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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식 Dec 25. 2018

세 번째 #6

이야기는 존재하는가?

 돌이켜볼수록, 이 영화에게 회의는 상당히 중요한 시간이었다. 회의를 한다는 건 단순히 의견을 모으고 어떤 결정을 이루는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줄거리 자체가 되어버렸다. 물론, 이 영화를 위한 회의 모습을 단 몇 초라도 영화에서 보여주지는 않았다. 다만, 이 영화의 장면들이 2~3주에 한 번 정도 있었던 회의를 통해 결정된 후 만들어졌다는 것만이 텍스트로 설명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회의 장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지는 않고 다만 우리의 결정에 의해서 촬영된 장면들만을 보여주면서, 그 장면들의 배경에는 회의를 통해 직접 결정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그러니까 관객들이 현재 보고 있는 장면과 그 안에서의 배우들의 행동에 앞서 어떤 장면을 촬영할지를 미리 예상하고 결정하는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관객들이 생각할 수 있게끔 하기에는 그 방법이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관객들에게 생각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영화로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화적 보기의 의미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이 배우들의 이 영화에서의 이러한 연기들이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일상 속에서의 행위들 중 어떤 것들을 선별하여 연기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영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회의에서 배우들이 직접 그들의 일상을 봐야만 했다. 그것이 잘 되었는지에 대해서 나는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회의적이기도 했고 이내 다시 우리가 봤던 것들이 우리의 삶의 한계이자 삶 그 자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말은 영화(만들기)로 삶을 확장시키거나 삶의 방향을 돌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했었던 회의들을 회고하는 것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는 일단 이 영화의 예상 가능한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했다. 그것은 네 명의 배우들의 공통된 배경을 찾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여성이고, 배우이며, 혹은 배우로 살고자 하며, 하지만 매체에 출연하거나 큰 공연을 자주 하지는 못하고 있는 배우라는 사실 같은 것들이었다. 각자 연기라는 것을 하고자 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말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하고자 하는 것은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 것이지만, 기회가 자주 오는 것이 아니어서 삶을 연명하기 위해 카페 아르바이트 같이 급여가 낮고 연기와 크게 상관없는 경제활동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되는 점, 처음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와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지금의 삶에 무뎌지는 점, 결국 이런 식으로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삶이 계속될 것이라는 것에 대한 걱정, 서른 살까지만 해보라고 했던 엄마의 말과 같은 가족으로부터의 압박, 내가 정말로 연기에 대해 간절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의문, 현실적인 삶 속에서의 결혼 같은 문제에 대한 친인척들의 질문들, 연극 전공자로서 스스로 느끼는 부족함 등과 같은 것들. 사실 이 네 명의 배우들이 처한 상황이라던가 그들의 지나온 삶 같은 것들이 그것 자체로 극적이거나 경이로운 것들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그들이 갖고 있던 그러한 고민들은 일반적인 방송 다큐멘터리 혹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그렇게 하는 것처럼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간다면 충분히 이야기화할 수는 있는 것들이기는 했다. 하지만 배우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는 처음부터 그렇게 하는 것에 큰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일단, 첫째로 나는 내 영화가 다른 대부분의 영화들과 최대한 닮지 않기를 바랐다. 특히 이야기하는 방법에 있어서 말이다. 나한테 영화로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고민은 이야기란 무엇인가라는 고민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나는 매 영화마다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야기는 존재하는가? 영화는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어디에든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거나 어디에만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답을 상정하고서는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아니 그런데, 나는 이 영화의 카메라가 배우들의 사적인 배경을 직접 묻고 목격하러 다니는 카메라가 되기를 먼저 원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배우들이 스스로 그러한 장면들을 원한다면 기꺼이 그 뜻에 따를 생각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둘째로, 배우들이 이 영화의 카메라가 자신의 삶에 너무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경계했었다. 가령 회의 때는 가족에 대한 얘기를 특히 더 많이 했었던 지혜와 문영 배우는 오히려 그 부분을 영화에 담는 것에 대해서는 더 완강히 거부했다. 사실 나는 이들의 사적인 삶에 이 영화가 더 침투하기 위해서 이 부분에 있어서 배우들을 더 설득했어야 했는지에 대해 편집을 하면서도 많은 고민과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제작 초기에는 단순히 '사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다르게 해석하는 것으로 그 고민을 넘기거나 혹은 미뤘던 것 같다.

 나는 좀비 연기 장면 이후의 첫 촬영에서는 배우들 각자의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시간들을 담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일종의 촬영 연습이 될 수도 있었을 거니와, 익숙하고 일상적인 반복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지를 탐구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었다. 두 번째 회의에서 다시, 나는 배우들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언제이고 어디서며 무엇을 하는지를 물었고, 바로 그 장면을 촬영하고자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나와 카메라가 개입되어야 했기에 혼자가 아니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모순이 생길 때, 촬영할 만한 가치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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