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나는 매일 지나는 길목의 화단에서 노란 고양이를 마주쳤습니다. 고양이는 작은 타일에 걸터앉아 야옹야옹 울어대었고 그 목소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곤 했습니다. 나 역시 그 소리에 홀려 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밥을 잘 얻어먹은 모양인지 고양이는 유달리 통통했고, 친구도 없이 혼자 있었습니다. 너는 집이 어디니, 왜 혼자 있니, 그렇게 물었지만 고양이가 대답할 리 있나요. 이후부터 나는 매일 작고 지저분한 화단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한 번쯤 간식을 건네며 정을 붙일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머지않아 내가 이곳을 떠날 것이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나로 하여금 경계가 풀어진 녀석이 다른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봐서였으며, 셋째는 내게 책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도 나도 외톨이였지만 우리 사이의 거리가 더 좁혀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장마가 찾아왔습니다. 우산을 쓰고도 가방이며 신발이 다 젖을 만큼 거센 비가 수 차례 내렸습니다. 곳곳의 침수 소식을 듣고서 나는 고양이가 걱정되었습니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나갈 자신이 없었던 나는 날이 맑길 기다렸습니다. 비만 그치면 그 화단을 찾아가 안부를 살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장마 이후,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평소 앉아있던 타일이나 그 애의 것으로 추정되는 상자도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녀석은 없었습니다. 비가 와서 자리를 피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또 매일 화단을 살폈습니다. 아니, 조금 더 유심히 보았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한 주가 지났으며 반복되는 일주일이 모여 한 달이 지났지만 기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주 떠나버린 걸까? 정말이지 누가 해코지를 한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물음에 대답해 줄 이는 당연하게도 없었습니다.
본래 없는 것이면 모르겠습니다만 그 자리에 존재하던 것이 사라지면 사람은 공허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이제 나는 나의 무심함을 탓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꼭 고양이의 유체를 발견한 양 굴었습니다. 머릿속에서 녀석의 죽음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었던 겁니다. 나중에는 고양이가 죽임을 당하는 장면마저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상 속 인물이 그 애를 무참히 짓밟고 내다 버리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 도저히 끊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글쎄, 불안도 병이라면 나는 의사조차 손을 놓은 지독한 환자일 것입니다. 또 며칠 전엔 상자가 사라져 있었습니다. 부재를 알아챈 누군가가 발 빠르게 치운 것일지도요. 내일은 무엇이 사라져 있을까요? 요즘도 나는 그 화단 앞에 서서 한참을 들여다보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