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6
열흘이 지났다. 나에게는 올해 시즌 첫 대회였다. '2019 아이언맨 70.3 고성'. 4월에 듀애슬론 대회가 있었지만 3종 경기는 아니었으니까. 작년 시즌 마지막 대회로 참가했던 은총이 대회에서 이 대회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12월 31일까지 얼리버드 신청 시 마라톤화를 준다는 점. 그리고 둘째, 장소가 경남 고성이라는 점.
경남 고성은 내가 군대 생활을 했던 곳이다. 감히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군대에서 접한 자연의 감성은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큰 자양분이다. 언젠가 잡지 'PAPER'에서 그런 청탁을 받았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에 대해 써달라고. 아마도 '마이 포트레이트' 이런 칼럼이 아니었나 싶다.
군대 생활에 대해서 썼다. 세상에 군대 생활이 마이 포트레이트라니. 다시 가보고 싶었다. 그때는 읍내에서 5분만 가면 바로 비포장이었다. 그런 해안길을 몇 십 분 달려서 초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가 하루에 몇 번 없어서 전령을 할 때는 한 초소에 들른 후 다음 초소까지는 1시간씩 걸어가고는 했다. 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길, 논, 밭, 하늘, 바다, 바람 그리고 한두 번 마주친 노루. 달빛에 빛나는 하얀 소국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처음 알았고, 반딧불이보다 더 환하게 빛나는 바닷가의 동물성 플랑크톤도 그때 처음 보았다. 수확이 끝난 논바닥을 뛰어가는 '사슴'을 보았을 때는 그곳이 세렝게티나 다름없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긴 짐승은 모두 사슴인 줄 알았다. 물론 난 아직도 노루와 고라니를 구분하지 못한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고성은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대회를 핑계로 내가 걸었던 시골길과 해안을 다시 한 번 더듬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마 무시하게 변해서 흔적조차 찾기 힘든 곳이 되었다. 임포, 쭉지골, 삼포, 하이면, 군룡포. 지금도 기억하는 몇몇 이름들이다. 결국 추억은 이름 속에서만 남게 되었다.
대회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대회는 잘 마쳤다. 기록도 매우 만족한다. 물론 좋은 기록은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뛰었고, 현재 나의 훈련 상태와 실력으로 그 정도면 만족한다. 4월의 듀애슬론대회처럼 감기몸살 같은 복병을 만나지 않았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아이언맨 70.3은 하프 코스이다. 수영 1.9KM, 사이클 90KM, 런 21KM. 70.3은 이 거리를 합한 마일 수치이다.
수영 출발은 롤링 스타트였다. 자신의 실력에 맞는 그룹에서 출발해야 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대략 10분 단위로 그룹이 나눠졌다. 39분대 후미에서 출발할 것인지, 41분대 앞에서 출발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41분대 선두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3초 간격 출발은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출발도 전에 39분대 후미 선수들과 41분대 선두 선수들의 줄이 합쳐지고 말았다. 나에게는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39분대 후미와 41분대 선두에서의 고민이 순식간에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이어서 이번 대회에서도 로프 가까이는 가지 않았다. 가장 몸싸움이 치열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방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수영을 마치면서 생각했다. 다음 대회에서는 몸싸움이 심하더라도 로프 가까운 곳에서 수영하자. 기록은 41분대에 나왔다. 틀어진 방향을 수시로 수정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만족스러운 기록이었다. 사이클과 런은 훈련 때보다 대회 기록이 좋지만 수영은 늘 훈련 때보다 기록이 나빴다. 이번에도 훈련 때보다 조금 느린 기록이긴 하지만 오픈워터이니 나름 괜찮은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사이클 바꿈터로 들어갔을 때 조금 당황했다. 늘 수영을 마치고 나오면 사이클이 없이 텅텅 비어 있었지만 이번에는 대부분의 자전거들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사이클은 코스에 대한 인지가 충분했다. 이 또한 매우 잘한 일이었다. 코스를 알고 타는 것과 모르고 타는 것은 천지 차이. 2/3까지는 평속 30KM를 넘겼다. 하지만 후반에 들면서 집중력이 뚝 떨어졌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시속 28KM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나름 대회를 즐겼다. 거리에서 응원하는 주민이나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놓치지 않았고, 심지어는 사이클을 타면서 그들과 하이파이브도 했다. 하이파이브는 내가 대회를 즐기는 방법 중에 하나. 최종 기록은 3시간 5분. 평속은 29KM.
수영에서 나왔을 때 대부분의 사이클이 바꿈터에 있어서 당황했는데, 이번에도 바꿈터 안에 대부분의 사이클이 걸려 있어서 당황했다. 사이클을 타는 내내 추월을 당했다는 의미였다. 사실 최소 평속 30KM는 유지했어야 했다. 하지만 첫 대회이고 나름 선전했다.
