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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레이 Dec 29. 2016

통근 일기: 1. 통근과 화장실

2016년 초부터 나는 기나긴 시간을 길에서, 지하철 안에서, 버스 안에서 보내게 되었다. 편집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한 것 같고 편집자나 되볼까, 라고 하기엔 다소 건방진 것 같은데 여하간 대학교를 졸업하고(정확히는 졸업을 유예한 상태에서) 편집자가 되겠다는 목표로 신촌의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출판편집자 교육을 듣기 시작했다. 파주시 파평면에서 서울시 서대문구까지 오고가는 게 일상이 된 것이다. 

 대학생 때는 중간에 짧은 시기를 빼고는 서울에서 생활했다. 대중교통으로 학교까지 30분 내외면 오갈 수 있는 거리에서 통학했으므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돌이켜보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환승할 필요도 없이 지하철 한 번만 타면 학교까지 편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학교 앞을 지나가는 버스도 많았다. 어떤 것이든 편하게,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를 마쳤으나 취업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서울에 지낼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시 파주로 돌아갔다. 

 다시, 2016년 초로 돌아가 보자면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경의선의 출발 지점인 문산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지하철을 탔다. 열차는 출발한 지 50분 가량이 지나면 서강대역에 도착했다. 나는 서강대역에 내린 뒤 수업을 듣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다.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을 마치고 다시 집에 돌아오는 데도 비슷한 시간이 걸렸다. 하루에 적어도 세 시간 이상을 집과 학원 사이를 오가는 데 쓴 것이다. 일주일에 수업이 네 번이었으니 일주일에 12시간, 한 달로 치면 48시간이었다. 한 달에 이틀 꼴로 길 위에서 보낸 셈이다.     


무엇보다 힘든 건…… 

당시에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유독 아침에 활발하게 움직이는 배변 활동이었다. 단언컨대, 매일 같이 장시간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가장 힘든 건 다름이 아니라 걷잡을 수 없이 약동하는 장의 활동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는 불가능, 혹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코끼리와 같은 장의 소유자이거나 고승과 같은 인내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 한, 장의 활동을 이성과 의지로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들은 바로는, 전차와 자동차가 보편화된 이후로 거리에 마차와 소가 끄는 수레가 사라졌고 그와 함께 소와 말이 쏟아내던 오물이 사라졌다고 한다. 바퀴 달린 이동 수단과 배변은 절대로 함께할 수 없는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만약 30분 안팎으로 회사나 학교에 도착할 수 있으면 그깟(?) 오줌과 똥(죄송하지만 경박한 단어를 사용한다)쯤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한데, 30분이 1시간으로, 더 심하게는 1시간 이상으로 늘어나면 상황이 역전된다.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 오줌과 똥은 내가 조절할 수 없게 된다. 이쯤 되면 죄송하다는 말을 하기에도 죄송해지는데, 내가 오줌과 똥에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가장 당황스러운 상황은 버스나 지하철이 도착하기 직전에 신호가 올 때다. 화장실에 가서 몸과 마음을 비우고 지각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인지, ‘장아 조금만 버텨줘, 믿는다!’라고 속으로 응원하며 출근길로 발걸음을 옮길 것인지. 이건 정답이 없는 문제다. 오답밖에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그 손해와 피해가 막심하다.   

 편집자 수업이 시작하는 시간은 아침 10시 30분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집에서 아홉 시에 출발해야 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집을 나서려는 순간 하필이면 배에서 중요하고 묵직한 신호를 보낸다. 이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화장실에 들어가면 이미 지각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화장실에 들르지 않고 집을 나서기엔 1시간 30분 동안 그걸(!) 참을 자신이 없다. 아니, 참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무조건 화장실을 먼저 택했다.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그 수업은 좀 늦어도 그럭저럭 괜찮은 경우라 다행이었지만, 만약에 수업이 아니라 학교나 회사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마도 그때처럼 쉽게 화장실을 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집을 나서기 전까지 고민만 하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시간은 시간대로 흘려보내고 지각은 지각대로 하고 결국에는 화장실로 향했을 것이다. 한편 도박하는 심정으로, 일단 집을 나선 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면 도중에 지하철에서 내리는 방법도 있다. 운이 좋으면 늦지 않고 예정대로 목적지에 도착하겠지만, 가는 내내 흐른 식은땀으로 온 몸이 젖게 된다. 슬프게도, 이게 지금 나의 상황이다. 몇 달 전부터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때와 거리도 비슷한데, 신촌이 연남동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닌지, 장시간 이어지는 통학 또는 통근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샌가 익숙해지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배변 활동을 조절하는 데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장의 활동을 안정적으로, 그리고 예측 가능하게 관리하는 건 전날 저녁부터 시작된다. 우선 가능한 한 야식을 먹지 않는다. 특히나 삼겹살이나 치킨처럼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위험하다. 한밤중에 치킨집 전화번호를 누르는 건 다음날 지각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음날 아침이면 변기를 부여잡게 될 테니 말이다. 과음도 역시 피해야 한다. 늦게 일어나게 되는 건 물론이고, 일어남과 동시에 복통에 시달리게 된다. 장거리 통근자가 평일에 과음도 과식도 하지 않는 건, 성실해서도 노는 걸 싫어해서도 아니라 다음날에 일말의 동정도 없이 매섭게 찾아올 똥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도 모른다(그렇다고 해서 평일 한밤중에 과음과 과식을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만).     


이것은 출구 없는 미로일지도

도대체 언제쯤이면 장거리 통근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그리고 장거리 통근이 필연적으로 유발하는 똥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몇 가지 방법을 따져보면,

① 통근을 그만둔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말과 같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급진적인 선택이다. 많든 적든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돈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②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한다. 혼자 사는 것의 즐거움과 장거리 통근으로부터의 해방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돈이 많이 드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③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다. 보통 7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8시에 출근한다고 하면, 기상 시간을 앞당겨 6시에 일어나는 전략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 먹듯이, 일찍 일어나는 통근자가 여유롭게 화장실을 갈 수 있다. 기상 시간을 앞당김으로써 출근 전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여유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피곤함 때문에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장거리 통근자는 보통 전날 집에 들어오는 시간도 늦으므로, 잠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비교적 현실적이지만, 이 역시 행동으로 옮기기 힘든 계획이다.  

④ 집 근처의 회사로 이직을 한다. 여기저기서 모셔가고 싶어 하는 인재라면 시도할 만한 일일지 모르겠으나(그렇다면 좀 부러워지는군요), 아시다시피 취업난이 심각한 지금의 상황이다.

⑤ 회사가 집 근처로 친히 이사를 온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만세를 외치고 싶어질 것 같다. 그런데 이처럼 놀랍고도 감격스러운 일을 경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생각이 생각을 낳고, 걱정이 걱정을 퍼뜨리는지 심히 위험한 상황을 상상하게 되는데, 똥에 대한 부담과 걱정으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10년, 20년 통근을 하다 보면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높지 않을까. 모르긴 몰라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 암보험을 미리 들어놔야 할까. 모쪼록 진지하고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해결책에 대한 고민도 꼭.      

 오늘도 나는 집 밖으로 나가기 전 갈등한다. 싸고 갈까, 그냥 갈까.        


그림: 유민상(https://www.facebook.com/minsang.you.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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