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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여행자 박동식 Jun 26. 2019

41. 지난밤 꿈 이야기

이거 음주운전인가요? 아닌가요?


동창들과 술자리가 있었다. 걸음과 눈빛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취했다. 친구 한 명과 먼저 자리를 떴다. 친구는 승합차를 몰고 왔고 직접 운전을 해서 가겠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나를 태워다 주겠다고까지 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나는 친구의 배려(?)를 받아들였다. 그가 거의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친구가 담배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가면서 차키를 주었다. 차에서 기다리라는 의미였다. 조수석에 탑승 후 미리 시동을 걸어두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몰두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차가 언덕 아래로 슬금슬금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속도가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사이드 브레이크로 제동이 되지 않았다. 언덕은 완만한 S자였고 신기하게도 승합차는 아무런 조작 없이 스스로 S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사람이 운전하는 정도로 정밀하지는 않았다. 내가 스마트폰에서 눈을 뗀 것은 S자가 거의 끝나가는 무렵이었다.


곧이어 길은 ㄱ자처럼 좌회전 모양이었다. 정신이 없었지만 프리마켓 같은 자판이 두세 개 있었던 같고, 좌회전 직전에 경찰 차량이 정차하고 있었다. 그대로 직진하면 전면이 유리인 상가와 충동할 상황이었다. 다행히 어떤 상황에서도 인사 사고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다행이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핸들을 어느 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핸드폰에서 눈을 뗀 후 매우 짧은, 그러니까  불과 3~4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전면이 유리인 상가와 충돌하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내부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측은 한옥 담장이었고 좌측은 경찰차. 그 짧은 순간 결정을 해야 했다. 좌측 경찰차를 들이받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 같았다. 더 큰 사고나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게 가장 바람직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순간, 우측 한옥 담장을 선택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재빠르게 핸들을 우측으로 돌렸다. 승합차 우측이 담장에 충돌했고 곧바로 내려서 확인해 보니 담장은 말할 것도 없고 차량도 거의 피해가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면 이대로 현장을 떠나도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목격자도 있었고 바로 옆에 경찰 차량도 있었다. 순식간에 대여섯 명의 경찰이 다가왔다. 그들은 내가 조수석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운전을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운전석에 앉은 것은 아니지만 시동을 걸었고, 마지막 순간에 핸들을 우측으로 돌리기도 했다. 시동은 내가 걸었지만 조수석에 앉아 있었으니 내가 운전을 하겠다는 의지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마지막 핸들을 돌린 것은 운전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핸들을 전혀 조작하지 않았다고 진술해도 나의 핸들 조작을 그들이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경찰이 현장을 점검하는 어수선한 상황이었고 나는 편의점에 들어간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경찰 옆에서 전화하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었다. 과음은 아니지만 친구는 술을 마신 상태였고 자칫 복잡하게 일이 얽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친구는 자신의 차가 없어졌으니 황당할 수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경찰 중에 한 명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를 따라붙었다. 일종의 감시였다.


친구에게 정확한 이야기는 할 수가 없었다. 경찰이 듣고 있으니 차후 나나 친구에게 불리한 이야기가 포함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 없어져서 놀랐지?"

"그래, 너 그러는 거 아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됐어!"

"아니, 그게, 내가 시동을 먼저 걸어두었는데...."


미칠 지경이었다. 엿듣고 있는 경찰 때문에 정확하게 상황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시동을 걸어두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가 움직여서...."

"그래, 네가 내 차 몰고 그냥 집에 간 거잖아. 그런 게 어딨냐?"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고. 그렇게 우물쭈물하다가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깨면서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 이거 음주운전인가? 하긴 꿈에서도 그게 가장 궁금했다.


이거 음주운전인가요?

핸들을 돌렸으니 음주운전은 맞는 거죠?

만약 핸들을 전혀 조작하지 않았다면 음주운전 아닌가요?

꿈에서 벌어진 일 그대로라면 저는 어떤 처벌을 받는 건가요?

꿈에서 벌어진 일 그대로라고 해도,

저는 결코 핸들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우긴다면,

그래서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증거를 경찰이 찾지 못하면 어떤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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