런을 출발하면서 후회한 것이 하나 있다. 보급이다. 늘 충분하게 보급을 준비하는 편이다. 그래서 대회가 끝나면 경기복 주머니에 한두 개 이상의 파워젤이 남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적당히(?) 챙길 생각이었다. 파워젤 달랑 하나. 어차피 보급소를 곧 만날 테니까. 하지만 매우 위험한 결정이었다. 런을 출발할 때 이미 허기진 상태였다. 아차, 싶었다. 바로 파워젤을 먹어야 했지만 이제 시작이니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공원 내의 첫 보급소를 만났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물밖에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파워 젤은 아껴야 했고, 그대로 뛰자니 이미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였다. 어쩔 것인가. 결국 파워젤을 먹었다. 먹지 않으면 뛸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출발 3KM도 되지 않아서 하나밖에 없는 파워 젤을 먹어버렸으니 이제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 버렸다.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실수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파워젤을 먹자마자 효과가 나타났다. 나는 파워젤을 먹으면 2~3분 안에 효과를 보는 체질이다. 그렇게 공원 내 구간을 달렸다. 공원 내 코스는 대략 5KM. 다행히 이후 보급소들은 매우 훌륭했다. 물과 이온음료와 콜라가 충분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바나나와 초코바, 비스킷 등도 충분했다. 하지만 내가 먹은 것은 오로지 콜라와 바나나뿐이었다. 첫 보급에서 에너지 고갈을 방지하기 위해 초코바를 반쪽 먹기는 했다.
코스는 같은 구간을 3회전 하도록 설계되었다. 절반은 오르막, 절반은 내리막이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도로 구간으로 나간 후 초반보다 속도가 붙었다. 몸도 점점 풀렸고, 운이 좋게도 언덕 구간에서는 발을 맞춰 뛰는 선수를 몇 번이나 만났다. 그들을 놓치지 않고 함께 뛰었던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런 구간에서도 나의 하이파이브는 멈추지 않았다. 하이파이브는 나도 즐겁고 응원하는 분들도 즐거운 일이다. 생전 그런 거 해본 적이 없는 어르신들도 엄청 좋아하신다. 하이파이브를 하면 갑자기 함성 소리도 커진다. 하이파이브는 우리를 위해 응원해 주는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종의 보답이다. 그들과 교감할 때 즐겁고 뭉클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난 어차피(?) 시상대에 올라갈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가끔 그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입상 후보였다면 1분 1초가 아까워서 대회를 지금처럼 즐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골인 할 때도 하이파이브를 즐겼다. 응원석 인원은 많지는 않았지만 하이파이브 하면서 들어왔다. 그래놓고는 정작 골인 지점에서는 멋진 포즈를 취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골인 지점의 멋진 사진보다 더 멋진 사진을 얻었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달려오는 나의 모습. 내가 봐도 멋지다.
사실 참가비가 제법 비싼 대회였다. 'IRONMAN' 타이틀 하나 때문에 괜히 봉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명불허전. 많이 받고 그만큼 많이 챙겨주고 멋지게 진행하는 대회였다. 작년 8월 3종 경기에 재입문 후 가장 멋진 대회였다. 구례 아이언맨 대회가 기대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다행히 얼리버드로 신청해서 비교적 저렴한 참가비를 지불했다. 또 얼리버드 신청자는 런닝화까지 선물로 지급되었으니 본전을 뽑고도 남은 느낌이었다. 내년 대회에도 기꺼이 참가할 생각이다.
다음은 기록이다.
수영 1.9km, 00:41:22
바꿈터1, 4:40
사이클 90km, 3:05:48(평속 29.07)
바꿈터2, 3:26
런 21km, 2:10:53(평속 6:13)
완주 기록: 6:06:08
완주 기록을 조금 더 분석하면 이렇다.
Age 50~54: 191명 중 71위
남자 참가자: 1331명 중 610위
전체 참가자: 1508명 중 661위
훈련도 열심히 하고 기록도 더 단축해야겠지만 앞으로도 대회를 즐길 것이다. 한 가지 바라는 것은 부상 당하지 않기. 그리고 아파서 컨디션 난조 같은 거 없기. 그것만 아니라면 난 언제든 내 기록에 만족한다. 다행히 늘 중간 이상은 하니까.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일. 사이클 타면서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아마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까 싶다. 신발이 젖은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물집이 잡힌 것일까. 사이클 타면서 물집 잡혔다는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 굳이 원인을 찾아보자면 양말 같기는 하다. 평소 신던 양말이 모두 세탁 바구니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새 양말을 가져갔다. 새 양말이 불안하기는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이클 신발과 러닝화가 큰 편이라 양말도 조금 두꺼운 것을 신는다. 사이클 신발과 러닝화를 바꿔야 하지만 이것들이 모두 돈이다. 아직은 조금 더 신고 구례 아이언맨 대회 전에 바꿀 생각이다.
물집 때문에 런 할 때는 아주 죽을 맛이었다. 발바닥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에는 물집이 보이지도 않는다. 커다란 물집이 양쪽에 하나씩. 근육은 전혀 뭉치지 않았는데 이것 때문에 1주일 이상 매우 불편했다. 약 열흘이 지난 지금도 굳은살처럼 발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제 본격적인 시즌이 밝았다. 올해는 매달 1회만 대회에 나갈 계획이다. 부없 없이 뛰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