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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빈 Jul 29. 2020

내 손이 엄마 손을 닮아간다.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했는데.



서른을 앞둔 어느 날, 문득 바라본 내 손은 엄마의 손을 많이 닮았다.

핏줄이 튀어나온 모양이며, 손가락의 굵기, 검버섯은 아니지만 손등에 생긴 세월의 흔적들이 어쩐지 엄마 손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엄마, 전엔 몰랐는데 내 손이 점점 엄마 손을 닮아가는 것 같아. 뭔가 비슷해."

"당연하지. 원래 딸은 엄마 닮아. 몸도 다 나 닮는 거야. 그 피가 어디 가겠어?"



어릴 적부터 엄마는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했었다. 그건 뭘 뜻하는 걸까? 나는 어릴 때 눈뜨면 밥상이 다 차려져 있는 집안에서 자랐다. 밥을 안 먹고 학교에 간 날을 손에 꼽는다. 학교에 지각을 할지언정 아침밥은 꼭 먹어야 한다는 게 당연하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 엄마는 아빠가 밥돌이라 아침을 꼭 먹어야 한다고 했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아빠를 밥돌이, 나와 내 동생을 밥순이로 만든 건 엄마가 아니었을까.



아이 아침밥을 차려주면서 나는 이런 내 모습도 엄마를 닮아간다고 느꼈다. 많은 엄마들이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는다는 걸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직장에 다니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내 밥이 아닌 가족의 밥을 차린 다는 건 엄마로서 당연한 일이 아니라 사실은 아주 수고스럽고, 희생적인 일이었다는 걸 내 아이의 아침밥을 차려주며 느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공장에 나가 일을 했다. 때때로 뜨개질을 해서 내 옷을 만들어 입혀주고, 책을 대여해주는 책방에서 만화책을 수십 권씩 빌려다가 주말이면 그걸 옆에 끼고 단숨에 읽어냈다.


지금의 나도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이때껏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엄마가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봐와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엄마에게 뜨개질과 독서는 직장에서의 고단함과 홀로 아침밥을 차려내고 가족들을 위해 해낸 집안일에 대한 수고스러움을 덜어내는 일종의 탈출구였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아이들이 조금 자란 후에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애들 키우느라 바빠서 내 체력 충전하기에도 바빴지만, 아이들이 크고 스스로 놀기 시작할 때부터 내 안의 내적 공허함을 독서와 뜨개질로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맘때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엄마처럼 산다는 게 뭔지,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했던지 뭔지 말이다.




내 손이 엄마 손을 닮아간다.

내 삶도 엄마 삶을 닮아간다.


나도 내 딸에게 "엄마처럼 살지 말아라."라고 하겠지.

그래, 근데 그 피가 어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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