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2005) 후기
(※스포 있음※)
영화 <왕의 남자(2005)>는 연산군 시절 궁에 광대들이 들어오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았다. 예전부터 유명하다 해서 언젠가는 봐야지 싶었는데 수업 준비로 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동성애를 담은 영화라 당시에 큰 충격이라 해서 '얼마나 충격이길래 그러지?'라는 생각으로 보게 되었다.
이준기 배우님이 너무 예뻤다. 처음에 치마를 입고 등장하시는데 진짜 감탄사만 나왔다. 왕의 남자를 통해서 이준기 배우님이 빵 뜨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럴만한 것 같다. 엄청 요염하시고 얼굴도 너무 곱고 몸짓도 살랑살랑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배우분들이 연기를 너무 잘했다. 물론 배우분들이 연기를 못하면 영화가 뜰 수 없었겠지만 명작이라는 것을 보고 봤음에도 디테일한 연기 묘사들이 정말 영화를 보는 눈을 가득 차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대부분 어디서 많이 본 배우분들이라 반갑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데 잉?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광대들이 탈놀이에서 왕을 희화화하는 것 때문에 잡혀가 곤장을 맞는데 이때 장생이 임금이 웃으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 왕 앞에서 탈놀이를 하게 해달라 청하게 된다. 결국 기회를 얻게 되지만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대사도 절고 순서도 뒤죽박죽이고 분위기가 싸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는 정말 망해서 아 이제 죽겠구나 이 생각을 했다. '이렇게 영화가 끝나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정말 뜬금없이 왕이 웃었다. 물론 웃을 수 있지만 아직도 웃음이 터진 포인트를 모르겠다.
왕이 공길이를 마음에 들어 해서 왕의 침소까지 부르게 되는데 이때 급하게 불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인형을 들고 간다. 그림자놀이를 위한 종이도 챙겨간다. 진짜 저런 준비성이면 뭘 해도 성공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길이가 왕에게 불려가서 장생이 심란해하며 술을 마신다. 줄 위에서 술을 마시는데 이때 너무 중2병 같았다. 심지어 병을 깨트리는 것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물론 진지한 장면이고 멋있어야 하는 장면이지만 너무 웃겼다. 비 맞는 모습도 너무 웃겼고, 엄청 진지하게 끈을 자르는데 달랑거리는 것도 웃겼다. 그냥 모든 행동들이 이미 웃긴 사람이라는 인식이 박혀서 그런지 파블로프의 개처럼 장생이 보일 때마다 다 웃기게 보였다.
한번 웃음이 터지고 나니까 사소한 것들도 다 웃기게 보였다. 마지막에 반정 군이 궁에 몰려오면서 공길과 장생이 줄타기 기술을 쓰면서 장면이 멈추며 영화가 끝나는데 뭔가 밑에 카페베네 협찬이 나올 것 같았다. 장생이 있던 장면이라 그런 건지,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런 건지, 옛날 영화 기술에 놀란 건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진지한 장면인데 웃음이 터져서 아쉬웠다.
대신들을 농락하는 극에서 왕이 신나서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목소리로 왕이 극에 참여하게 된다. 나는 이때 신하들과 광대들 모두 정말 불편하게 제대로 할 수도 없고 오만 생각이 다 들었을 생각에 나도 덩달아 긴장하고 스트레스 받았는데 강의시간에서는 다 같이 보다 보니 단순한 유머로 쓰이는 것을 보고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서 같은 장면이라도 보는 게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 씨의 이야기를 다룬 탈놀이를 경극 형식으로 진행하게 된다. 이때 폐비 윤 씨를 죽게 만든 엄 씨, 정 씨의 모습이 다루어지게 되는데 이게 연산군의 발작 버튼이 되어 연극을 보고 있던 두 사람 모두 칼로 찔러 죽이게 된다. 이때 죽이는 모습을 화면 가득하게 광기에 서린 연산군의 모습으로 채우고 죽는 모습은 소리로만 표현하는 게 새삼 충격이었다. 심지어 죽이고 난 후 꽂혀있는 칼 구도도 절묘해서 가장 마음에 들은 장면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엄 씨와 정 씨를 대궐 뜰에 묶어 놓고 정 씨의 소생인 항과 봉을 불러서 때려죽이라 명령한다. 사실을 알게 된 항과 봉이 주저하자 죽인 후 시체로 젓을 담가서 산과 들에 흩어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젓을 담그는 형벌이 있긴 하지만 조선 역사상 실제로 실행한 사람은 연산군뿐이라 연산군이 얼마나 잔혹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부분 같다.
