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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나의 편, 항로를 재조정합니다

챕터 2. 2020년 3월 캐나다

by 노마드 써니

<챕터 2 미리보기>

- 뉴질랜드 워크비자 승인

- 코로나로 국경닫힘

- 뉴질랜드 입국 실패하고 돈만 오질라게 날림

- 이민을 완전히 내려놓기로 마음을 잡고, 이전에 내려놨던 디지털노마드를 다시 해보기로함

- 그렇게 하기로한 내 마음의 원동력은 무언가


***


온 우주는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아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준다. 이걸 사실 그 때는 그런가 아닌가 긴가민가 했지. 지금이야 진실인 것을 알지만서도.


“네? 비자 승인이 벌써 났어요?”


Screenshot 2025-03-07 at 6.38.42 PM.png 네, 진짜에요. 이렇게 내가 뉴질랜드에 정착하는 줄 알았는데 따흑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 내린 건 2020년 3월 초. 잠깐 한 달씩 들릴 호주나 하와이보다 캐나다에 비교적 길게 있을 예정이니까 캐나다 주소로 뉴질랜드 워킹비자 신청서를 작성했고, 비자 신청서 접수도 완료하였다.


캐나다에 있는 동안 나는 친구 집에서 지냈다. 나와 호주에서 만난 이 캐나다 친구는 학부 시절에 정치학을 공부했는데 개발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졸업한 대학교를 다시 들어갔다. 2014년에 만나서 꾸준히 연락을 이어오던 친구였지만 막상 만나니 할 얘기가 더 많았다. 친구 생일을 맞아 밴쿠버아일랜드에서 주말도 보내고 밴쿠버 주변 탐방도 하면서 처음 가본 캐나다를 즐겼다. 걱정할 게 뭐가 있겠나, 비자 나올 때까지 캐나다에서 탱자탱자 놀아야지. 뉴질랜드 가면 영주권을 받을 때까지 3년 이상을 거기에 있을 텐데.


변호사님은 요즘 적체된 신청서들이 많으니 승인까지 최대 6개월, 오래 걸릴 각오를 하라고 했는데, 예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접수한 지 3주도 채 안되어 뉴질랜드 비자가 승인이 된 것. 한국 주소를 넣었으면 아시아 오피스로 내 신청서가 가서 시간이 오래 걸렸을 텐데, 캐나다 주소로 넣어서 처리가 빨리 된 것 같다고 그러신다. 내 뉴질랜드 일자리를 주신 대표님께 연락을 드렸다.


“네, 대표님, 변호사님께 얘기 들으셨죠? 비행기표 바로 샀고요, 오클랜드에 있는 친구들한테 자가격리 세팅해 달라고 부탁도 해놨어요.”


캐나다에서 자급자족하는 농장들을 보고 싶어서 연락해 놓은 상태였는데, 모두 취소하고 부랴부랴 뉴질랜드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코로나는 이탈리아와 한국에서 막 심각해지기 시작하는 상태, 아직 나에게까지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어차피 난 캐나다고, 이제는 뉴질랜드로 갈 테니까. 에이, 뭘 크게 걱정을 하고 그래, 캐나다나 뉴질랜드나 청정구역이잖아.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비상이 걸렸다.


“뉴질랜드 국경을 곧 닫으며, 닫은 이후로는 시민권자, 영주권자만 입국 가능합니다.”


내가 비자 승인을 받은 지 24시간이 되지 않아 뉴질랜드 정부는 국경을 닫겠다고 발표했다. 아, 안돼. 비행기표를 변경하기 위해 알아보는데, 모든 비행 편이 다 매진 상태였다. 친구와 각자 핸드폰을 붙잡고 항공사와 여행사에 한 군데씩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니요, 없어요, 죄송합니다, 내가 전화 너머로 24시간 내내 들었던 말들.


“휘슬러하고 밴프 리조트에서 일하는 호주인, 키위(뉴질랜드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 걔네가 다 지금 리조트가 닫으니까 자기 나라 돌아가느라고 비행기표 자리가 없는 것 같아.”


