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저녁 아들과 해야 하는 '목욕'을 아들과 하는 '물놀이'로 바꾸었다.
산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올해 초부터 부쩍 엄마에 대한 애착이 강해졌다.
평소 목욕은 아빠인 내가 시키는 편인데, 최근 들어 엄마와 씻겠다며 자주 때를 썼다.
요즘 출장이 많아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어서 그런가 걱정이 됐다. 그래도 출장이 있는 날이면 미안한 마음에 항상 여러 가지 간식을 사들고 가 산이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데, 이렇게 나를 거부하나 내심 다섯 살밖에 안 된 아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산이가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목욕'시간을 아빠와 함께하는 '물놀이' 시간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전까지는 산이가 목욕시간에 물놀이를 하고 싶다 하면 물만 받아주고 혼자 놀게끔 했다. 나는 옆에서 잠깐 지켜보다가 "다 놀면 아빠 불러~"라고 말하며 욕실을 살짝 빠져나왔다. 같이 욕조에 들어가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다. 나 스스로 아들목욕을 하나의 '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나가고도 한참을 혼자 놀곤 했는데 나는 그저 재밌게 놀고 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같이 욕조에서 물놀이를 해보니 나와 함께 놀이할 때 훨씬 즐거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욕조에 배꼽 높이까지 물을 받고 함께 물놀이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목욕’ 대신 ‘물놀이’를 했다. 물을 받는 동안 아들은 먼저 물놀이를 시작하고 나는 옆에서 샤워를 마친 후 욕조에 들어갔다. 어린이집에서 받았던 실리콘 블록을 잔뜩 띄어놓고 배를 만들기도 하고 비행기를 만들기도 하며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 놀이한다. 그 시간에는 어느 때보다 가까이서 아들의 모습과 행동을 바라볼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저녁 '물놀이'를 하면서 좋았던 점이 3가지 있다.
1. 씻으러 가기 위해 했던 잔소리가 많이 줄었다.
올해 초까지는 목욕하러 욕실까지 가는 과정이 전쟁이었다. 저녁을 먹고 더 놀고 싶은 아이와 빨리 씻기고 재우고 싶은 부모와의 신경전은 매우 치열했다. 아이 이름을 100번을 불러도 부족한 상황이 이어졌고, 결국 혼을 내고 울면서 욕실로 들어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물놀이하러 갈까?"라고 하면 두세 번만에 하던 것을 멈추고 신나서 욕실로 향한다. 덕분에 나는 잔소리하며 쓸 에너지를 아껴 아이와 더 즐겁게 물놀이를 할 수 있다.
2. 아이와 함께 하는 목욕시간이 'TASK'(일)에서 'REST'(쉼)로 바뀌었다.
아이와의 목욕시간이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긴 하지만, 마치 빨리 해치워야 하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서는 좀 쉬고 싶은 게 지극히 정상이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앉아서 아이의 행동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같이 블록을 만들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내가 할 일의 전부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다른 활동들에 비해 편하게 느껴진다. 100% 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보다는 쉼에 가까운 시간은 맞다. 아이와 욕조에 앉아 블록을 쌓으며 보내는 시간이 이전의 지친 하루를 부드럽게 마무리해 주는 여유 있는 순간이 된다. 아이의 웃음소리와 따뜻한 물이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3. 아빠의 반신욕 효과는 덤
가끔 집에서 반신욕이라도 하며 몸을 풀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그런 시간을 내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아들과 같이 놀다 보니 반신욕 한 것처럼 몸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예상하지 못한 장점이었다. 아들은 아빠와 놀 수 있어서 좋고, 아빠는 자연스럽게 반신욕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생각해 보면 아들과 목욕하며 보낸 시간이 엄청나게 많다. 하루에 20분씩만 계산해도 4년 동안 480시간이 넘는다. 생각해 보면 참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신생아 때부터 그 시간은 너무나 즐거웠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작은 욕조에서 큰 욕조로 바꿔가며 목욕을 시켰다. 이 글을 쓰면서 예전 목욕 사진들을 꺼내봤다. 그때를 떠올리니 다시금 행복이 밀려왔다.
20분 정도면 끝날 저녁 목욕이 '물놀이'가 되면서 1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저녁 먹고 조금 일찍 시작한다면 여유 있게 놀이를 할 수 있다.
아빠와 함께하는 목욕을 거부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목욕이 자기 전에 해야만 하는 귀찮은 일이 아니라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막상 해보니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좋다. 산이도 즐겁고 나도 좋다. 나에게도 산이를 씻기는 일이 '일'이 아니라 '놀이'가 되었다.
산이와 이렇게 장난치며 목욕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까.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지만, 언젠가는 욕조 안의 블록도, 함께하는 목욕 물놀이도 졸업할 날이 오겠지. 그때가 오기 전까지 이 소중한 순간들을 온전히 즐기고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싶다. 그리고 산이도 언젠가 아빠와 함께했던 이 즐거운 물놀이를 따뜻한 기억으로 남겨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