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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식 Apr 18. 2019

세 번째 #16

공연은 무사히 마쳤다

 <움직이는 사람들> 공연은 무사히 마쳤다. 공연 일주일 전까지 명확한 대본이 나오지 않아 배우들이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공연은 완성도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몇몇 배우들은 헛헛함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공연 준비 기간에 배우들에게 공연에 대한 자신만의 회의감 혹은 고민 등을 기록해두라고 일러뒀는데, 그럴 여유가 있었던 배우는 없었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처음 갖는 회의에서, 나는 배우들에게 찍어오던 방식의 일상 장면들은 계속 촬영하면서, 공연이 파투나는 장면을 대본화하여 만들어서 찍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그 두 가지 상반되어 보이는 방법들은, 사실 방법론적으로는 전혀 차이가 없는 것들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두 가지 모두 우리의 일상과 삶에 대한 우리의 기억 혹은 상상을 인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공연 후의 감정들, 그리고 공연 당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서로 나누기도 했고, 그것들을 토대로 파투나는 장면에 대해 상상해보기도 했으며, 공연 준비 동안의 더 깊은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연출자인 나한테만 공유하기도 했다. 공연이 파투나는 상황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조금씩 달랐고, 그 당시 실제 느꼈었던 감정과 생각들도 조금씩 달랐다. 그것들은 대부분 각자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들이었지만 바로 그들의 성격을 더욱 구성하는 것들이기도 했다. 나는 최대한 그것들을 토대로 대본을 쓰려고 하면서도 배우들이 회고하면서 작성한 가정법들 중 몇 개는 짓궂게 직설법으로 고쳐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정말 모두 그들의 지난 감정과 생각들을 실제로 반영하는 것들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그것은 상관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우리의 그 작업은 감정과 생각들을 구성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해, 내가 작성한 대본은 파투가 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었다. 그것은 완성된 공연이라는 현실에 대한 미묘하고도 교묘한 쿨한 패러디임과 동시에, 영화 초중반에 자막으로 설명되었던, 무엇을 찍을지 정한 후 촬영을 한다는 우리의 방법론에 근거하여, 이런 장면을 만들어서 찍었다는 다큐멘터리 기록이면서 그 이유 또한 묻게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또한, 그것은 우리의 결정과 생각과 감정과 기억과 상상 등 그 자체들에 대한 패러디임과 동시에, 우리의 소위 다큐멘터리적 방법론이라는 것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했다. 이 영화의 모든 것들은 물론 우리 삶의 그 어떤 것들도 무엇이 실제라고 믿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에, 이제 이러한 바탕은 이 영화에 대해 앞으로 뿐만 아니라 소급적으로도, 기록만을 위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구성적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라는 '행위'를 상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들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배우들의 '연기'라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연기' 행위뿐만 아니라 '연기'라는 것에 대한 탐구와 사고.

 공연이 파투가 난 이후든 아니면 성공적으로 공연된 이후든, 배우들은 각자의 삶을 계속 연기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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