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솔 Aug 03. 2022

소중한 풍경은 아끼지 않아도 돼

[프랑스 워홀 일기] 13. 프랑스에서 집 구하기 대장정

마트에서 상하기 일보 직전인 샌드위치를 사다 먹으며 하루 종일 부동산 사이트를 뒤졌다. 새로운 도시를 마주한 설렘은 잠시, 도무지 산책할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저 빨리, 빨리, 빨리 집을 구해 맘 편히 짐을 풀고 싶었다. 여기서 제대로 집을 구하기 전까지 나는 방랑객 신세일뿐이라고 생각했다. 체크아웃이 정해져 있는 임시거처를 벗어나 제대로 '정착'하는 날, 리옹은 그때 구경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나는 여행이 아닌 워홀을 하러 온 사람이니까, 일단 집만 구하면 시간은 널려 있을 터였다. 


1년 동안의 보금자리를 찾는 만큼 처음에는 까다로운 기준을 세우고 집을 골랐다.  하지만 점점 집을 '고르는' 것은 큰 사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프랑스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1)보증인이 있어야 하며 2)직장도 있어야 하고 3)월세를 지불할 계좌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계좌를 열기 위해서는 직장이 필요하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집이 필요하고,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직장이 필요하니 그야말로 악랄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점이 보이지 않는 게임과도 같았다.


리옹에는 우려했던 것처럼 부동산 매물이 거의 없었고 간신히 집주인과 연락이 닿아도 "외국인"이고 "직장을 구하는 중"이라고 하면 대부분 거절 의사를 밝혔다. 쉐어하우스식의 거주 형태인 꼴로까시옹colocation 사이트도 들락거려보았지만 신분이 불분명한 아시아인에게 마음을 여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모아둔 돈으로 3개월치 월세를 한번에 지불하겠다고 말해도 먹히지 않았다. 처음의 깐깐했던 기준은 간 데 없이 반지하방이라도 좋으니 제발 발 붙일 곳을 달라고 기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쌀밥은 부리또뿐


끝없는 퇴짜와 무응답에 지친 어느 날, 밥이 고팠다. 따끈따끈한 쌀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마트에서 떨이로 사오는 샌드위치는 마음까지 차오르는 허기를 달래주지 못했다. 하지만 집도 절도 없는 방랑객에게 한식당은 너무 비쌌다. 대신 호텔 근처에 부리또가게가 있었다. 토르티야에 밥과 채소를 넣어 둘둘 만 부리또는 패스트푸드지만 내가 구할 수 있는 가장 비슷한 쌀밥이었다.


부리또 한 입, 또 한 입. 고향의 맛은 아닐지라도 충분한 위로가 되는 맛이었다. 따뜻한 밥으로 배를 채우니 호텔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어물쩡어물쩡 호텔 앞 거리를 서성이다보니 길 끝으로 어렴풋이 강둑이 보였다. 아직 안되는데, 집 구하기 전까지 리옹은 구경도 말자고 다짐했는데, 그 강을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뭐에 씌었는지 발이 자꾸만 강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주한 풍경은,



반짝반짝. 반짝반짝이라는 말이 표현하는 그대로 반짝반짝 빛났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한 론 강은 '빛났다'. 그저 빛나고 있었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 아래 강가를 따라 늘어선 집들과 환하게 불을 밝힌 페리들. 강물엔 주홍빛 불빛이 아른거렸다. 호텔에서 걸어서 15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코앞에 이런 풍경을 두고 매일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었다니. 이 날, 나는 새롭게 다짐했다. 이렇게 예쁜 풍경이라면 아끼지 말고 하루라도 더 보자고. 아직 집도 뭣도 없지만 이 강만큼은 매일 보러 오자고. 그리고 그 후로 매일, 정말 매일 론강을 보러 갔다. 소중한 풍경은 아끼지 않아도 닳지 않으니까. 리옹의 풍경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여전히 집을 구하지 못한 채로 호텔 체크아웃을 앞둔 무렵 나는 내 인생의 은인 다나를 만나게 되었다.

이전 13화 파리 말고 리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