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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식 Dec 10. 2018

세 번째 #4

부자유는 불가능에 고개를 돌리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어떤 면에서는 배우들에게 자기 자신의 삶을 직접 연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편집과 연출까지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 했다. 물론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게 말이다.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라는 애매한 '정도'는 중요했다. 왜냐하면 첫째로 우리 삶은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며, 둘째로 영화 또는 연기가 어떤 자유로움을 위한 것이라면 그 전제로 일단 우리가 자유롭지 않음을 인정해야만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자유롭지 않았냐 하면 들 수 있는 예가 너무나 많다. 다큐멘터리라는 방식이 먼저 그러한데, 카메라 앞에서 무엇이 일어날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뿐만 아니라 그보다는 우리가 우리의 삶 중의 어디 그리고 언제를 바라보아야 할지 알고 있다고 절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단순하게 이 영화에 한 명 "한 명의 사람이며, 자기만의 시간을, 자기만의 속도를 가지고" 있는 주연 배우 네 명이 있다는 것, 즉 네 개의 삶이 있다는 것, 게다가 연출까지 합하여 다섯 명이 그 삶들에 관여하거나 그 삶들을 몽타주 할 것이라는 것, 그러니까 다섯 방식의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한두 시간 동안의 영화-생각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 부자유를 더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방식 자체, 네 명의 배우에게 자신의 삶을 직접 다룰 수 있도록, 연기할 수 있도록 하는 어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면서도 너무 눈 앞이 깜깜할 자유를 준 것이 바로 그들을 자유롭지 않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무슨 말인지 더 자세히 말해야 하겠지만 아직은 충분히 말하기에는 이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너무나 확실하고 압도적인 부자유를 영화 제작 초기였던 그때는 우리 모두 충분히 알고 있지 못했었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내가 첫 촬영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어떤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였다는 것이다. "네 배우의 일상을 찍거나 그 일상을 토대로 찍는다는 것은, 그들이 이 영화와 그 촬영에 영향을 받아 그들의 일상을 바꿔나가거나 변화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쨌거나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현실을 우리가 영화로 마주할 것인지가 중요할 것"이었다.


 영화를 시작하는 첫 번째 씬을 촬영하고서, 배우들은 그 촬영으로 인해 만들어진 연기 영상으로 좀비 드라마 오디션을 지원했다. 첫 촬영은 시작된 상태였지만, 회의를 통하여 이야기를 나눈 후 더 구체적인 방향과 내용에 대해 함께 정할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얼른 첫 회의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부분 또한 우리에게 더해진 부자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 네 명의 연극배우, 네 명의 각기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이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첫 회의는 첫 촬영 후 약 3주 후에서야 할 수 있게 지연됐었다. 그 시간은 나에게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도록 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많은 것을 각오하도록 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 각오들은 너무 많은 것을 미리 예상하려 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배우들에게서 어떤 자유를, 혹은 어떤 부자유를 너무 많이 뺏지 않기 위해서,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었던 나의 연출자임을 소멸시키려 하기 위해서 나는 나의 능력보다는 무능력에 더 기대려 했고 나의 영향을 연장시키려 하기보다는 제한시키려고 했다. "내가 배우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질문뿐"이었다. "“이번주에는 무엇을 했나, 거기에 자주 가는가, 그때 날씨는 어땠나, 무슨 대화를 했나, 무엇이 기억이 나는가, 어디에 앉아 있었나 등등.”" "내가 할 수밖에 없는 것들에 머묾으로써, 나의 한계에 머묾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조금 더 지속시킴으로써, 그러니까 이동이나 전개를 지연시킴으로써만 볼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영화를 시작하면서 무언가를 예상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었기에, 나는 내 가능한 예상들, 아니 차라리 첫 회의에서 내가 해야 할, 그리고 네 배우 모두 스스로에게 해야 할 가능한 모든 질문들에 대한 영화적 태도를 각오해야만 했고, 바로 그 각오가 영화 제작 기간 내내 가장 유지하기 힘들었을 각오이자 그럼에도 지켜내야 했을 가장 중요한 가치들 중 하나였다. "이러한 영화는, 영화란 무엇인가, 현실이란 무엇인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살아간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연기한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즉 배우로서 살려고 한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여자로서 산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밖의 가능한 질문들, 실패한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포기한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내가 나를 짓누른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무언가를 버린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들을 모두 동일하게, 이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그 질문들을 모두 동일한 거리에 있도록 위치하여 바라본다는 것, 그것들을 동일한 깊이에서 명상해내기 위한 영화가 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 질문들은 바로 그때 당시 나의 평소의 질문과 고민들이기도 했다. 나는 영화 만들기에 있어서 바로 연출자인 나에게 더 많은 부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네 명의 배우들의 삶을 다루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들의 것을 나의 것과 동일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영화-사유할 수 있을지 알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영화적으로 나 스스로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 했다. 본다는 것은 잠시 정지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부자유는 불가능에 고개를 돌리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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