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책의 띠지나 뒤표지에 들어가는 추천사는 무척이나 애매모호한 존재다. 추천사 없이 가자니 어딘지 모양새가 빠져 보이고, 넣자니 추천사를 부탁할 만한 지인이 있는지 저자에게 부탁하기가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서점을 둘러보다 보면, 아무것도 없는 거보다야 뭐라도 있는 게 태가 난다는 판단에서 선택한 결과겠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추천사가 보이기도 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그 책이 아니라 다른 어느 책에 실려도 이상하지 않을, 그래서 보는 이에게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하는 추천사가 그것이다. “한번 편 이상 눈을 뗄 수 없다!” 특히 크고 각진 글씨로 시작해 눈치 없이 강력한 느낌표로 마무리되는 이러한 종류의 추천사를 보면 ‘흠 그러하시군요’ 하고 지나가게 된다. 물론 그게 유명 연예인, 명망 높은 지식인, 세계적인 언론사의 추천사라면 얘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어쨌든, 추천사는 가치는, 추천하는 사람의 정성과 애정 그리고 추천하는 사람의 명성과 권위에 달려 있다.
며칠 전 소설가 김훈이 사무실로 추천사를 보내주었다. 소설가 김훈이 추천사를 써주기로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처음에는 긴기민가했다. 소설가라는 수식어를 따로 붙이지 않아도 대단한 소설가임을 누구나 알고 있는, 호불호를 떠나 문장의 깊이 하나만큼은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 김훈이 우리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에 추천사를 써준다니, 정말인가 싶었다. 다음 달에 출간될 책의 저자인 권태호 기자와 김훈은 오래전 한겨레신문사에서 함께 일했었다고 한다. 추천사는 그 인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추천사는 원고지에 쓰여 있었다. 2017년에 원고지라니. 그러고 보니 오래전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소설가 황석영이 자신은 컴퓨터로 원고를 쓴다고 우스개로 말하며 아직도 원고지에 손으로 쓰는 방법을 고수하는 김훈 이야기를 꺼낸 걸 본 기억이 났다. 내용보다 원고지가 흥미로웠다. 원고지와 거기에 쓰인 글자를 한참이나 살펴본 뒤에야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팩스로 한번 걸러졌음에도, 원고지에서 글쓴이의 고민의 흔적이 느껴졌다고 하면 지나친 감상일까.
타자기나 컴퓨터로 쓴 글에는 실수와 망설임의 자국이 말끔히 제거되어 있다. 지우고 수정한 흔적이 남지 않는다. 또한 순식간에 써내려간 한 문장과 몇 시간에 걸친 고뇌 끝에 쓴 한 문장을 구별할 길이 없다. 자판을 세게 누르든 심혈을 기울여 누르든 가볍게 누르든 가상의 종이 위에는 똑같은 글씨체와 사이즈의 글씨가 올라간다. 반면 손으로 쓴 글에는 글씨체부터 시작해 ‘삑싸리’의 자국까지, 저자가 하나의 글을 완성하기까지 거친 모든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여 글자 하나하나, 원고지 구석구석을 읽으며 이런저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게 된다. 글씨를 크게 쓰는구나, ㄹ을 좀 특이한 방식으로 쓰네, 두 번째 문단을 쓰던 중에 연필을 새로 깎았나보다, 여기서는 유독 힘을 주어 눌러 썼구나, 정체불명의 이 검은 점은 뭐지 쓰다가 혹시 졸았나. 컴퓨터로 쓴 글과 손으로 쓴 글의 우열을 따지자는 건 아니다. 원고지에 쓰인 글을 받았을 때 잠시 감상에 젖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알아보기 힘든 글자가 몇몇 눈에 띌 때면 적잖이 난감했다. 컴퓨터로 깔끔히 쓰인 글이었다면 할 필요가 없었을 고민이었다.
그럼에도 묘한 감동이 일고 영광으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원고지의 물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김훈이 가진 명성 때문이었을까. 두 가지가 영향을 안 끼쳤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추천사를 큰 공을 들이지 않고 그럴싸한 상찬으로 적당히 써주어도 됐을 것이다. 김훈이라는 이름이 추천인에 실리는 걸 허락해주는 것만으로도 저자와 출판사에게는 고마운 일이니까.
그는 원고지 4매에 이르는, 정성 어린 추천사를 써주었다. 길이도 길이거니와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도 김훈이 아니면, 저자를 오랫동안 봐온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에 하나뿐이고, 하나일 수밖에 없는 추천사다. 게다가 그는 목차의 구성과 꼭지의 제목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주었다. 이는 원고를 정성껏 읽었다는 애정의 증거일 것이다. 존경심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렇게나 깊은 진심이 느껴지는 추천사라면 그가 가진 권위는 아무래도 좋지만, 이 정도의 권위와 애정이 동시에 담긴 추천사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
+ 특히나 추천사 중간에 쓰인 문장 “나는 언론의 자유란, 사실에 엄격하게 구속되는 부자유를 수용해서 그 부자유 위에 자유를 건설하는 전달자의 지성의 힘이라고 생각한다”는 두고두고 곱씹어볼 만한 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