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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식 Jul 23. 2018

"책임을 져야 한다"

 좋아하던 정치인이 세상을 떠났다. 손석희가 <100분 토론>을 진행하던 시절부터, 그가 <100분 토론>과 같은 토론 프로그램에 나오면 꼭 챙겨보려고 노력했다. TV토론에 나와, 건방지고 비겁하며 용기 없는, 사회자 기준으로 오른쪽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화려한 언변과 튼튼한 논리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 존재에 대한 존엄성을 바탕으로 한 무거운 가치관으로 박살 내던 사람. 그 가치를 위해 자신의 온 삶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 이제는 그 자신의 어려운 길을 끝마친 사람.


 몇 주 전 의혹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리고 특검이 말하기를 신빙성 있고 일관된 진술과 증거들이 있다고 하더라는 기사들을 봤을 때, 불안하기는 했지만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그 어느 누구도 죄를 저질렀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죗값을 달게 받고 다른 정치인들처럼 그 경로가 조금은 바뀌더라도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극구 부인하던 그의 모습에 안심하기도 했었다. 결국에는 그는 스스로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한 것 같으며, 그런 죄책감에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지 않아도 됐었을 것 같은데. 한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몇 천만 개가 모인다고 한들 한 사람을 죽일 만한 것은 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아마도 그는 그 자신에 대해 스스로 실망했을 것 같다. 그렇게 그를 이해하고 싶다. 그가 그 자신한테 그 정도로 실망했었다면 그렇게 삶을 끝낼 수도 있을 것이라 이해해보려 한다.


 가난한 진보정치를 이끄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것이었나 보다. 가난하고 약할수록 청렴을 강요받는 것은 정치인의 경우에는 더 심한 것이었다. 그것이 비순수한 목적으로 정치권에 손을 뻗은 이들에게는 약점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라고 말했다.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모든 죄를 우리가 애도라는 이름으로 빼앗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노회찬의 죽음은 한국 진보정치의 지표이다. 삶은 완벽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그러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진보정치의 길은 더더욱 험난하다.


 이제 "차라리 뻔뻔하게 죗값 치르고 계속 정치를 해나갈 수는 없었나?" 하는 뒤늦은 원망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해야 할 것이다.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정치인들은 모두 부패하다"거나, "역시 진보도 똑같이 더럽네"라고 비약하는 이들에 맞서, 진보진영은 차라리 뻔뻔하게 진보의 가치를 더욱 무겁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를 제대로 공부한 적도, 그를 열렬히 좋아한 적도 없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워왔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훌륭한 정치인은 죽고서 가치를 남긴다. 그가 훌륭하고 멋진 정치인이자 인간이었음은 분명하지만, 그가 남긴 것 위에 더 올려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다. 여전히 척박한 땅에 설 많은 (예비)진보정치인들이 이 일을 계기로 용기를 잃기보다는 차라리 독기를 품기를 바란다. 

 그가 유서에 적은 문장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책임을 져야 한다."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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