하루를 꼬박 날려가며 내 옆에서 내 비행기표 변경을 하기 위해 애써준 친구가 위로를 건넸다. 내가 제시간에 뉴질랜드 국경을 통과할 가능성은 없었다. 끝이다. 내 정착 계획은 그렇게 물거품이 됐다.


뉴질랜드로 가는 표를 취소하고 캐나다에 머물 것인지, 한국에 돌아갈 것인지를 고민했다. 이미 부모님은 거의 매일같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계신 중이었다.


“딸, 네가 코로나가 걸리더라도 한국에서 걸려야 치료를 제대로 받지. 캐나다에서 너는 외국인인데, 비용도 문제고. 네가 아프면 누가 돌봐주니?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와.”


“전화를 왜 안 받니? 거기서도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딱 붙어있고 마스크 꼭 쓰고. 마스크는 충분히 있니?”


나는 가능하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뉴질랜드 정착이 코앞이었는데 이렇게 물거품이 된다고? 하지만 딱히 다른 수가 보이지도 않았다. 캐나다에서 숙소를 무료로 제공받는 대가로 몇 시간 일을 할 수 있는 곳들을 알아보는데 마음에 드는 곳이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갈 거야 이제 와서. 어쩌지 하고 어벌쩡하고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찾아봤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예매를 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비싼 편도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열한 시간 반짜리 이백만 원 값의 인천행.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웃겨서 웃은 게 아니지, 어이가 털려서 웃었다. 비싸긴 오질라게 비싸가지고 비행기 타려고 보니까 만석이어서 공기마저 꽉꽉 답답한 비행편. 그렇게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Screenshot 2025-03-07 at 6.34.56 PM.png 거짓말이 아니라니까요. 편도 200만원, 그걸 제가 해냈습니다 네네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휴식을 그리 길게 취하지 않았다. 이미 하고 있던 온라인으로 하던 일 외에 한국에서 사무실에 나가 하는 일을 구했고, 다른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더 구해서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다 합쳐서 일주일에 40시간 일하니까 정규직 가진 사람하고 똑같지 뭐. 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으쌰으쌰 돈을 벌자~~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가며, 코로나가 점점 더 심해지는 세상을 보고 나는 직감했다. 나는 뉴질랜드로 돌아가지 못하겠구나. 뉴질랜드에 계신 대표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캐나다에 있을 때 뉴질랜드로 제때에 맞춰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서 한국으로 간다고 말씀을 드렸었고, 대표님도 일단은 내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리겠다고 하셨는데. 그랬었는데. 그 공백기간이 길어져서, 여기서 사람을 구해야할 것 같다고. 그 분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원망하지도 않고. 그 분은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하셨지. 하지만 내 방향에 의구점은 생겼다.


호주 정착도, 뉴질랜드 정착도 모두 실패다. 아니 호주는 내가 준비를 철저히 못한 탓이 크다고 하자. 하지만 뉴질랜드는 비자 승인까지 다 됐는데 이런다고? 뉴질랜드 입국을 3일 남겨놓았는데 하루만에 국경을 닫아? 이 우주는 내가 정착하는 것을 막았다. 운명이라면 운명일 것이다. 이렇게 극적일 수가 없다. 그럼 눈을 돌리자. 방향을 바꿔야해. 계속해서 내가 이건 안 될 거라고, 이게 되겠냐고 했던 디지털노마드의 삶. 내가 코로나 전에 테스트해본 9개월의 디지털노마드 생활이 슬금슬금 마음에서 자리가 커진다. 하고싶어도 계속 접었었는데. 아 결국 이걸 선택하게 되나. 이러려고 날 막았었니 우주야?


내가 디지털노마드의 생활보다 뉴질랜드에서의 정착을 선택했던 데에는 나름의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번째는 기회. 이민은, 특히 기술이민은 나이가 들수록 불리하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까지가 가장 유리하고 나이가 들수록 경력은 쌓일 수 있지만 은퇴까지의 기간은 짧아지기 때문에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정부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을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호주, 뉴질랜드로의 이민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할 수 있을 때, 누가 나를 바로 고용한다고 할 때 해야지,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못할 수도 있잖아.


