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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식 Feb 20. 2019

세 번째 #11

다큐멘터리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필요로 했다

 그쯤에서, 배우들이 하고 있었을 생각들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도 알고 싶지만, 이미 그들을 촬영하는 것이 어떤 종류의 질문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질문하지 않았고 또 지금도 하지 않고 있다. 대신에 나는 글쓰기라는 작업, 글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형태를 통하여 내가 배우들에 대해 그리고 배우들이 나에 대해 조금은 예감할 수 있도록 하고자 클라우드를 활용했다. 나는 그곳에 이 영화에 대한 나의 모든 생각들을 기록하려고 했고, 배우들에게는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포함한 자신의 일상에 대한 생각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도록 했다. 그것은 내가 그들에게서 이 영화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었으며, 또 내가 이 영화를 구성하고자 하는 어떤 방향성을 그들이 제지하거나 방해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그럴수록 이 영화는 더욱 느려지며 더욱 헤맬 것이며 더욱 복잡하고 긴 경로를 그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 바람만큼 많은 글들이 배우들에 의해 쓰이진 못했고, 나의 생각들에 대한 어떤 반작용이나 반응이 직접적으로 표현된 글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 돌이켜보면 바로 그러한 상황 자체가 나의 영화 구성 의도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결과적으로는 내가 이끌고자 하는 방향성을 제지하거나 방해하는 요인이었다.


 나한테 그 질문이 어려운 것이었듯, 그들에게도 이 영화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어떤 장면들과 이야기로 구성할지는 어려운 고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이 영화에 대한 어떤 특별한 욕심이나 기대, 구상이 별로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만 받아들이기에는 그들이 나의 영화 제작 제안에 응한 것이 의문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나의 제안서를 다시 읽어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제안서에는 어떤 서사에 대한 약속도 없었던 것이다. 그 제안서를 충실히 따른다면, 이 영화에는 어떤 극적 서사 없이 그저 움직임에 대한 감상, 움직임의 수행으로 이루어진 삶에 대한 감상, 그리고 우리들 각자의 어떤 감상법만이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들에게 단순한 한 번의 시도이자 실패 혹은 포기에 그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마음에 들었고, 그런 태도로 우리들의 삶과 이 영화 자체를 바라보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에서의 대화와 클라우드에서의 일기를 통해, 그들은 이 영화에 대한 구상 대신에, 각자의 무겁지만 다소 추상적인, 혹은 무겁지 않으면서 중요한,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표현하기 어려운 고민들을 공유했다. 그것들을 무리하게 요약하자면 배우로서의 삶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표현하기 힘든 주제일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극적 서사를 통해서는 표현하기 불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서사라는 것은 확실해지기 너무 쉬운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어렵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영화에 어떤 목표가 생긴 것이었는데, 그것들 중 하나는 극적 서사의 흐름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확실함을 계속 안고 가는 제작 방식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들 모두의 어떤 영화적 기대를 최대한 있는 힘껏 배반해보고자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한 목표는 다큐멘터리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필요로 했다. 다큐멘터리라는 방식은 우리를 자꾸 좌절시키려 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우리를 자꾸 좌절시키려 하는 것을 일단 바라보고자 하는 태도 자체였다. 이 영화에서는, 그들이 수행하는 움직임과 고민들로 이루어진 그들의 일상 그 자체가 그 자신들을 좌절시키려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촬영 방식을 유지하고자 했고, 그것은 이 영화를 구성할 새로운 변화들을 기다리는 방법이기도 했다. 다음 회의까지의 일상을 예상하고, 이전까지를 기억하며,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보고, 촬영할 수 있는 장면들을 촬영하기, 촬영을 한 후 그것에 대해 다시 말해보기, 다음 장면을 생각하기,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겪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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