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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식 Feb 12. 2019

세 번째 #10

최대한 아주 멀리까지 다녀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회의만을 통해서라기보다는 배우들 각자의 혼자 있는 장면의 촬영을 통해서 이 영화의 과제가 무엇인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노주연 배우와 유유림 배우는 카메라가 촬영을 하고 있으니 평소에 하던 것보다 더 집중해서 청소를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앵글을 바꿔가며, 배우의 동작을 이어가기 위해 가끔씩 방금 했던 동작을 한 번 더 반복하고 청소를 계속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물론, 배우들은 사전에 미리 청소를 해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제로 자신의 집과 방을 청소할 것이었고 나는 그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었기에 청소 거리를 남겨둬야 했기 때문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청소하는 장면을 얻기 위한 촬영이 아니라 우리는 실제로 청소했고 그것을 카메라로 기록한 것이다. 그건 그것이 연기가 아니었다고 혹은 그것이 연기였다고 말하기 힘든 어떤 하나의 행위였다. 집을 나서서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가려했던 고지혜 배우의 촬영에는 더 많은 테이크가 필요했다. 변수가 많은 야외 장면에서 2개 이상의 컷들을 하나의 씬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테이크들을 확보해둬야 했기에, 배우가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게 됐다. 따라서 평소보다 헬스장에 가는 길은 훨씬 더 길어지게 되었다. 이 말은 매력적이다. 시간이 오래 걸릴 때 우리는 마치 더 긴 거리를 이동한 것처럼 말하곤 한다. 고지혜 배우는 그러한 상황과 그러한 연기가 꽤 어색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게 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는 것 자체가 어색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집 앞 공원에서 촬영한 장문영 배우의 경우에는 아주 큰 변수가 등장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촬영을 서둘러야 했다. 비가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 우산을 쓰고 공원을 떠나는 장면을 얼른 구성해서 찍었다. 장문영 배우는 평소보다, 그리고 생각보다 일찍 집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서 어떤 주제와 어떤 질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배우는 그 자신을 연기하는가? 그 방법에 대해서, 아니면 연기해야 할 그 자신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더 나아가, 우리는 지금 어떤 질문을 하지 못하고 있는가를 이 영화를 통해서 과연 알 수 있을까? 우리가 말할 수 없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연기와 영화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인가?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는 것은 과연 그 정도의 자기 자신으로만 머무는 것일까?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것으로 앞으로 어떤 고민을 해야 할지 알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와 방법이 필요한가? 집중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집중할 수 있는가? 배우들 한 명씩의 촬영을 모두 마치고 나는 이 영화의 제작 기간이 길어질 것을 예감했다. 이 영화가 각 배우들의 시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며 그들의 삶 속에서 무엇이 반복되고 무엇이 차이 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가 돌아올 곳을 향해 어떤 기대들로부터 최대한 아주 멀리까지 다녀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이들의 삶에 어떤 새로운 계기를 부여하기를 한편으로는 기대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평소에는 하기 어려웠던 대화를 가족과 하거나, 아니면 여성 인권 이슈와 관련한 어떤 사회적 활동을 한다든지 말이다.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어떤 정치적인 행동을 위한, 진정성 있는 동기가 아니더라도 아주 피상적인 핑계나 구실의 역할로, 배우들이, 그러니까 평소에도 스스로를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던 배우들이, 이 영화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내가 억지로 그들을 어떤 목적과 방향으로, 어떤 서사로 이끌 수 있는 종류의 영화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나의 기대뿐만 아니라, 가상의 보이지 않는 관객들의 기대와 이 배우들의 일상적 행위들 사이의 긴장이 있을 것이었거나, 보이지 않는 관객들이 기대하는 서사와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우리들의 불능 또는 우리들 삶의 극적, 정치적 한계 사이의 반성이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이들의 반복되는 일상들을 촬영해나가기로 했다. 그것은 무엇이 일상인가와 일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포함하는 계획이었다. 그다음 회의에서는 촬영했던 장면들을 다 같이 보고서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매 회의마다 지난 몇 주간의 각자의 고민들을 말하고 다가올 몇 주간의 시간을 예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극단에 소속되어 있는 네 배우들은 곧 어떤 연극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나는 공동창작으로 제작되는 그 연극의 특성상 그 연극을 위한 회의에서 배우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많이 말할 것이라 생각해서 그 장면들을 주기적으로 계속해서 촬영하고자 했고, 극단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배우들에게 조금 더 적극적이고 비판적으로 이 영화 작업에 임해주기를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아직은 하지 못하는 고민들과 관련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고민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이 영화에게 중요했을 것이었다. 그때는 그러한 사실을 완전히 인식하지, 아니 예상하지 못했었지만, 그래도 어떤 고민을 쉽게 생각하려고, 쉬운 것으로, 간단한 것으로 만들려고 영화나 예술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었다. 예술은 어떤 것을 단순하게 혹은 쉽게 혹은 명확하게 혹은 가시적인 것으로 바라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야 할 것이었다. 어떤 예술을 해야 한다면, 다른 어떤 것들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까다롭고 불명확하고 비가시적인 문제들을 고민하기 위해 예술을 해야만 할 것이었다. 어려운 고민을 어렵게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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