두번째는 함께할 친구들.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총 4년간의 시간을 보냈던 나는 이미 꽤 두터운 친구들이 있었는데, 온라인으로 일하는 내가 다시 돌아가서 시간을 보내니 나도 친구들과 같은 생활을 하고 싶어졌다.


기회에 대해서는, 나는 이게 scarcity mindset 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엄청나게 간절하지는 않지만, 내가 어느 정도 타협을 한 선에서는 원했던 것도 맞지만, 이게 정확히 내가 원하는 그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가까우니까, 때를 놓쳐서 이 것이 사라질까봐, 나중에는 안 될 것이라는, 기회의 창이 닫히고 있다는 두려움에서 선택한 것이라는 걸 늦게서야 깨달았다. 지금은 두려움으로 하는 선택은 하지 않는다.


예전에 호주, 뉴질랜드에 있을 적에는 친구들이나 나나 출퇴근을 했으니 비슷한 삶을 살았는데, 이제 나는 온라인으로 일하면서 출근을 따로 하지도 않고 하루 중에 일하고 싶은 시간대에 일을 하니 새로 만나는 친구들이나 기존의 친구들이나 내 생활에 대해서 설명을 계속해서 해야했다. 몇 번 정도는 괜찮았는데, 어느 순간에서부터는 피로감이 생기더라. 왜 나를 이렇게 계속해서 설명해야하지? 설명하지 않아도, 그대로 그냥 그렇구나 하고 나를 받아들일, 서로 다른 것이 당연한 사람들의 무리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선택의 시점을 되돌아보면서, 자주 하게 되는 생각은 내가 한 최종선택이 그 때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그 것이 자기합리화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한 게 맞니? 그런데 나는 이 최선이라고 하는 것의 기준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도통 모르겠다. 인생을 살면서 매순간 100을 써가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인데. 언제는 80을 써야 최선이고 언제는 60만 써도 최선인가? 항상 50 이상은 쓰지 않는 사람은 절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인가? 시드니에서 팟캐스트를 들으며 걷고 있었는데, 결국 사람은 매순간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것을 선택한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나의 결론도 그 끝에 다다랐다. 남들이 보기엔 오답이라 할지라도, 그 개인을 위해서는 이기적이고 쉬운 선택일지라도, 최선의 것에는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다. 그 당시에 나는 그 선택을 했다.


나처럼 계속 떠돌아다니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이런 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이 느낌이 뭔지 알텐데. 한국에서 지낸지 1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이 그림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2022년에는 다시 떠나야겠다. 이번에는 같은 방식으로 사는 친구들을 만나봐야겠어.


결국 정착하려고 했던 기회와 친구들이라는 이유들은, 나를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앞서 안되는 이유가 이제는 되는 이유가 된다. 우주가 나의 정착을 막아서는 지금, 디지털노마드는 기회이고, 나는 그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함께할 친구들을 찾아나서야지.


구글창을 열고 검색어를 입력했다.


Digital nomad community


검색결과를 하나씩 열어보다가 발견했다. Coliving. 디지털노마드들이 함께 머물면서 삶을 교류하는 곳들. 찾았다. 여기다. 내가 갈 곳.












<챕터 2에서 안 쓴 에피소드들>

- 밴쿠버아일랜드 탐방기

- 생각해보니 아까운 2020년 2월 하와이에서의 한 달 간 생활

- 일단 하와이 입국 때 처음으로 미국 이미그레이션 심사에서 3시간 질문받음 와 이거 할 말 많은데

- 그전에 2020년 1월에 호주 멜번에서도 재밌었는데 이것도 아깝네

- 하지만 전부다 디지털노마드 1.0 시절이라 이번에는 다 뺐습니다 ...

- 저 멜번에서 살았던 거 두번째인데 호주오픈도 직관했고요, 무료콘서트랑 문화행사들도 많이 다녔어요

- 한국에서 2년간 지낸 이야기들도

- 폴댄스 3급따고

- 한달에 500만원씩 저축하고

- 마일리지 비행기표 관련된 내용이나

- 해외에서 사용하기 좋은 신용카드에 대한 것들도 할 얘기가 많은데 글의 흐름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히히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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