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노마드 생활기, 계절의 기억> 연재를 시작합니다.
인생의 계절이라는 표현을 나는 참 좋아한다.
사람의 인생이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유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이렇게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을 사계절에 비유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그보다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몇 번이고 거치는 사이클, 사계절의 시절들이다. 화려하게 빛나고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의 시절을 지나, 선선한 날씨의 창 밖을 보기만 해도 흐뭇한 자연 속을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맛이 있는 가을의 시절을 거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요하게 쉼을 청하는 겨울의 시절까지 보내면, 나는 준비가 되었다. 새로운 자양분을 내 속에 담고 새싹을 틔워내는 봄을 맞이할 준비가.
2014년 2월 4일, 나는 비행기를 타고 호주로 떠나 지금까지 정해진 거처 없이 떠돌며 일하고 여행하면서 대부분을 살았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까지는 진짜 여름을 좇으며 여름 여행지들을, 뜨거운 곳들을 찾았었다. 그저 웃기만 해도 반짝반짝하던 여름의 시절이었는데. 코로나 때를 기점으로 여름이 가을로 흐르더니 지난 2023년에는 겨울을 보내야겠다, 하고 필요성을 느껴 눈 덮인 추운 스위스로 갔다. 온전히 내 인생의 겨울이라는 쉼표의 재정비, 죽음, 비움의 시간을 보내보자 하고. 노마드의 생활에는 그런 매력이 있다. 어디를 갈까 생각할 때, 나의 인생의 계절에 맞춰간다. 나의 인생의 계절과 같은 선에 있는, 결이 맞는 장소를 선택해서 사는 것이 가능한 것. 내 마음과 의도를 날씨와 계절, 기후에 맞춰서 지내는 삶은, 그 마음과 의도에 맞는 행동을 하는 장벽을 많이 낮춰주기 때문에 실행에 옮기고자 하는 많은 것들이 쉬워진다.
<디지털노마드 생활기, 계절의 기억>은 나의 노마드 생활 십 년의 기간 중 2022년부터 2024년의 내용에 집중하여 나의 생활과 그 안에서의 인연들, 나의 깨달음과 배움, 변화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숙소를 호텔이나 에어비앤비가 아닌 한국에는 비교적 생소한 디지털노마드들을 위한 코리빙(Coliving), 그중에서도 커뮤니티를 강조하는 곳들을 위주로 거처를 정했기 때문에 내가 갔던 모든 곳에서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내가 그곳에 첫 번째로 온 한국인이기도 했고.
디지털노마드가 아직은 많지 않은 한국에 디지털노마드라는 생활양식을 더 알리고, 또 다양한 디지털노마드의 생활모습이 있지만 이런 모습도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하는 마음에, 누군가에게는 이런 모습이 인생의 다양성이라는 지평을 넓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가 찾은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꿈에 젖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시작의 끝에는 내 설렘을 나누고 싶다. 고민도 잠시 했다. 나의 글을 통해 닿기 시작한 한국에서의 인연들과 설렘을 나누고 싶은 것은 내 욕심일까, 한국 사회에 설렘이 더 필요해서 나를 통해 발현된 것일까. 요즘은 그 둘이 다른 것 같지 않다.
인생에는 분명 다양한 모습들이 있을 텐데, 그 다양한 모습들을 내가 나의 선택으로 또 타의에 의해 직접 보고 겪기 전에는 우리는 참 쉽게 일률적인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처럼 산다. 나의 글을 읽는 분들이 고개를 돌려 넓게 바라보고 본인의 답을 만들어 나가기를, 그 길에서 나는 너무나 자주 주운 재미와 행복을 독자들도 많이, 아주 많이 줍기를 바란다. 세상과 미래에 회의적이고 비관적이었던 내가 삶의 희망을 키우게 되었듯,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읽은 끝에 당신도 설레기를.
세르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내 인생의 계절에 맞게 떠나는 노마드 써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