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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식 Jan 02. 2019

세 번째 #7

비밀이 깊숙한 밑으로 숨는다면, 상상은 아득한 위로 떠오를 것이었다.

 첫 회의에서, 나는 배우들에게 각자의 아주 작은 습관들을 스스로 찾아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이라는 무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의, 혹은 자기 자신도 모를 어떤 작고 사소한 습관이 반복되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회의를 준비하면서, 나는 배우들이 그것을 찾더라도 나한테 알려줘서는 안 된다고 고쳐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회의에서 그것들을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자기 자신도 모를 사소한 습관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금기일 테니까, 찾아서도 안 될 것이었지만, 나는 찾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고 다만 나한테만 말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을 정말로 찾고자 하는 그들 각자의 내적 탐색의 노력이 필요했거나 아니면 내 카메라 앞에서 익숙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행위들을 하면서 자신의 비밀스러운 습관들을 어렴풋이나마 신경 쓰도록 하는 어떤 작은 거슬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설령 그들이 자신의 수많은 사소한 습관들 중 몇 개를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다른 더 작은 많은 습관들이 그들의 존재를 여전히 지켜내거나 새로운 습관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렇게 찾아낸 자기만의 비밀들을 스스로 간직하고 있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들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어떤 완고함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고, 이 영화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더라도, 나는 배우인 그들이 자기 자신을 연기해내야만 비로소 카메라 앞에서 각자의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의무를 직접 그들에게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가 완성이 될 때쯤, 혹은 완성이 되고 나서, 혹은 완성 몇 년 후에는 그들이 직접 그런 생각에 우연히 다다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어떤 배우가 그것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이 영화는 완성되는 것이기도 했다. 어쨌든 내가 마음을 고쳐 먹은 이유는,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내 몫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이 영화의 편집이 끝날 때까지도 그들 각자의 아주 사소한 습관의 반복을 발견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나는 내가 그것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는지 아니면 실패했는지 모르겠다. 그것의 실패도 내 몫이라는 것을 나는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와 더불어, 나는 다른 곳에서도 나의 태도의 방향을 반대로 바꿔야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배우들에게 그들의 지난 일주일에 대해서 질문하기 전에 나의 지난 일주일에 대해서 먼저 말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하기보다는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말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각자의 비밀을 찾는 것이든 지난 일주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든 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이든, 그것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상상력일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들, 아주 작은 반복들, 아주 작은 몸짓들, 아주 작은 표정들, 아주 작은 감정들, 그것들 서로 간의 아주 작은 차이들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상상력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만 한다. 무엇을 촬영할지를 탐색하기 위한 회의들에서, 배우들은 그들의 삶에 대한 그들의 상상을 말했다고 말이다. 그들이 말했던 것들이 진실이었는지 거짓이었는지, 그들이 솔직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나는 알 수 없고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들은 모두 그들의 상상일 뿐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비밀이 깊숙한 밑으로 숨는다면, 상상은 아득한 위로 떠오를 것이었다. 그 사이에서 인간은 길을 잃기만 하면 됐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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