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의도 vs 나의 이해
무언가 사려고 마음먹은 때, 특히 지름신께서 강림하시어 갖기를 소망할 때 발현되는 행동이 있다.
쇼윈도 앞을 서성이고, 인터넷에서 리뷰를 찾아보고, 장점들을 나열해 본다.
우리는 보이는 사진을 보고 그게 전부라고 착각한다. (특히 중고거래는 더욱 심하다.)
그런데 실제로 소유하게 되었을 때, 어떤가? 상상하던 것만큼 좋던가? 아니면 조금 부족하던가?
이와 같이 보이는 것과 실체가 다르다는 걸 조금 느껴본 적 없던가?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위와 같이 보이는 것과 실체에서 오는 괴리를 간혹? 아니 자주 느낀다.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이 안되거나, 타인의 충고나 설명이 나의 이해와 다른 경우에 나는 괴리감을 느낀다.
이런 얘기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단 한 번만 들어본 이는 없을 거다. 후배를 위해 아낌없는 조언을 하는 것인가? (정말?) 직장 내 우리는 협력하는 사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모두가 경쟁자다. 배울 땐 얌전히 한참 동안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후배도 어느 날 폭발하여 버럭 소리를 지를 날이 올지도 모른다. 과하면 부족한 것 만 못하지 않던가. 좋은 얘기도 반복되면 진부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조언이 정말 후배를 아껴서 해주는 말일 거라 믿고 싶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사람 역시 그런가? 는 또 다른 문제다. 후배들은 당신과 동등한 수준이 아니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한다고 말하지 마라. 당신도 어려움을 겪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당신 후배들도 역시 그런 시절을 더 어릴 적에 이미 겪고 여기까지 온 분들이다. 당신의 그 시절보다 훨씬 더 격렬한 경쟁을 뚫고 말이다. 아마도, 후배들 나이였을 때의 당신과 지금의 후배들과 경쟁한다고 생각해보라. 열에 아홉은 끽소리 못해보고 처절하게 짓밟힐 것이라 믿는다. 불과 몇 년 차이의 후배들만 봐도 엄청난 스펙과 기량을 선보이며 치고 올라오고 있지 않나.
그러니,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대사는 이제 잠시 목젖 뒤로 넣어두자. 그들은 선배를 필요할 때 찾아올 것이며, 진심으로 조언을 구할 것이다. 특히, 가족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회사에서 꺼내지 말자. 가족에게 조차 그런 조언 듣는걸 후배들은 꺼린다.
아무리 당신의 조언이 대단하고 멋지고 쿨할 지라도, 당신의 말에 당신이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잠깐이라도 보인다면(책임지는 모습을 100%로 매번 보여주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당신의 조언은 저 멀리서 들려와서 귀를 잠시 스치고 다시 저 멀리로 사라지는 메아리와 다를 바 없다.
실체를 보여주어라. '스킨 인 더 게임 - 나심 탈레브'도 말했다. 당신이 무얼 할 것인지 얘기하지 말고, 무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라고. 그러니 당신이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어라. 당신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어라. 그러면 후배는 당신을 따른다. 그런데 주변엔 책임? 이란 걸 지는 '현자'는 정말 드물다. 보고서에 서명을 하면 책임지는 것 아니냐고? 나는 서명이란 절차를 통해 책임을 나누고 나누어 미세 단위로 쪼개는 줄 알았다. 서명이 많아지면 책임이 커지는 게 아니라 작아지니까 말이다. 그리고 문제가 터지면 아무도 '금전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말 굉장하지?
'다 ~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를 '다~ 나를 위해' 행동하자. 당신의 수 천 마디 현자 같은 말보다. 당신이 보여주는 단 한 차례의 행동이 더 멋지다. 오직 당신 자신을 위해 이기적인 사람이 되자. 당신이 잘되는 길을 열어주어야 당신을 따르고 싶어 진다. 일에 얽매여 매일 인상을 쓰고 씩씩거리는 모습에 감명받고 닮고 싶어 하는 후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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