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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레이 Jun 18. 2017

십 년이 지나도 여전한, 서울의 맛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들렀다가 남학생 한 무리를 보았다. 성대와 함께 자란 굵은 목소리와 코 밑에 거뭇거뭇하게 자란 수염으로 미루어봤을 때, 초등학생은 분명 아니었다. 나이를 높게 잡자면 고등학생, 낮게 잡자면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 학생들이었다. 휴일을 맞아 광화문으로 나들이를 모양새였다. 서로 이런저런 농담으로 투닥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가만히 지켜보던 중, 그들 사이에서 사뭇 진지한 토론이 벌어졌다. 손과 눈은 평대에 놓인 책을 향해 있었지만 귀는 이미 그들에게 꽂혀 있었다.

 토론의 주제는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였다. 마침 시간은 12시 언저리였다. 사회자가 출발선을 끊는다. “야, 우리 점심 먹어야지. 뭐 먹을까?” 패널 한 명이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며, 대충 때우자고 주장한다. “용돈 다 썼는데, 밥까지 사 먹어야 돼? 라면이나 먹자.” 그러자 반대편 패널이 “서울까지 왔는데 라면 먹어야 돼?”라며 반론을 제기한다. 서로 의견을 주거니 받거니, 토론은 평행선을 달린다. 

 용돈이 떨어져 돈이 없다고 말한 그가 반론의 반론을 내놓는다. “야, 뭐 서울이나 파주나 다를 거 없네.” 서울에 온 만큼 색다를 걸 먹어야 한다는 상대방의 전제를 날려버리는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이후 몇몇 주장과 반박을 주고받다가 그들은 자리를 떴다. 토론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 라면을 먹자고 주장한 학생의 입에서 ‘파주’라는 말이 들려온 순간 결과야 어떻든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녀석들, 파주에서 왔구먼.’

 십 년 전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십 년까지 갈 것도 없이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비슷했다. 모처럼 서울에 놀러갈 때면, 으레 하는 말이 “서울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걸 먹자”였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고 맛있는 가게를 아는 것도 아니라 고작해야 맥도날드에 들러 햄버거 세트를 먹거나 크리스피크림의 도너츠를 먹는 게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 뿌듯했다. 맥도날드와 크리스피크림은 서울의 상징이었으니. ‘아, 서울이란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하구나. 서울에 온 보람이 있구나.’ 


 파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생각하는 게 비슷했던 것 같다. 주말이면 읍내 버스터미널에 흔하게 보이는 풍경 중 하나가 양손에 크리스피크림 박스를 든 사람이었다. 달달한 도너츠 열두 개가 가득 담겨 있는 그 박스는 서울에 다녀왔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아마 그는 서울에 나가기 전 이런 말을 들었을 것이다. “크리스피크림 사와~” 박스 안에 든 도너츠를 상상하며 그 사람이, 그리고 서울에 다녀온 그 덕분에 시장에서 파는 도너츠와는 격이 다른 ‘서울 도너츠’를 먹게 될 그의 친구와 가족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어언 꽤 많은 시간이 지나 파주도 제법 큰 도시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경의선이 홍대입구, 공덕과 통한다!). 그럼에도 ‘파주 촌놈’의 생각이란 크게 달라지지 않았나 보다. 파주에서 올라온 그 학생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지 궁금하다. ‘서울의 맛’을 만끽하는 데 성공했을까. 주제 넘는 참견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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