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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식 Oct 10. 2018

첫 번째 #2

몽타주가 어떤 은유라면, 그것은 어떤 문장이 아니라

 일찍이 '~은/는 ~(이)다' 형태의 모든 문장들을 나는 은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 두 개의 조사는 어떤 것을 정의하거나 두 개 이상의 것을 동일시하기 위한 것이 될 수 없고 그저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것들이 서로 은유되도록 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한 생각은 나의 개인적인 윤리 이념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사물이나 개념들은 항상 그렇게 대담하게 정의되거나 동일시되는 무모한 힘에 의해서만 서로 연결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오로지 그렇게 겨우 은유될 때에만 서로를 부족하게 정의하고 동일시할 수 있음으로, 그러한 생각 자체가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니까, '그러한 형태의 문장은 모두 은유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또 하나의 은유이므로, 그러한 생각은 바로 그 생각에 의해 병렬된다. 이러한 점이 바로 저 생각을 참으로서 증명되어야 하는 명제적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을까? 명제가 아니라 은유라는 점이 바로 저러한 문장들을 스스로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A는 A다'라고 말하는 동일률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견지하고자 했다. "동일률도 하나의 은유이다." 자기를 자기 자신으로 은유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면," 이렇게 뒤집어서 다시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은유는 사실 자기 동일성을 향한 노력일 뿐일까?" 그러니까, 어쩌면 모든 은유가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고자 하는 노력인 것일까? 그런데, 이러한 질문은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한국어가 아니라 바로 영화에게, 몽타주에게 저 질문을 넘겼다. "몽타주가 어떤 은유라면, 그것은 어떤 문장이 아니라" "그저 주어를 수집하는 것일 뿐일까?" 말이 아니라 영화에게 그 질문을 넘긴다는 것은 은유를 언어체계에 종속된 상태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몽타주는 은유다'라고 말하는 것은 재차 또 하나의 은유가 될 뿐이다. 그리고 <나무>의 몽타주는 은유적인 의미로 하나의 언어 실험이 된다.

 하나의 컷과 다른 하나의 컷 사이에 "은/는" 이라는 텍스트 컷을 삽입하면, 두 개의 컷은 어떤 문장처럼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몽타주에게는 부조리가 된다. 왜냐하면 이미지들은 서로 평평할 텐데, 동등한 자격의 그 사이 컷, 즉 "은/는" 이라는 텍스트가 있는 컷이 한국어에서의 조사의 자격으로 떨어지는 착시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조리는 회복되는데, 그것은 바로 그 "은/는" 의 텍스트 컷만을 반복시켜 "(이)다" 의 텍스트의 등장을, 즉 문장의 종결을 끝없이 지연시키면서이다. 그것은 하나하나의 컷을 마치 조사화시킴으로써 몽타주에서 조사 혹은 조사와도 같은 문법 체계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몽타주란 그저 풍경 하나를 바라보고 그다음 풍경을 다시 바라보면서 그것들을 침묵에 의해 은유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은/는" 같은 텍스트 컷까지도 그 풍경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자신의 대상을 주어를 늘려가듯 수집 해나가지만 결코 문장으로서 종결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통해서. 그러니까 내 영화의 몽타주는 '의미' 갖기를 미루는 형태로만 나아간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가?


 다시 몽타주가 떠안은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은유는 사실 자기 동일성을 향한 노력일 뿐일까?" 몽타주는 간단히 물음표만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그 질문을 대답으로 바꿔 돌려준다. 영화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몽타주에 의지한다. 나에게 영화는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일종의 명상을 위한 노력이다. 수집된 주어들만의 나열 끝에서, 영화는 '자기'를 찾고자 한다. 그 말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려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말은 자신이 본 것들과 그 풍경을 통한 사유를 자기 자신으로 삼는다는, 은유한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몽타주가 어떤 은유”라는 이념이라면, 영화가 이러한 몽타주-이념에 의해 자기 자신에 대한 명상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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