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에 소비를 행하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중요한 것을 꼽자면 음식이 되겠다. '의식주'야말로 기본적인 욕구가 아니겠는가.
생전 처음 가는 장소에 가면, 만족스러운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는다거나 기념품을 사기 위해 가게를 찾기 위해 거리를 배외하곤 한다.
지난 며칠간의 짧은 여행에서도 역시 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했는데, 그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식당 찾기와 거리 구경이었다. 무심코 지나다니다 보면, 주인의 말 한마디에 따라 그 장소의 기억이 뒤바뀌곤 한다.
Please라고만 했어도.
예를 들면, 우연히 들른 기념품 숍에서 구경하는 도중에 점원이 매우 정색(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하며 면전에서 '만지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했다. (Don't touch!) 나는 사려고 했던 건데 말이다. 물론 내가 잘못한 것이 맞다. 점원 입장에서 손님이 만지다가 부서지면 본인도 짜증이 날 테니 말이다. 아침 일찍부터 점원이 가게를 열며 기분이 안 좋았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생각하며 미안하다고 하고 머쓱게 웃어넘겼다. 만약 조금 더 친절하게 '미안한데, 부서질 수 있으니 주의해 달라' 고만했어도 나는 그 가게에서 기념품을 샀을 것이다. 내가 미안한 감정을 느꼈을 테니 말이다. 차가운 말 한마디에 미안했던 모든 감정이 싹 날아가고 나는 그곳에서 서둘려 발길을 돌려 나와 버렸다.
'여기 맛있어요 와서 드셔 보셔요'
반대로, 정말 좋은 인상을 받은 식당이 있다. 스페인 '론다'의 구시가지 안쪽의 골목에 위치한 'Santa Maria'는 구글 평점이 4.8점/5점인 곳이다. (나는 4점 이상이면 좋은 식당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음식의 맛도 정말 좋았지만, 음식의 맛을 더해주고 식당에 대한 인상을 확실히 남겼던 것은 주인의 말 몇 마디였다. 지난 며칠간 식당에 들러도 남기지 않던 평점을 달아주며 너무나 만족스러웠다고 사진과 함께 리뷰를 남겼다. 게다가 가게의 답변까지.. 완벽했다.
스페인 손님을 상대로 하는 식당은 대게 오후 8시가 넘어서야 저녁 장사를 시작한다. 이런 저녁 식사 시간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나라 손님들을 겨냥해서인지 오후 일찍부터 저녁 식사가 가능했다. 식당의 규모는 매우 작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손님과의 '연결'을 끈끈하게 해 줄 수 있던 것 같다.
또 다른 곳은 음식 맛은 그저 그랬지만 우연히 지나가던 찰나에 점원의 한마디에 줄을 서서 먹게 된 곳이다. 그저 지나가던 나에게 눈을 마주치며 '여기 와서 한번 드셔 보세요'라고 했을 뿐이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점원을 지켜보았는데, 자리가 나기도 전에 지나가던 '잠재적'손님들을 잡아내는 재주가 있는 분이었다. 나는 이런 분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식당 사장이라면 이런 분은 다른 일반 서빙 직원보다 1.5배 ~2배는 급여를 더 줄 것 같다. 다른 사람보다 3배 이상의 손님을 끌어올 테니까. 스페인에서 이런 사람을 본 것은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흔치 않았다. 대개 이런 호객 행위에는 조금은 싫증이 나거나 기분이 나쁠 수 있는데, 오히려 내가 가지 않으면 후회가 되지 않을까? 뭔가 여행에서 놓치고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길까 봐 가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신 분이다.
말 한마디
위 세 가지 사례를 보면 정말 별거 아닌 '말 한마디'에 평가가 매우 갈렸다. 어쩌면 단어 하나에 기분이 확 바뀌었을 것이다. 아니 소비 패턴이 바뀌었을 것이다. 나 역시 타인에게 건네는 한 마디 아니 한 단어에 따라, 나를 즐겁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게 될지 아니면 기억에서조차 잊혀 질지는 모두 '나에게' 달려 있음을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