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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솔 Sep 12. 2022

아프리카에선 당연한 일

[프랑스 워홀 일기] 14. 내 워홀의 은인, 다나

"안녕."


다나는 앉자마자 내가 준비한 서류를 챡챡 넘겼다. 이건 필요없고, 이건 필요해. 부동산 중개업자처럼 심각한 얼굴로 서류를 넘기던 다나는 집이 없어 호텔에서 살고 있다는 나의 말을 듣고 말했다.


"우리 집에 와서 살아."


그 문장은 살래? 도 아니고 살아, 였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다.




다나는 리옹의 법대를 다니고 있는 학생으로 고향은 아프리카의 '니제르'였다.


"내가 니제르인(Nigerienne)이라고 하면 여기 사람들은 나이지리아인(Nigerianne)으로 알아들어. 정말 짜증나."


뜨끔했다. 나 역시 다나의 프로필에 적힌 Nigerien만 보고 다나가 나이지리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는 나이지리아도 있지만 니제르도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영어를 쓰지만 니제르에서는 프랑스어를 쓴다. 다나를 만나고 알게 된 사실이다.


어쨌거나 다나의 프로필에는 "I'm not looking for a boyfriend!"라고 쓰여 있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한국에서 어플로 간간이 대화를 이어나가다 리옹에서 드디어 만났다. 그리고 만난 지 정확히 한 시간 만에 다나는 자기 집으로의 '입주'를 제안한 것이다.


다나의 집 거실 한편에 마련된 나의 소중한 침대


처음 만난 친구에게, 아니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유대감이 생기기나 했을까? 아직 집을 구하지도 못한 외국인의 딱한 상황을 듣고 집을 내어주는 다나의 아량은 놀라웠다. 그러나 나에게도 다나는 처음 만난 외국인이었다. 그러니까 어떠한 걱정과 불안도 없이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 만난 날 같이 민화 전시회를 보러 갔고, 아시아마트에서 재료를 사다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으며, 한국 드라마를 보며 깔깔 웃었다. 다나는 보이프렌드를 찾지 않는 여자이고, 나보다 한국과 한국의 문화를 더 사랑했으며 무엇보다도 호텔비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나의 집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사실 나의 결정보다 중요한 건 다나의 어머니의 결정이었다. 어머니가 집에 와 계셔서 친구를 들여도 될지 먼저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다나는 걱정 말라고, 엄마는 당연히 허락하실 거라고 했지만 응답이 없어 초조한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텔을 체크아웃하기 전 날, 어머니의 허락을 받았다는 다나의 연락을 받았다. 알고 보니 다나의 어머니도 니제르에서 이제 막 도착하신 참이었다. 짐을 챙겨 다나의 집에 도착한 날, 신세를 지게 되어 정말 죄송하다고 말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Chez nous, en Afrique, c'est normal

아프리카에선 당연한 일이야.


그렇게 나는 다나의 거실 소파를 빌려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다나를 만난 지 3일 만이었다. 사는 내내 다나는 나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았으며, 그저 당연한 듯이 나는 다나 가족의 일부가 되었다.


니제르에서 건너온 메뚜기튀김과 다나가 만들어준 le poulet Yassa


우리는 아침이면 노래를 틀어놓고 다 같이 춤을 췄다. 천부적으로 내성적인 나는 극강의 외향성 인간인 다나가 엄마와 함께 춤추는 모습을 처음에는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에라 모르겠다, 나도 냅다 일어나 두 팔을 휘적대며 춤을 추기 시작했고 다나와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아침의 댄스는 그렇게 우리가 하루를 시작하는 특별한 일과가 되었다.


저녁에는 라면이며, 떡볶이, 부대찌개 등 매운맛 한식으로 식탁을 차렸다. 둘은 매운 음식 마니아였다. 다나의 엄마는 내가 끓인 육개장을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드셨고, 나는 다나가 끓인 니제르 맛이 반쯤 섞인 부대찌개를 먹고 감기가 나았다. 음식 솜씨가 좋은 다나는 종종 니제르 음식도 만들어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le poulet yassa(닭을 레몬소스에 재워 양파와 올리브를 넣고 버무린 요리)는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나면 다나의 어머니가 니제르에서 공수해온 매콤한 메뚜기튀김을 씹으며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나는 어느새 다나의 엄마를 Maman! 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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