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변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지금의 직장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어서다.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유머 인척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분들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고 무언가 잘못된 사람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도 절대 아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라떼는 말이야'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너무나 예전의 것이고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조직을 이끌어 가는 시스템의 빈틈이다. 자신의 경험에만 의존해서 그것도 한정적인 경험에 의존한 의사결정과 그렇게 오랜 세월 길들여진 조직의 관료주의는 장기적으로 전체 조직을 썩게 한다고 믿는다. 내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은 물질적 보상이 아니다. 한 달에 티도 안 날 만큼 조금 더 받는 급여 상승이 아니란 거다. 허울뿐인 직급의 변화와 시답지 않은 위로는 더더욱 아니다. (심지어 직급을 없애버리는 회사도 있거늘...)
현대의 경영 기법은 과거에 사람을 갈아 넣는 운영 방식과는 차원적으로 다르다.
무슨 말이고? 하니, 이전에 PJ 들은 규모면에서 지금의 1/10 수준 혹은 그보다 더 작은 수준이었다. 이는 복잡계의 영역보다는 선형계의 영역에 가까웠다. 즉 문제에 봉착하면 사람을 투입하면 해결되던 수준이었다. 그러나, PJ규모가 거대해지고 복잡해지면서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해결하는 방법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PJ를 이끌어가는 체계(시스템)가 온전히 받쳐주지 않으면, 영웅적 인물이 나타나더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성취로 이끌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성취가 왜 중요한지는 두말하면 입 아프다. 사람들은 저마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그걸로 SNS가 먹고사는 것 아닌가?) 그렇게 나는 믿는다. 어느 누구도 하찮은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고.
우리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나? 당신의 때와 나의 때는 다르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시작되면 공감은 사라진다. 나는 그 시간에 그 상황에 살지 않았고 당신 역시 나의 시간과 상황에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예전에 어려웠다느니 어땠냐느니 하는 건 공감? 전혀! 안된다. 오히려 상대만 자극할 뿐이다. 당신 역시 조선시대 양반댁 머슴살이가 어땠을지 공감하지 못하지 않는가? (지금의 직장생활과 당시의 머슴살이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지금의 현실은 한 직장에 붙어서 평생을 먹고사는 세상이 아니다. 지금의 직장에 오래 붙어있어야지!?라는 생각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당신이 아프거나 사정이 생기면 회사는 당신을 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 우리 회사는 안 그런데?라고? 축하한다. )
지금 근무하는 회사를 위해 엄청난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면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의 성장과 조직의 발전에 직결되지 않는 오로지 개인의 이익을 위한 이기적인 사내 정치행위라면, 당신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나쁜 놈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충성심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분노하지 말자. 우리는 오로지 개인의 역량 증대와 만족을 위해 일하자. 회사가 밥 먹여주지만 평생 먹여줄 순 없지 않겠나.
한 곳에 목매달려 평생을 눈과 귀와 입을 닫고 살 것인가 혹은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해두고 (Nomad) 살고 있느냐의 차이가 '라떼는 말이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힌트라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9Lf3HeoU75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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