연산군의 어머니에 대한 탈놀이 이후 본인의 어머니를 죽게 했던 사람들과 대비마마가 죽게 되어 상복을 입게 되는데 이때 장녹수 상복에 머리 장식이 커다란 솜을 덩그러니 붙여둔 거 같아서 당황스러웠다.
왕의 남자 ost를 어디선가 들어는 봤지만 어디서 나왔는지 몰랐던 노래였는데 왕의 남자의 ost였다는 것을 알고 신기했다. 심지어 노래가 나오면서 장생과 공길이가 꽃밭을 지나는 모습이 나오는데 배경 노래 연기 삼박자가 다 어우러져 정말 예쁜 장면이 나온 것 같았다.
초반 부분에 공길이가 양반 마음에 들어 불려가는 장면에 장생이 몸 팔지 말라고 공길이 발을 잡으면서 막는다. 처음에는 둘의 사이가 엄청 각별하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에도 공길이가 왕이 장생에게 활을 쏘자 하지 말라고 울면서 왕의 다리를 잡는 모습이 나왔다. 체면 같은 거 다 버리고 서로를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수미상관처럼 나오면서 둘의 관계가 잘 나타난 것 같다.
계속 인형탈을 사람과 동일 시 하는 게 느껴졌다. 처음 탈놀이 끝나고 숙소에 기진맥진해서 있을 때 탈 두 개가 붙어 있고, 공길이가 갈 때 탈 하나가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나왔다. 둘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면서 초반에 한양 갈 때 맹인 놀이를 하는데 정말 맹인이 되는 것도 그렇고 정말 삶 자체가 광대로써 하나의 극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장생이 줄을 타면서 부채를 놓게 되는데 이때 부채가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 삶을 포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칠득이 극 중에서 아무리 왕이지만 뭔 망나니도 아니고라는 말을 한다. 가장 천하다 여겨지는 광대가 왕을 천하게 보는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정말 대박이라는 말만 나왔다.
퀴어물이라 해서 얼마나 심하길래 그러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당시에는 큰 충격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수많은 커밍아웃과 넷플과 여러 영화들의 퀴어물들로 익숙해진 퀴어가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어서 그런지 딱히 별 느낌이 안 들었다.
영화에서 빨간색과 노란색 그리고 파란색의 관계가 잘 드러난 것 같다. 빨간색과 노란색은 광대들과 연산군이 좋아하고 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의미하고 파란색은 정치인들, 연산군이 벗어나고 싶은 것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심지어 포스터에서도 왕만 파랑색이고 배경과 광대들은 빨간색, 파란색인 점이 내용을 뒷받침 해준다.
실제로 공길이라는 사람이 역사에 나오는데 현실에서는 말실수를 해서 연산군한테 맞고 쫓겨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극 원작이 있는데 연극보다 영화가 더 잘 만든 것 같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역사기록은 물론 영화, 드라마에서도 연산군을 몸만 큰 어린아이처럼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없는 그런 사람으로 표현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연산군이 글을 잘 못 읽는다는 기록도 있는 것처럼 연산군이 왕의 자질이 모자란 건 맞지만 자기가 할아버지 따라 하려고 하는데 신하들이 대놓고 꼽주고 넌 멍청하니까 책 열심히 읽으렴 이런 말 하면 나라도 싫고 삐딱하게 할 것 같긴 하다.
수업 시간에 역사에 대해서 들으면서 연산군에게 동정심이 들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더 정이 떨어졌다. 역사에서 그 엄 씨, 정 씨 죽이고 젓 담가서 산과 들에 흩어버린 것도 그렇고 기록에 이주라는 사람이 10년 전에 연산군이 왕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인 성종을 우리 임금이라고 한 걸 기억하고 잡아 들였는데 이때 그 자손을 만약 천천히 잡아들이면 혹 자살할까 염려되니 잡는 대로 곧 가두도록 하라라는 기록이 되어있다. 진짜 사람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폐위당하는 왕은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중종이 형을 좋아해서 복권을 시키려고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자기 부인의 말만 들었다는 기록도 있는 것을 보면 본인 사람에게는 잘해줬나 싶기도 하다.
최근 군사 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을 해 큰 흥행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영화 <왕의 남자>는 역사영화라기에는 허구의 내용이 더 많다 생각되지만 영화를 보면서 역사적 사실을 담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분노하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면서 역사적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기억 속에서 묻히지 않게 하는 것이 영화의 또 다른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