했다. 친구가 소개해 준 은행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기본적인 서류를 팩스와 이미지로 보내고 대출금을 알아보았다. 1억 4천8백. 이자는 31.7, 30년 고정금리. 매달 40만 원 정도의 이자와 원금 25만 원을 갚아야 했다. 친구가 이야기한 것과 비슷했다. 25만 원은 적금이라고 생각하고, 이자 40만 원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20만 원 더 보태서 내 집에서 산다고 생각하니 못 저지를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집은 아니었다. 그래서 동급의 다른 아파트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 무슨 웃지 못할 일이란 말인가. 내 평생 집을 보러 다니는 일이 다 생기다니.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집을 전혀 못 살 일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면서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직장인이라면 집을 못 살 일도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다들 이렇게 대출받아서 집 사고 돈 벌었겠구나 싶었다.


동급의 아파트도 제법 보였다. 하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자칫 평생 집의 노예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집에 살면서도 오히려 삶의 질이 매우 저하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내 집도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은행 집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빌라로 시선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네이버 부동산을 뒤졌다. 시간이 날 때마다 뒤졌으면 좋았겠지만 없는 시간까지 만들어서 뒤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네이버 부동산은 블랙홀이 되었버렸다. 내 모든 에너지는 오로지 네이버 부동산에 집중되었다. 한 마디로 폐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또 알게 되었다.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빌라가 제법 있다는 사실. 신축은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신축 빌라에 들어가느니, 무리해서 풍무지구 23평 아파트를 가는 게 훨씬 현명했다. 오래된 낡은 빌라만 찾아보았다. 그리고 꽂힌 곳, 인천 계양구 박촌동. 이 지역에서 7~8개 이상의 빌라를 보았다. 처음 본 빌라는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집을 어떻게 뜯어고칠 것인지까지 설계가 될 정도였다. 꽂힌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그때 깨달았다. 마음에 드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하지만 처음 본 빌라였다. 더 찾아보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집에 마음이 꽂힌 상태에서 다른 빌라들을 돌아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 집이 정말 괜찮은 집이란 것만 확인하게 되었다. 샤시 집에 가서 전체 샤시와 벽 일부를 해체하는 견적까지 받아보았다. 지역을 조금 더 확장해서 다른 지역을 살펴보기도 했지만 내 생활 영역과 경제력에서 박촌동은 최고의 조건이었다. 그래서 최종 결정을 했다. 그 집이야!


부동산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헉! 그 집은 내가 본 바로 다음 날 계약이 되어버렸다. 허탈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망설이면서도 그 사이 '셀프 인테리어'를 얼마나 찾아보았는지 모른다. 세 개의 방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그림까지 그려놓은 상태였다.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지나치게 믿고 있었다. 거래가 활발하지 않으니 그렇게 쉽게 집이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내가 마음에 들면 다른 사람도 마음에 들 확률이 높다는 것을 간과했다. 아마, 지금이라면 곧바로 가계약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본 빌라였고, 마음에 드는 빌라는 그렇게 또 쉽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오늘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빌라를 보았지만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을 접았다. 애초에 보았던 빌라에서 다른 매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언젠가는 나오겠지.


돌아보면, 설 직전부터 나는 잠시 내가 아닌 삶을 살았다. 그동안 내가 살았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태어나서 처음 집을 보러 다녔고 네이버에 '부동산' 카테고리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5천만 원으로도 집을 살 수 있다는 것까지 알아 버렸다. 물론 약간의 대출은 받아야 한다. 그래도 '내 집'이 벌 거는 아니란 것을 알게 되자 세상이 조금 쉬워졌다. 심지어 나답지 않게, 열심히 돈을 모아볼까? 그런 생각까지도 해보았다.


이제 당분간 집을 보러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네이버에서는 안양, 수원은 물론이고 멀리 여주까지도 다녀왔다. '셀프 인테리어'도 더 이상 검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집 10채도 부수고 다시 지었다. 정신없는 2월이었다. 블랙홀 같았던 '네이버 부동산'과 '셀프 인테리어'. 덕분에 마감도 지키지 못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죽으면 죽었지, 더 이상 반지하에서는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창밖을 보고 싶다.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듣고, 눈이 내리면 쌓인 눈을 보고 싶다. 잎이 나고 죽는 것을 집안에서 바라보고 싶다. 그래야 글이 써질 것 같다. 글을 쓸 수 없었던 것은 모두 반지하 때문이었다고 우기고 싶다.


그래도 지금은 평상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대로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집 보러다니다가 생활이 피폐해질 판이다. 딴 일을 못할 지경이다. 돈이 많아서 선택의 폭이 넓은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 동네, 그 빌라가 딱이다. 그러니 어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냥 기다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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